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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에서, 159명의 별들에게.

[동악에서] 유라, 유림, 성원

by 동국교지 Nov 27. 2024


  올해로 이태원 참사는 2주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는 ‘놀러 갔다가 맞이한 죽음’이라고 곡해되어 온전한 추모가 이루어지지 않는 참사 중 하나이다. 참사 후 불과 2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10월 말 핼러윈 분위기에 그저 들떠 보였고, 재판과 특조위 편성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즉, 사람들은 10.29 이태원 참사를 잊어가고 있다. 그러나 여기, 동악에서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림 1: 이태원 참사 추모 문화제의 식순. ⓒ동국교지>

 <보라리본 서포터즈>는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추모 문화제를 개최하였다. 문화제는 추모사 낭독과 추모곡 공연, ‘함께 기억’ 패널 별 스티커 붙이기 퍼포먼스 등을 진행했다. 늦은 시간에도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팔정도를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동국교지는 추모 문화제를 주최한 <보라리본 서포터즈>와 공동주관 단체인 중앙동아리 <맑스철학연구회>, 사회과학대학 소모임 <산책은핑계고>, 사회학과 소모임 <로투스>, 북한학과 소모임 <학술동맹>과 만나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우리는 왜 10.29 이태원 참사와 희생자들을 ‘함께 기억’해야 하는지, 학우분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사진 2: 보리라본 서포터즈 김준겸 학우가 학내 추모문화제 사회를 보고 있다. ⓒ동국교지>

<보라리본 서포터즈> 인터뷰

-북한학과 김준겸     


Q. <보라리본 서포터즈>는 어떤 단체인가

준겸: 학내에서 10‧29 이태원 참사에 관해 기억과 추모의 분위기를 만들어보고자 기획한 단체이다.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맞아, 추모문화제와 더불어 유가족 간담회와 다큐 상영회를 진행했고, 학술문화관에 추모 공간을 조성하는 활동을 했다.   

  

Q. 학내 10‧29 이태원 참사 추모제에서 어떠한 역할을 맡았나

준겸: <보라리본 서포터즈>는 유가족 간담회 팀, 분향소 및 문화제 팀, 상영회 및 리본 공작소 팀 등으로 나뉘는데, 그중 총책임자이자 분향소 및 문화제 팀의 팀장을 맡았다.   

   

Q.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며 어려웠던 점이나 느낀 점이 있는가

준겸: 크게 어려웠던 점은 없었다. 이번 간담회와 문화제 모두 많이 참여해 주셔서 학교 내에 참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이 꽤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행사를 진행하며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다시 감각할 수 있었다.     


Q. 추모행사의 형식으로 추모문화제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준겸: 사람들이 지나다니다 쳐다보기 때문이다. 이목이 쏠리고, ‘오늘이 이날이구나’를 생각하게 된다. 이번 문화제에 대학원생 세 분이 함께하셨는데, 세월호 기억문화제를 지나가다 보시고 ‘학부생들이 이렇게 노력하는데 우리도!’ 하는 마음에 이태원 추모문화제에도 오셨다고 하셨다. 문화제는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잘 ‘보이기’ 위해 정식 대관을 거쳐 팔정도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Q. 추모문화제를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은 무엇인가

준겸: 온전한 추모를 나누고 싶었다. 세월호 참사 추모에 대한 반응은 ‘아직도 이걸 해?’이지만 이태원 참사는 ‘놀러 갔다가 죽은 건데…’이다. 사회적 참사에 대한 온전한 애도와 추모를 나누고 싶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더 참여할 수 있을 것인가도 중요하게 고민했다.     


