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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가장 잔인한 계절

W. 유라

by 동국교지

봄철 우울증, 그리고 스프링 피크에 대하여


‘봄’에는 새 학기가 시작하고, 추운 날씨가 풀리고, 예쁜 꽃이 피는 계절이다. 따라서 봄은 재생과 희망을 대변하는 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따뜻한 ‘봄’이 오길 기다리고, 마음이 들뜬다. 벚꽃잎이 흩날리는 나무 앞에서 까르르 웃고 떠든다. 그러나 2년 전의 나는, 생애 가장 불행한 봄을 견디고 있었다.

재생과 역동의 계절이라는 봄은 아이러니하게도 사계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계절이다. 이 현상을 ‘스프링 피크’라고 부른다. 각 지자체는 3~5월을 자살 고위험 주간으로 지정하고 자살 방지 대책들을 시행한다. 이렇게 봄철 우울증과 자살률이 높아지는 이유로는 두 가지가 꼽힌다. 첫째로는 일교차가 큰 날씨가 감정 기복을 일으키고, 우울감을 심화시킨다. 둘째로는 들뜬 사람들과 달리 여전히 추운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신을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2년 전의 나도 이 두 가지 요인 때문에 불행한 봄을 보내고 있었다. 점점 날씨가 따뜻해지며 봄을 즐기는 또래들을 보는 게 정말 괴로웠다. 꽃이 피는 게 너무 재수 없었고, 길 가다 벚꽃을 찍으며 여유를 만끽하는 모습을 보는 게 짜증 났다. 당시의 나는… 여러 이유로 인해 마음이 많이 아팠다. 우울감과 무기력감이 지속되고, 머리가 한쪽이 세게 고장 난 거 같았다. 자다 깨서 소리 지르면서 울기도 했고, 지하철같이 사람이 많은 곳에선 늘 과호흡이 왔으며 실신하기도 했다. 매일 30분씩 지하철을 타고 등교해야 하는데 이게 참 힘들었다.

3월 말, 결국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3차 휴학을 신청했다. 등록금의 1/6이 날아가고, 엄마가 엄청나게 반대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너의 미래를 위해 휴학하지 말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계속 학교에 다니면 미래가 걱정되는 게 아니고, 미래가 없을 거 같아. 나 진짜로 죽을 거 같아.”라고 맞받아쳤다. 결국 엄마의 허락을 받아 휴학 신청서를 내고 집에 가는 길 내내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펑펑 울었던 거 같다.

나는 이맘때쯤 봄에 꼭 행복해야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말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곧 이 사회는 행복을, 그리고 행복의 시기마저 강요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의 나는 원래도 우울했지만, 다들 행복한 ‘봄’이라는 시기에 행복하지 못하다는 사실에 더 괴로움과 자격지심이 심해진 거 같다. 봄이라는 이유로 사회가 나에게 행복할 것을, 행복하지 못한 나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볼 것을 강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으로 나는 아름다운 ‘청춘’을 강조하는 것에도 불쾌감을 느낀다. 청춘이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은 어떤 고통을 겪는 게 당연하며, 어떤 부당함과 어리석음도 견뎌야 한다고 말한다. 행복이라는 강요, 청춘이라는 이름 하에 가해지는 억압과 착취. 그리고 ‘봄’이라는 시기에 이루어지는 행복해야 한다는 단체 세뇌(?)까지… 참 이상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없다니. (그나저나 청춘에도 봄 춘 ‘春’ 자가 쓰인다. 이 사회는 정말 봄이라는 낭만을 강요하고, 강요당하는 일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이번 봄에 2년 전의 나처럼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꼭 행복할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스프링 피크’라는 현상이 있을 정도로 사실 봄에는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울증이 더 심화한다고 계절이라고 통계적으로도 증명된 계절이다. 그러니 절대 ‘봄’이라는 이유로 당신이 더 괴로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꼭 봄에 꽃피울 필요는 없지 않나. 여름에는 능소화가, 가을에는 코스모스가, 겨울에는 동백꽃이 피는 것처럼.

어쩌면 봄은 가장 잔인한 계절이다. 미세먼지도 많고… 특히 이번 봄은 유독 잔인한 거 같다. 얼마 전 발생한 산불 때문에, 꽃이 아닌 재로 뒤덮인 산의 사진을 보면서 착잡한 감정이 들었다. 봄을 미워했지만 정말 봄이 다 불타 사라져 버린 광경을 보니 마음이 복잡했다… 이번 봄도 참 봄답지 못한 봄이다. 나도 3월 한 달 동안 작년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무기력감과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러니 올봄에 따뜻한 바람이 부는 게, 예쁜 꽃이 피는 게 달갑지 않더라도 다들 그런 자신이 이상하고 소외되는 거 같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나도 그랬으니깐….

그래도 난 지금 2년 전보단 많이 좋아졌다. 그때 참 힘들었지만, 견디니까 지나가더라고. 정말 그냥 견디면 된다. 그 우울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써 발버둥 칠 필요 없다. 힘든 거, 아픈 거, 우울한 거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통스럽게 견디면 된다. 그럼 정신 차려보면 지나가 있다. 잠 많이 자고,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운동 꾸준히 하고, 아 그리고 사랑할 수 있는 취미를 하나 꼭 만들어주면 좋다. 나는 음악 듣는 걸 정말 좋아해서 맨날 음악 들으면서 운동했던 거 같다. –그때쯤의 내가 구원받았던 음악 네 곡이 있다. 태연의 gravity, 품 그리고 woodz의 journey, 아리아나 그란데의 breathin’. 지금도 마음이 불안해질 때면 꼭 이 곡들을 찾는다.

아무튼 나의 봄도, 이걸 보는 당신의 봄도,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란다. 나는 이번 봄에… 편집장으로서 교지 운영도 열심히 할 거고, 시험공부도 열심히 해야지. 그리고 책도 많이 읽고 문법/문장 공부도 꾸준히 해야겠다. 그리고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 수박이랑 복숭아를 열심히 먹어야지. 비 오는 날에는 drowning 들으면서 우중 러닝도 해야겠다! 다행이다. 2년 전에는 이 불행한 봄에 영원히 갇혀있을 거 같았는데, 이젠 다음 계절이 기다려져서.


교지원들의 댓글


정원: 더 깊이 빠져도(요건생략)되니까 우리 맘껏 슬퍼하다가 다음 봄을 또 기다려용~

지원: 봄은 무력과 희망을 같이 주는 이상한 계절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봄이 주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느낌 때문에 계속해서 봄을 기다리는 거겠죠? 꼭 아름다울 필요는 없지만 너무 아프지 않고 이 계절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운: 강제로라도 모두가 행복해야할 것만 같은 계절이 있어 잠시나마 들뜰 수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렇지만 벅차다면 구태여 따라가지 않기를. 온전히 아파했던 계절 뒤에 능소화처럼, 코스모스처럼 늦게라도 피어난 자신을 마주할 수 있기를.

민우: 요새 밤늦게 집에 올 때가 많은데 분명 낮에는 더웠는데 밤에는 또 춥고.. 전 이럴 때 봄이 왔구나란 걸 느끼는 거 같아요. 다들 봄을 느끼는 시기는 다르겠지만 끝날 때는 그래 이런 날도 있었지 하며 반추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해요~~

민주: 어떤 형태로든 모든 계절을, 모든 달을, 모든 날을 만끽하길! 고통을 만끽하며 불행의 봄을 견뎌줘서 고마워 ~_~ !!!

현아: 힘든 봄을 견뎌낸 2년 전의 유자에게 위로를, 지금 자신만의 ‘봄’을 보내고 있을 모두에게 응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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