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전문성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교사란.
서이초 사태가 터지면서 계속 생각이 많았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된 걸까. 교사가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힘들어진 이유가 뭘까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학부모의 전화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있었으니까요. 진상 민원을 원인으로 지목할 때 동조했어요. 그런데요. 정말 그럴까. 이렇게 편 가르기를 하면 문제가 해결되나. 아니면 여기에는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진상 민원을 받는 건 교사만이 아니에요. 자영업에 종사하는 우리 엄마도, 오빠도 민원을 받고 괴로워해요. 일반 공무원이나 회사원이라고 다를까요.
저는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가 타인이 하고 있는 모든 일들에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전문성을 원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모두들 인터넷에서 최고를 검색하고 그 수준까지 해 달라고 너무 쉽게 이야기해요.
교사가 힘들어지는 포인트가 여기 있어요. 학교에서 교사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잡다한 업무를 많이 해요. 말로는 수업이 교사의 주 업무라고 하는데 학교에 있다 보면 내가 일을 하다 수업을 들어가는 건지 수업을 하다 일을 하는 건지 모를 지경이에요. 물론 돈 버는 일이 다 힘들고 모든 직장인이 힘들다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요. 교사는 정말 잡다한 일을 많이 해요. 하나하나가 메인 업무라고 하는데 한 사람이 담당하는 업무의 종류가 정말 많아요.
수업, 생활지도, 학생과 학부모 상담, 시험 출제, 생기부 작성이 일단 메인 업무고요. 그 외에 나이스 업무, 학폭, 방송 같은 굵직한 업무들도 몇 개씩 맡고 있어요. 학급 담임의 일은 마치 가정에서의 엄마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학교에서 일만 터졌다 하면 무조건 무한 담임책임인 셈이죠.
아마 옛날 교사 생각하시면 그럴 거예요. 교사 일이야 대충 애들 상대로 하는 건데 뭐 그리 전문적으로 하는 일이냐 말하실 수 있어요. 맞아요. 제가 처음에 교사를 할 때만 해도 학교에서 하는 모든 일에 대해 이 정도로 과한 전문성을 요하지는 않았어요.
시험 문제만 해도 그래요. 예전에는 문제집에서 그대로 내시는 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새는요. 시험 출제 기간이라고 업무는 줄여주지도 않으면서 수능 정도의 완성도를 요하는 민원이 들어와요. 담임으로서는 오은영만큼 아이와 학부모의 마음을 읽어주기를 바라고, 학폭 조사를 할 때는 경찰관이나 변호사, 판사 정도의 엄밀함을 가지라 해요. 그뿐인가요. 아이가 아프면 응급실 구급대원의 전문성과 순발력이 필요하고, 화가 나도 따뜻하게 말을 하는 고매한 인격은 필수 요건이에요.
방송반 업무를 맡으면 갑자기 업무를 맡자마자 온갖 기자재의 역할과 조작법을 알아야 한대요. 앨범 업무를
맡으면 앨범 종이를 뭘로 해야 할지 정해서 업체에 알려줘야지 몰라서 물아보면 거꾸로 했다며 청렴 수칙에 위배된대요. 모든 학생의 생활기록부를 학교에서 가장 빛나고 똑똑한 아이의 생기부처럼 채우라는데 김훈 같은 문장력에 김상욱 같은 전문성을 담아 써야 한대요.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있느라 얼굴 본 적 없는 아이 것도 꽉꽉 채워서 없는 걸 쓰려니 김초엽 같은 상상력도 발휘해야 해요.
나이스 개판 친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결국 학교에서 욕먹는 건 재수가 없어서 나이스를 처음 맡은 담당 교사예요. 학교에서 리모델링을 하면 분전함 위치랑 개수까지 담당 교사한테 정해오라고 해요.
물론 그동안 교사들이 꾸역꾸역 해냈죠. 책임감이 넘치는 사람들이 많았고 능력자들도 많더라고요. 내일까지 원격수업 준비해 오라고 하면 뚝딱 해 와서 바로 다음 날 아침에 수업을 하고요. 물론 안 하고 누워 버리는 교사도 당연히 있어요. 그러면 더 능력 있고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 구멍을 메우면서 해내긴 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여기저기 되는대로 돌려가며 막다 보니 구멍이 어딘가에 생기겠죠. 그러면 그 조그마한 구멍이 민원의 구실이 되는 거예요. 예전엔 익스큐즈 해줬던 일들이 이제는 그냥 넘어가는 일이 아니에요. 어떤 업무든 민원 받아보셔서 아시죠. 민원인들은 매우 성실합니다. 게다가 소중한 자녀의 안전 혹은 입시와 관련이 있는 문제가 된다면요. 게다가 관리자며, 교육청은 학부모에게 얼마나 친절한지. 성실한 민원인에게 친절하게 응대까지 해주니 민원인들의 요구가 날로 거세져요.
예전엔 교과서 수준에서 넘어가던 문제들이 학원 강사들이 논문까지 들춰가며 찾아낸 이론 때문에 오류 문항이 되어 버리는 것처럼요. 민원을 내는 사람들은 집요하게 교사의 실수를 파고들어요. 학생들에게 야라고 말하면 아동학대가 되어 버리는 것처럼요.
그 순간 꾸역꾸역 해 오던 교사들이 천하의 몹쓸 인간이 되어 버려요. 방송 시설에 문제가 생기면 본인 업무도 파악 못한 모지리가 되고, 시험 문제에 오류가 생기면 교과 전문성이 없는 멍청이가 되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하지도 않았는데 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인격이 모자란 교사가 되어버려요.
그렇다면 해결책이 있을까요.
업무를 줄여야죠. 내가 왜 방송장비나 리모델링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나요. 행정실 인원이 부족한 거면 그쪽 인원을 늘리면 되잖아요. 무작정 줄여달라는 게 아니에요. 저는 수업을 하고 싶으니까 수업시수를 늘리라고 하면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 가르치는 학생수를 줄여야죠. 제가 가르치는 학생 수가 획기적으로 줄어들면 저도 생활기록부를 박준 시인처럼 한 문장 한 문장 꼭꼭 눌러쓸 수 있어요.
사랑의 힘은 위대하죠. 모든 걸 감싸 안고 감내하고. 그래서 교사들이 꾸역꾸역 해냈죠. 학생들을 사랑하니까.
그 마음을 너무 이용하지 말아 주세요. 그 마음 때문에
교사들이 병들고 있어요. 짝사랑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남아있지만 언제 사라질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