Q. 추모문화제 전후로 학내에 추모 공간을 조성하셨는데 어땠는가

준겸: 먼저 매번 공간을 대여해주시는 예술대학 학생회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 여러 요구를 다 배려해 주셨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추모 공간에 붙은 메시지가 매일 늘어나는 것이 좋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국화를 갈았는데 경비 노동자분께서 국화가 시들까 봐 걱정했는데 갈아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건네주셨다. 노동자분들과도 함께 기억할 수 있어 좋았다. 분향소를 차려놓기만 하는 것은 성의가 없다고 생각해 정해진 시간에 상주하고, 리본도 나눠주었다. 기획단분들께서 마음과 시간을 많이 내주셔서 감사하다.

    

Q. 이번 추모문화제의 취지는 ‘함께 기억’이었다. 우리가 참사를 기억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준겸: 기억해야 연대할 수 있다. 머리와 마음에 부재한다면 남의 일이 된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나만이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함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 상영회가 끝나고 기억도 노력이 필요한데, 노력이 무엇이냐는 이야기를 나눴다. 노트북에 스티커를 붙여 연대를 표할 수도 있고, 서명을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요구하는 기억은 큰 것이 아니다.     


<사진 3, 4: 추모문화제에 참가한 학우들이 함께 기억 별 퍼포먼스에 참여하고 있다./완성된 함께 기억 패널. ⓒ동국교지>

Q. ‘함께 기억’ 패널에 참석 인원들이 다 함께 야광 별을 붙이는 퍼포먼스가 인상 깊었다.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는가

준겸: 원래는 기억낭독문 같은 것을 읽어볼까 싶었는데 수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 같이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의 사건을 기억하면 아직 큰 슬픔이 있다. 슬픔과 낙담을 다른 기억과 행동으로 환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이어서 별을 붙인 것도 있지만, 희생자분들을 별이라고 칭하고 유가족분들도 별 가족이라고 불린다는 점에서 별 스티커를 선택했다. 이 스티커를 함께 붙이는 행위를 통해 다 같이 마음을 모으는 것이 시각적으로 형상화되길 바랐다.


Q.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무엇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준겸: 나는 97년생이라 세월호 희생자와 같은 나이로 살아가고 있다. 대학에 와서 안전한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세월호 관련 행사를 비롯한 여러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을 때 허탈했다. 내가 했던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시민 사회는 앞서기 시작했는데 국가는 뒤처지고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태원 참사는 그 말을 상기하는, 세상이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월호 참사가 미결로 남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시민의 안전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Q.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회적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 위해 국가에 요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준겸: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어떠한 국가적 참사가 발생하면 국가는 가해자인 동시에 수습자이다. 그렇기에 참사에 대해 명백하게 밝힐 수 있는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이 점을 유념하며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유가족분들이 계속해서 이 두 가지를 말씀하시는 데에는 가족, 동료들의 죽음에 대한 애통함도 있지만 또 다른 피해를 만들지 않고자 하는 의도가 가장 클 것이다.


Q. 재판부는 책임 소재가 있는 서울청과 용산구청 관계자들에게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보았지만, 결국 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준겸: 구청이 책임지는 것에는 국민의 안전도 있을 것이다. 국가가 지자체의 책임을 소극적으로 해석한 것 같다. 이번 판결은 앞으로 ‘용산구청장은 사고가 일어나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라는 말과 같다고 생각한다. 경찰은 책임지고 구청장은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볼 수 없고, 이런 해석을 가능케 하는 법도 문제이다.


Q.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내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조사를 개시한다고 한다. 특조위 활동을 통해 기대하는 바가 있는가

준겸: 세월호 참사가 여전히 미결로 남아있기에 기대되는 바는 잘 모르겠다. 지난한 싸움이 될 것 같지만 냉소에 그치기보단 우리가 어떻게 힘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려 한다.


Q. 이태원 참사를 잊어가고 있는 이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준겸: 이태원 참사에 대해 완전히 잊은 사람은 없겠지만, 어느 순간 기억이 희미해지며 우리 사회가 안전하다는 착각에 있는 것 같다. 참사가 멀어지며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조차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이태원 참사 당시에 느꼈던 비일상적이고 불편한 감각이 삶이 진행되며 희석되는 것이다. 참사를 잊는다는 건, 우리가 또다시 안전하지 못한 사회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말과 같다.


