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지운, 민우
진상규명 없는 참사는 반복된다.
11년 전 그날 국가는 없었고, 11년이 지난 지금도 국가는 없다. 왜 누군가는 잃고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가. 끔찍한 참사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울부짖었음에도 왜 여전히 슬픔은 반복되는가.
지난 4월 16일, 동국대학교 팔정도에서 <세월호참사 11주기 동국대 기억문화제>가 진행되었다. 해당 문화제는 11주기 세월호를 기억하는 동국대 <노란리본 서포터즈>가 주최하였으며, 매년 이어지는 기억의 자리를 올해도 꾸준하게 이어나갔다. 자리에 모인 학생들은 추모사를 낭독하고, 노란 리본을 달며 각자의 방식으로 세월호참사를 다시 한번 기억에 남겼다. 우리는 항상 같은 물음을 반복한다. 왜 기억해야 하는지, 잊지 않아야 하는지. 교지는 기억문화제 속 동국대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물음에 대해 대답하고자 한다.
2025년 4월 16일 세월호참사 11주기 기억문화제는 사회를 맡은 노란리본 서포터즈 단장 일본학과 박준성 학우님의 묵념과 추모시 낭독으로 시작되었다. 아래는 추모시 전문이다.
정호승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별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그대를 만나러 팽목항으로 가는 길에는 아직 길이 없고
그대를 만나러 기차를 타고 가는 길에는 아직 선로가 없어도
오늘도 그대를 만나러 간다
푸른 바다의 길이 하늘길이 되던 그날
세상의 모든 수평선이 사라지고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통곡하고
세상의 모든 등대가 사라져도
나는 그대가 걸어가던 수평선의 아름다움이 되어
그대가 밝히던 등대의 작은 불빛이 되어
오늘도 그대를 만나러 간다
한 배를 타고 하늘로 가는 길이 멀지 않으냐
혹시 배는 고프지 않으냐
엄마는 신발도 버리고 그 길을 따라 걷는다
아빠는 아픈 가슴에서 그리움의 면발을 뽑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짜장면을 만들어 주었는데
친구들이랑 맛있게 먹긴 먹었느냐
그대는 왜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는 것인지
왜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세계인지
그대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잊지 말자 하면서 잊어버리는 세상의 마음을
행여 그대가 잊을까 두렵다
팽목항의 갈매기들이 날지 못하고
팽목항의 등대마저 밤마다 꺼져가도
나는 오늘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봄이 가도 그대를 잊은 적 없고
별이 져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추모시 낭독 이후, 박준성 학우님은 기억은 함께 할수록 강한 힘을 가진다고 언급했다. 이어, 이번에 진행하는 기억문화제 역시 함께하는 마음으로 참석해달라는 격려의 말로 문화제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각자의 마음이 모여야 기억은 살아남고, 그 과정에서 진실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뒤이어 사회학과 학생회장 이하나 학우님의 추모 발언을 시작으로, 동국대학교 학우님들의 추모사가 진행되었다. 추모제에 참석해 추모사를 낭독해주신 이하나님, 김형주님, 황채현님, 추정원님의 발언문을 아래 첨부한다.
이하나(동국대, 사회학과 학생회장)
2014년 4월 16일 참사 이후 11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현대 사회는 때때로 숫자로만 아픔을 판단합니다.
조명받지 못하는 수많은 개인은 그 자리에서 조용히 사라져버립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길든 짧든 이들이 만들어온 이야기는 단 몇가지의 단어만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현 체제의 방식은 희생자들을 숫자로만 파악하여 그 책임의 소재를 떠넘기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잊지 않겠다는 말과 기억하겠다는 다짐은 지겨운 것이 되어갑니다. 타인의 고통 앞에 연대하는 마음을 담은 말과 단어들이 힘을 잃어가고, 그 당연한 말을 지키지 않는 것이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부조리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말의 징표를 상실했다는 것이, 4월이 다가올수록 그 슬픔과 울분이 가슴을 조여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사람을 잊어선 안됩니다.
각자의 소중한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도록 4월의 아픔을 반드시 기억하며 발언을 마칩니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개인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한다는 이하나 학우의 발언은 자칫 숫자에 가려질 수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304명의 피해자가 저마다의 이름과 이야기를 가진 존재였음을 일깨워 주웠다.
김형주(동국대, 일본학과)
다시 4월이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희망찬 계절임에도 우리는 기억합니다. 4월16일 우리의 안전이 침몰했던 그 안타까운 순간을 기억하며 여기 이렇게 서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지금으로부터 딱 11년전. 제주로 가는 배가 침몰된 이유는 아직 자세히 밝혀지지도않았습니다. 무엇이 침몰시켰는지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는 명확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는 것 하나는 정말로 명확합니다.
안타까운 참사이며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하는, 정말 단순하지만 슬픈 그런 참사라고만 생각해왔습니다. 기억해야 하는이유는 관심 저편에 하나의 부름이라고만 치부되어 왔습니다.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란리본 서포터즈 안산기행을 다녀오며 가장 많이 생각한 질문입니다.
지금 다시, 여러분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세월호를 왜 기억해야 합니까. 우리사회가 안전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 반복되는 참사를 막기 위해. 또 다른 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이 자리에 모여있습니다. 기억의 힘은 셉니다. 기억은 혼자할 때보다 함께할 때 더욱 세집니다.
