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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Dec 13. 2022

평범한, 그러나 소중한 일상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Tree of life)를 떠올리며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언젠가부터 고마워졌다. 예전에는 일상의 소중함을 몰랐다. 20대때는 매일 매일이 새로워야만 직성이 풀렸다. 틈만 나면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거기서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보고, 그들과 잊을 수 없는 추억도 만들었다. 그땐 그게 즐거웠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유독 집에서만 소중한 시간을 보내면 ‘허송세월’로 그 시간들이 날아가 버리는 것만 같았다. 내일은 또 어떤 새로운 일이 펼쳐질까? 새로움에 중독된 나는 ‘반복’이란 단어를 싫어했다. 새로움이 없는 일상은 그저 답답하고, 칙칙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 점점 성숙해져가니, 하루하루 평안하게 보내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다시금 깨닫는다. 크게 뭐 별 일 없어도 된다. 그냥 가족끼리 잠들기 전에 이야기를 나누고, 요즘 유행한다는 드라마도 TV로 시청해보고, 메신저로 친구들과 오늘 뭐 했는지 말해보기도 한다. 하루 종일 밖에 나가질 않아도 괜찮다. 가끔은 내 방 창문을 열고 의자에 앉아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기도 한다. 때로는 믹스커피 한 봉을 뜯어 내가 가장 아끼는 컵에 부은 후, 조용히 물이 끓기만을 기다리기도 한다. 예전이라면 지루하게 느꼈을 조촐하고 단조로운 일상이다.     

 나는 테렌스 맬릭이라는 영화 감독을 좋아한다. 그의 영화에는 늘 시적인 은유가 풍부하고, 아름다운 영상으로 관객들을 매혹시킨다. 그가 연출한 영화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트리 오브 라이프(Tree of life)’라는 작품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생명의 나무라는 뜻이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인데, 성공한 샐러리맨이자 회사의 중역을 맡고 있는 한 남자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는 그 과정에서 다양한 시적인 장치들을 동원하여 인생의 희노애락과 삶의 복잡다단한 법칙들을 보여준다. 생명의 탄생에서부터 소중한 이의 죽음, 어머니의 자애로운 사랑, 신을 향한 기독교적인 메시지까지 전 우주적인 관점을 아우른다.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Tree of life).

 

 간혹 시간이 날 때 마다 이 영화를 다시 보면, 일상의 소중함을 문득 깨닫곤 한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늘 그를 원망하고 미워했지만 시간이 흘러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보니 그때 그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주인공. 지루하고 답답했던 그때 그 시절이, 돌이켜보니 모두 소중한 추억이었음을 주인공은 뒤늦게 깨닫는다. 나는 영화 속에 펼쳐진 그의 삶을 담담히 지켜보며, 문득 일상의 소중함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평온하게 식사를 하고, 가끔은 엄마의 잔소리도 듣는다. 동네 한 바퀴를 산책 한 후, 기분 좋게 샤워를 마친 채 잠자리에 든다. 누가 보더라도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이지만 이렇게 평화로운 나날을 보낼 수 있는 것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하필 그 날 신묘한 법칙에 의하여 우리에게 평화로운 하루를 선사하기 위해, 톱니바퀴의 맞물린 한 부분처럼 움직이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반복적이고 답답한 일상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염원하던 ‘소중한 하루’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하루 하루’라는 일상을 빚지고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일상의 고마움. 나이 들어가니 시간은 더욱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간을 같이 해 준 나의 소중한 인연들, 나의 집, 나의 스마트폰, 나의 칫솔(?), 나의 글들이 늘 고맙기만 하다. 이들에게 어떻게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 하루하루를 소중히 보내고, 일상 속 마주치는 모든 것들의 아름다움을 가슴 깊이 느끼면 되지 않을까? 오늘의 일기를 무슨 문장으로 마무리할지 고민해본다. 아, 이게 좋을 것 같다. 은혜 갚은 ‘평범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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