Q. 이번 추모 행사에 참여한 학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준겸: 잊지 말자고는 했지만 시험 기간에는 잊힐 수 있고, 몸과 마음에서 멀어질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특조위에서 행동하거나 사건이 생길 땐 간담회에서 또는 문화제에서 겪은 마음을 생각하며 한번씩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


Q. <보라리본 서포터즈>의 앞으로의 계획이 있는가

준겸: 올해는 없고 내년에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여건이 된다면 더욱 다양한 것들을 기획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사진 5: 신정연 학우가 추모시를 낭독하고, 학우들은 묵념을 하고 있다. ⓒ동국교지>

<사회과학대학 도시산책소모임 산책은핑계고> 인터뷰

-북한학과 조민     


Q. <사회과학대학 도시산책소모임 산책은핑계고>는 어떤 단체인가

민: 이름 그대로 도시 산책 소모임이다. 하지만 산책을 핑계로 다른 걸 도모하는 동아리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병폐나 고쳐야 할 지점들을 산책하며 배워보자는 취지이기에, 가두시위나 행진 등 아스팔트 위를 걷는 경우가 많다. 세미나를 열어 발제하기도 하고, 논의 결과가 집회 참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Q. 학내 10‧29 이태원 참사 추모제에서 어떠한 역할을 맡았나

민: 공동 주관단체로 참여했고, 사람을 모으는 역할을 하였다.      


Q. 어떤 취지로 공동 주관 단체로서 추모제에 참여하게 되었나

민: 우리가 활동하는 공간인 우리 학교에서 집회가 열리고, 공동 주관을 구한다고 하면 함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Q.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며 어려웠던 점이나 느낀 점이 있는가

민: 학과 친구들이 많이 와주어서 좋았다. 대학원의 생사문화산업학과 학우분의 발언을 통해 해당 학과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고, 추모를 다루는 학과이다 보니 기억하려고 노력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 또한 느꼈다. 수업을 미루고 반 전체가 추모제에 와주셨고, 발언도 해주셨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고 싶다.      


Q. 이번 추모문화제의 취지는 ‘함께 기억’이었다. 우리가 참사를 기억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민: 다음 참사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에 주목하는 이유는, 같이 기억하는 것이 혼자 기억하는 것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다. 친구와 기억하는 것, 동아리와 기억하는 것, 사회와 기억하는 것은 층위가 다르다.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Q.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무엇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민: 세월호 참사이든 이태원 참사이든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사람 많은 곳도, 출근길 지하철도 타지 않고 각자도생해야 하는 건가. 사회적 참사를 계기로 바뀌는 것이 없다면 참사가 끊이지 않을 텐데, 참사를 당하는 사람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참사를 만드는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더불어 기억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갈수록 죽음에 무뎌지는 것 같다. 삶과 죽음을 가벼이 여기고 타인의 죽음을 쉽게 말한다. 사회를 바꾸자는 구호가 중요한 만큼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바뀌는 것도 중요하다.  

    

Q.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회적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 위해 국가에 요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민: 진실 규명 및 책임자 처벌에 더불어 기억을 가로막지 않기를 바란다. 국가의 책임이기에 국가에 요구하는 것이다. 국가는 계속 기억하고 남길 필요가 있는데도, 기억하지 않는 것을 유도하거나 정쟁적 프레임을 씌우는 등 방해를 하고 있다. 하지만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억해야만 한다.


Q. 재판부는 책임 소재가 있는 서울청과 용산구청 관계자들에게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보았지만, 결국 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민: 도의적 책임이 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어디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이 피고들이 무죄라면 우리는 어디에 죄를 물어야 하는가? 시민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법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고, 필요하다.