오늘 여기 모여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전하며 추모사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왜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시작된 김형주 학우님의 추모사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참사의 원인과 더불어 공동체의 연대성을 강조했다. 더불어 그의 발언은 또 다른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함을 상기시키며, 기억이야말로 책임과 변화의 출발점임을 시사하며 마무리 되었다.
김형주 학우님의 추모가 끝난 뒤, 사회학과 밴드 ‘아노미’의 공연이 이어지며 잠시 분위기를 환기했다. 음악은 또 다른 방식의 추모였다. 담담한 선율과 가사 속에는 말로 다 담기지 못한 슬픔과 다짐이 녹아 있었다. 공연 이후, 분위기가 다시 숙연해진 가운데 맑스철학연구회 황채현 학우님의 발언을 시작으로 추모사 낭독이 재개됐다.
황채현(동국대, 중앙동아리 맑스철학연구회)
노란리본, 노란리본을 보며 떠오르는 세월호 참사가 떠오릅니다. 자녀를, 가족을 잃은 유가족분들께 우리의 마음을 잘 전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재난과 참사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기에,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분들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잊어도 되지 않느냐는 말은 2차 가해입니다.
책임자가 누구인가를 계속해서 떠넘기는 어른들을 보며 깊은 의문이 남았습니다. 가해자들의 진상을 파악하고, 그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유가족들의 아픔을 위로해야 합니다. 하지만 국가는 여전히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제가 즐겨 읽은 소설의 문장을 발췌하고 싶습니다.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수많은 이야기로 이루어진 책, 아니 도서관이니까요. 그렇기에 한 사람의 목숨은 너무나 무거워요.” 이 문장을 통해 우리는 한 사람이 떠나고, 남은 이들의 삶이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도서관 같은 죽음을 하나하나 추모하고 애도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누구보다도 빛나는 눈을 가진 무고한 학생들이 희생된 이유를 찾고, 그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또 다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드는 굳건한 외침이 될 것입니다. 무책임과 무관심함이 빚어낸 비극을 막기 위해 기억 문화제가 더욱 더 적극적으로 개최되기를 바랍니다.
황채현 학우님은 어린 시절 세월호참사를 접했던 개인적인 기억을 통해 유가족들의 고통을 담담히 전했다. 그는 우리가 왜 이 참사를 잊지 말아야 하는지를 되묻고, 기억이야말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출발점임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노란리본 서포터즈 회원인 추정원 학우님의 추모사가 진행됐다.
추모사4: 너의 고통이 아닌, 우리의 고통
추정원(동국대, 노란리본 서포터즈, 사회학과)
2014년,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저는 고등학교 2학년이 어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그저 어린 학생이었음을 문득 떠올리곤 합니다. 11주기를 앞두고 안산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일정 내내 세월호 유가족 분들은 저희를 능숙하게 안내해주셨습니다. 어머님들이 직접 사고에 대해 설명하시고, 진상 규명에 앞장서시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그날, 단원고등학교에서 진행하던 추모제가 교장 선생님의 뜻에 따라 열리지 않기도 하거나, 4시 16분이 지나면 세월호 추모 현수막을 떼어버리기도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왜 참사를 잊지 않아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험이 처했을 때 도움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사회.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대형 참사가 계속 반복되는 무력감. 또 같은 참사가 계속 반복될 것이라는 불신. 그 참사들을 막는 것은 그저 당연히 주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회를 조금씩 바꾸기 위해서라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회학과 25학번 추정원 학우님은 초등학생 시절 겪은 세월호참사를 회상하며 추모사를 시작했다. 그는 안산기행을 통해 유가족들이 여전히 진상규명을 위해 힘쓰고 있음을 직접 느꼈다고 전했다. 그리고 반복되는 참사를 막기 위해선 기억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모든 학우님의 추모사 낭독이 끝나고, 사회를 맡은 박준성 학우님은 참사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과 함께 기억문화제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기억문화제는 참가자 전원이 기억의 나무에 노란 리본을 다는 퍼포먼스로 마무리됐다. 이날의 행사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 우리가 왜 세월호를 왜 잊지 말아야 하는지를 스스로 곱씹어보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것은 단지 과거에 있던 아픔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짊어져야 하는 그날의 책임을 묻고, 피해자와 유가족이 겪은 상실의 고통을 보듬는 일이다. 그 기억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동국 교지는 이날의 기억문화제를 통해 슬픔을 넘어 연대와 성찰의 힘을 되새길 수 있었다.
2014년 4월 16일 299명이 희생되고 5명이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 참사. 무엇 때문에 학생들이 그 차가운 바다에서 끔찍히 두려워 했어야 하는지, 무엇이 그들의 귀한 목숨을 앗아간 것인지. 참사 후 1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상규명은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다. 그저 책임을 미루고 잊혀지기만을 바라는 사이, 미흡한 예방과 대처로 인한 참사들이 다시 발생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우리 교지는 왜 잊지 않아야 하냐는 물음에 황채현 학우님의 추모사를 빌려 대답하고자 한다.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누구보다도 빛나는 눈을 가진 무고한 학생들이 희생된 이유를 찾고, 그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또 다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드는 굳건한 외침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정부는 반드시 진실을 규명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세월호참사와 같은 희생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것. 기억은 함께할수록 커진다. 그렇기에 동국대학교 학생들은 모이고, 기억한다. 기억문화제는 같은 참사를 막기 위해, 더 늦기 전에 바꾸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몫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되새긴다. 기억에는 힘이 있다. 작은 기억들이 모여, 동국인의 삶 속에 하나의 배처럼 오래 머무르기를. 그리고 그 배는 더 이상 희생이 반복되지 않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