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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Nov 29. 2022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하여 (2)

범인과 비범인 사이에 있던 나

하지만 취업 준비는 나의 예상과 달리 만만치가 않았다. 졸업을 하고, 한 대기업의 채용형 인턴으로 들어간 나는 죽을 듯 살 듯 노력을 하며, 정규직으로 전환되기 위해 몸부림쳤다. 인턴들 간의 끊임없는 경쟁과 보이지 않는 눈초리들, 그리고 그들을 평가하는 정규직 사원들과 팀장님들. 회사 생활은 만만치가 않았다. 스스로를 늘 왕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내게, 갑자기 인턴이 되어 서류 복사 및 각종 교육 과정 업무들을 기획하는 것은 영 내 적성에 끌리지 않았다. 결국 몇 주가 흐른 후, 정규직 전환 결과에 나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사실 조금은 결과를 예상하긴 했었다. 그래, 나는 인턴을 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일기를 쓰고 소설의 소재들을 잡아내기 위해 노력했었지. 예술가는 다른 사람들보다 감수성 깊은 자신의 촉으로 세상을 느끼고 변화들을 감지해내, 이를 예술로서 표현하지 않던가? 나는 회사에서 인턴을 하며 느꼈던 짧은 소회들을 내 노트에 적었다. 예상치 못한 팀장님의 업무 변경, 동료 인턴과의 마찰, 그리고 잠시나마 사원증을 목에 걸었을 때의 뿌듯함. 이런 것들은 내 글의 창조적 영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때 당시, 스트레스와 여러 불운한 일들이 겹쳐 내 머리가 어지러웠다.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한 줄을 쓰면 다음 줄이 막히고, 결말까지 가는 여정의 줄거리가 떠오르질 않아서 작품을 쓸 수 없었다. 그래도 내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작가의 꿈이 남아있었다. 회사원과 더불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하며, 잠시나마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던 것이다.

 인턴이 종료된 후, 다시 백수로 돌아온 나는 한동안 허망함의 늪에 빠져 살았다.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책을 읽지도 않았고, 취업 준비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말 그대로 ‘살아있는 좀비’에 가까웠다. 누워 있거나, 아니면 밥을 먹거나, 아니면 화장실에 가거나. 그게 전부였다.

 그 후로 가족들은 나를 한심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키도 큰 성인 장정이,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방에 갇혀서 혼자 뭘 연구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그때 나는 ‘가난’이라는 주제에 몰두했다. 만약 내가 여기서 취업이 되지 않고, 이 상태로 쭉 지낸다면? 통장 잔고에는 몇 십 만원이라는 얼마 남지 않은 돈이 있었다. 그마저도 가족에게 용돈을 타다 쓰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멍하니 하루하루만 무사히 흘러가길 바라며, 세월이 흘러가는 대로 살뿐이었다. 그때부터 무의식적으로 유튜브에 가난이라는 검색어를 치기 시작했다. 사회에 소외된 이웃들이 내 눈에 들어왔고, 열악한 쪽방에 거주하며 하루하루 끼니를 간신히 이어나가시는 독거노인분들, 돈이 없어 학업을 채 이어나가지 못하는 청소년들까지, 사회적 약자계층에 속한 분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노트에 다시 소설의 소재들을 적어나갔다. 쪽방에 거주하면서 연락조차 닿질 않는 외동아들을 그리워하는 한 어머니의 인생이 떠올랐다. 더 나아가 내가 고시원에서 자취를 했었을 때 느꼈던 서러움과, 성인 두 명도 들어가기 힘들 만큼의 공간에서 바퀴벌레와 마주쳤던 공포스러운 경험들까지. 이런 것들이 결합되어 글을 계속해서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여전히 내 꿈은 작가를 향해 기울어져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 정신을 차리게 된 나는, 우선 취업부터 하자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어 여러 기업에 입사 지원을 하게 된다. 돈은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꿈에 그리던 S그룹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아파했던 인턴 과정을 뒤로하고, 오히려 그것을 자기소개서의 경험으로 삼아 더 좋은 기업에 입사하게 된 것이었다. 브런치 글에도 올렸지만, 이 회사에 입사를 한다면 나는 내 영혼을 바쳐서라도 열심히 근무를 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써서, 언젠가 전업 작가가 되는 순간 당당하게 퇴사를 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회사는 서울이 아닌 지방에 위치했다. 회사에 가서 느낀 건 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중에서 내가 심오하게 생각했던 것은 바로 나의 ‘정체성’이었다. 나는 일반 사람들과 많이 다른 것인가?라는 생각이었다. 뭐, 내 주변 지인들도 느꼈을 수 있겠지만 회사에 입사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독특하다’는 말이었다. 내가 독특하다고? 나 그렇게 독특하지 않은데? 어째 내가 하는 행동들이 S그룹에 속한 회사원들과는 궤를 달리했고, 회사원들이 일반적으로 품는 생각과도 무척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아니, 나는 나를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하는데, 뭐가 독특하다는거지? 그 말을, 회사 구성원뿐만 아니라 연수원에 가서 만난 동기들에게도 들었다. 