Q. 몸짓패 다율, 북한학과 여성주의 소모임 등 학내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고 계시는데 운동의 원동력이 무엇인가

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공간부터 바꿔야 세상이 바뀌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는 동료들이 있기도 하고, 가장 쉽게 모일 수 있는 공간이라 기동력이 있기도 하다.


Q. 이태원 참사를 잊어가고 있는 이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민: 잊어가는 사람보다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당장 바쁜 일 때문에 추모를 유예하는 사람도 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처럼, 추모는 유예할 수 없는 것이다. 각자만의 방식으로 추모했으면 좋겠다. 회피하고 있는 것이거나 혹은 정말 매정한 사람이거나,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추모하지 않으면 다음 참사를 막을 수 없다. 기억한다는 것이 본인과 사회, 공동체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          




<사진 6: 학우들이 팔정도에 모여 앉아 추모문화제에 참여하고 있다. ⓒ동국교지>

<북한학과 학술소모임 학술동맹>

-북한학과 이성록   

  

Q. <북한학과 학술소모임 학술동맹>은 어떤 단체인가

성록: 북한학을 공부하는 곳이다. 학회에 가까운 성격을 띤다. 북한 내부 정치나 북한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관해 공부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상황, 분단이라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곳이다.


Q. 학내 10‧29 이태원 참사 추모제에서 어떠한 역할을 맡았나

성록: 공동 주관단체로 이름을 올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출자했다.


Q. 어떤 취지로 공동 주관 단체로서 추모제에 참여하게 되었나

성록: 소모임을 하는 구성원끼리 참사에 대해 다시 한번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Q. 보라리본 서포터즈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성록: 다큐 상영회가 기억에 남는다. 《별은 알고 있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봤었다.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다큐는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았다는 것이 인상에 남았다.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해 행사가 있을 때 요청을 드리면 파일을 받고, 상영이 끝나면 삭제하는 수순을 밟는다. 이렇게까지 해야 했던 이유를 생각해 보니 참 끔찍했다. 유가족과 피해자가 당하는 2차 가해가 정말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개인적으로 숨이 턱 막히는 경험이었다.


Q. 이번 이태원 참사 추모제에서 '함께 기억' 퍼포먼스가 인상 깊었다. 우리가 참사를 기억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

성록: 좋아하는 말이 있어 준비했다. “인간의 권력 투쟁은 망각에 맞서는 기억의 투쟁이다.” 밀란 쿤데라의 『웃음과 망각의 책』에 나오는 글이다.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회적 참사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가장 두려운 것은 참사가 잊히는 것이다. 이러한 참사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에게는 인생을 뒤흔든 일인데도 결국에는 잊힌다는 것이 두렵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하게끔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Q.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무엇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성록: 국가 기관이 보였던 직무 유기, 무책임함이 타파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한 공간으로 만드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활동에 참여하며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사람이 실종된 감각이었다. 지금은 참사라는 아이디어만 남고 피해자와 유가족이 실제 사람이라는 점을 잊고 말을 쉽게 하거나 단순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점이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Q.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회적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 위해 국가에 요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성록: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 계속 요구되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대통령실에서 명확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도의적인 모습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Q. 재판부는 책임 소재가 있는 서울청과 용산구청 관계자들에게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보았지만, 결국 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성록: 사회적 재난에 대한 책임 회피에 면죄부를 준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용산서장은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그들의 차이를 용산서장이 조금 덜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찾는다면, 이 면죄부가 우리나라 공직자에게 큰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는 우려가 있었다.


Q. 참사에 대한 경찰 및 구급 대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성록: 경찰 대응에 관해 얘기가 많았던 것은 대통령실과 용산경찰서가 어떤 관계인지에 대한 논쟁이었다. 이것 때문에 보수층 정계인사들이 참사를 문제시하는 것을 감췄던 것이 아닐까 싶다. 한편으로는 응급대처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을 보면 대통령 개인의 비행 때문이 아닌 것 같다. 단순한 정치적 문제보다도 우리 사회가 가지는 문제가 더 심각하구나, 세월호의 문제가 여전히 잔존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Q. 기억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학내 문화제 이후에 우리 학우들의 어떤 변화를 기대하시는지 듣고 싶다.

성록: 학내 문화제 전후로 많은 행사들이 있었다. 행사에 참여하며 “결국에 이태원 참사는 사람이 당한 일이다. 이 사건에 사람이 있었다”라는 것이 많이 떠올랐다. 숫자와 통계가 아닌 159명의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


Q. 2차 가해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2차 가해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성록: 두 가지 정도 생각났다. 첫 번째로는, 혐오가 제일 쉬운 일이라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관성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두 번째로는, 사람이 죽는 것에 우리 사회가 너무 무뎌진 것이 아닐까, 하는 착잡한 마음이 든다. “놀러 갔다 죽었다”라는 말에도, 물론 그 이면에는 “그러니까 국가 책임은 없다.”라는 말이 숨어있지만, 놀러 갔다 죽었으니 괜찮다는 식의 말 자체가 문제인 것 같다. 사람이 놀러 가서 죽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Q. 연대 활동을 하다 보면 교차성에 대해 많이 느끼게 된다. 교차성을 지니고 연대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는가

성록: 교차성 속의 연대라는 것이 사실 한반도 평화를 의제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다. 여성 운동, 성소수자 운동, 노동권 운동이 이 의제와 무슨 상관이 있냐는 질문이 많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자면 세상에 상관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모순은 다양한 공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터져 나오는 것뿐이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른 문제처럼 보이는 것도 하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Q. 학술동맹의 시선으로 본 이태원 참사는?

성록: 한국전쟁 전후의 역사를 보면, 모든 가능성이 있어야 했을 해방 공간에서 국가의 폭력에 의해 죽은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서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은 사람도 있는데, 이들 모두 하나의 소중한 인격체였다. 이 점에서 썩 유쾌하지 못한 데자뷔가 반복되었다고 생각한다. 죽음에 둔감해지는 것이 무서운 일이라고 말했던 이유도 북한학을 공부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제주 4.3 사건의 위령비 속 이름 없는 사람들이었다. 주로 3살, 5살의 어린아이들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어 그렇게 적혀있다. 그 짧은 삶에도 분명 행복도 불행도 있었을 텐데, 어떨 때는 10만의, 또 어떨 때는 12만의, 이태원 참사의 경우 159의 숫자로 치부되고 통계로만 남는 것이 참 싫고 공포스러운 일이다.


Q. 이태원 참사를 잊어가고 있는 이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성록: ‘참사 생존자’라는 말이 있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에 대해서는 그 생존자라는 것이 어디까지를 이르는 개념인가를 따졌을 때, 결국엔 우리 모두가 생존자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단지 운이 좋아서 살아있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잊을 수는 없지 않을까 싶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성록: 밀란 쿤데라의 말로 마무리하고 싶다. “기억하지 않으면 잊혀지니까, 망각과 함께 싸우자.”             



<사진 7: 사회과학대학 밴드 '아노미'의 김신우(좌), 허정원(우) 학우가 추모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동국교지>

<사회학과 학술소모임 로투스>

-사회학과 허정원     


Q. <사회학과 학술소모임 로투스>는 어떤 단체인가 

정원: 노동법에 관해 공부하는 모임이다. 노동법의 취지 자체가 자본주의의 모순에서 노동자를 일정 정도 구제하려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인 한계들을 지니고 있다. 이에 대해 탐구하는 소모임이다.


Q. 학내 10‧29 이태원 참사 추모제에서 어떠한 역할을 맡았나

정원: 보라리본 서포터즈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다양한 팀이 있었는데 분양소 설치와 추모제 준비를 하는 팀에 소속되어 활동했고, 추모제에서 공연도 했다.