 그때부터, 나란 인간에 대해 다시 한번 큰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나는 과연 일반인들이랑 다른 것인가? 그리고 전에 언급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소설 속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처럼 나도 ‘비범한 인재’란 말인가?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독특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이런 물음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뒤늦게 생각해본 결과, 나는 비범했던 것이 아니라 회사에 부적응한 인재였던 것 같다. 

 어느날, 팀장님은 나의 업무 능력이 못마땅했는지 나를 따로 불러내서, 내 능력이 부족하다고 핀잔을 주셨다. 물론 나도 그 말에 대부분 동감했다. 그전까지 나름의 엘리트 코스만을 밟았던 나에게,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서 일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계속해서 주의를 살피는 일은 절대로 쉽지만은 않았다. 팀장님께서는 아무래도 우리 회사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다른 일을 알아보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때 팀장님께 도스토예프스키의 이야기를 꺼냈다. 빚이 많고, 사는 동안 다사다난한 일들을 겪었던 도스토예프스키가 떠올랐고, 팀장님께 나도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소설가가 훗날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팀장님은 나에게 대학원 진학을 권유하거나,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을 마치고, 나의 퇴사는 진행되었고 그렇게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다시 백수 생활이 시작되었다. 한 가지 바뀐 사실은, 남들이 내로라하는 최고의 대기업에 입사해도 막상 회사 생활을 시작하니 나의 생활이 나아지는게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저 월급만 꼬박꼬박 들어올 뿐, 나는 늘 우울했다.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것만 같았다. 이제 어떠한 용기도 나질 않았다. 쥐구멍이 있으면 그곳으로 숨고 싶었다. 내 유일한 안식처는 이런 저런 생각이 들때마다 끄적이는 내 소박한 글들밖에 없었다.

 사실 소설은 어찌보면 나에게 심리치료와 비슷한 역할을 해주었다.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험난함과 어려움, 그리고 세상의 모든 풍파들이 소설을 쓸 때만큼은 저 멀리 날아가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소설을 쓸 때만큼은, 글에만 온전히 집중하여서 내가 ‘신’이 된것처럼 등장인물들을 만들어내고 세계관을 창조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협업이 어려웠던 나에게 소설을 쓰는 일만큼은 자유로웠고, 나의 상상력을 100%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에 뿌듯했다. 역시 글쟁이는 돌고 돌아 글을 쓴다더니, 이게 맞는 말인가 싶었다. 또한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도움을 얻거나 힐링을 받으면 나는 참으로 기뻤다. 내가 회사에서 업무를 해서, 회사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주었을 때보다, 나의 쓴 글로 누군가가 희망을 얻고, 더 나아가 새로운 삶까지 계획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내가 태어난 소명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글을 쓰는 일은 나의 우울을 덜어주는 것과 더불어, 뿌듯함을 느끼는 나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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