Q. 어떤 취지로 공동 주관 단체로서 추모제에 참여하게 되었나

정원: 소모임 내부에서 보라리본 서포터즈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다 함께 참여하고 추모해 보자는 의미로 참여하게 되었다. 공동 주관단체로 이름을 올리는 것에서도 하나라도 이름이 많은 것이 좋지 않을까 싶었다. 소모임 내부에서 활동을 많이 하지 않으시는 분들에게도 같이 가보고 경험에 대해 같이 나누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Q. 행사의 기획과 진행에서 어려웠던 점이나 느낀 점이 있었나

정원: 행사 기획을 맡은 것은 처음이었다. 보라리본 서포터즈 사람들을 모으고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학내에서 관심을 끌 방법이었다.


Q. 보라리본 서포터즈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정원: 보라리본 서포터즈는 크게 다큐 상영회랑 유가족 간담회, 보라리본 공작소 방문 행사를 진행했고, 2주 동안 분향소 설치를 진행했다. 그중 유가족 간담회의 경험이 가장 인상 깊었다. 간담회 말미에 유가족분들에게 질문드리는 시간이 있었다. 무슨 질문을 할지 고민하다가 “이분들이 답해야 하는 의무라도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국가가 답변해야 할 차례라는 생각이 크게 들었던 것 같다. 또 그 자리에 참석하셨던 다른 분께서 유가족분들께 분향소를 지나치며 인사를 드리지 못해 죄송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유가족분께서 욕하면 지나가는 사람도 있는데, 따듯한 눈길로 쳐다보기만 해도 많은 힘이 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할 일은 참사에 관심을 두는 것이구나, 엄청나게 많은 힘을 들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가 줄곧 경시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Q. 이번 이태원 참사 추모제에서 '함께 기억' 퍼포먼스가 인상 깊었다. 우리가 참사를 기억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

정원: 사건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만, 우리는 결국 기억을 통해서 사건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일련의 노력의 과정이 덧붙여져 하나의 기억이 되기 때문에, 어떤 기억을 할 건지, 어떻게 기억을 지속할 건지가 가장 중요하다.


Q. 이번 추모제에 사회과학대학 밴드 ‘아노미’ 멤버로서도 참여해 주셨다. 추모 공연에서 예람의 ‘호흡’이라는 노래를 부르셨는데, 해당 곡을 고른 이유는 무엇인가

정원: 처음 노래를 접했던 것은 세계 위안부 기림일에서였다.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 너무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예람 님이 이태원 참사 유가족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점을 늘 기억하고 있었는데 마침 공연을 맡게 되어 이 노래를 선택하게 되었다. 기억을 이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그 과정에서 지치지 않는 것도 분명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람 님의 인터뷰 중에 지치지 않고 나아가자는 의미로 가장 마지막에 부르신다는 내용이 있었다. 눈물짓고 슬픈 기억으로 남길 수도 있겠지만 오래 기억을 지속하기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인 것 같았다.


Q. 예람의 ‘호흡’에서 좋아하는 구절은 무엇인가, 다음에도 공연을 하게 된다면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은가

정원: “넌 푸른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모래야. 넌 거친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나무야.” 노래 가사처럼, 풍파를 겪고, 풍파가 남아 있어도 계속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는 존재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다음번에는 수요시위 때 불렀던 한로로의 ‘정류장’을 부르고 싶다. “나의 절망과 소망까지도 또 다른 내가 찾아올 때 쉬어갈 수 있도록”이라는 구절이 특히 좋다. 여러 시위 중에는 연대가 항상 강조된다. 시위나 집회의 장소는 생존 피해자분들이나 연대하는 사람들이 오가는, 여러 사람이 교차하는 곳이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짧은 마주침을 겪고 헤어지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는 존재들이고, 그 장소에서만큼은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Q.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무엇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정원: 유가족 간담회에 참석했었다. 실제 유가족분들이 오셔서 발언도 하고 여러 질문에 답변도 해주셨다. “유가족분들이 얼마나 많은 질문에 답하셔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유가족분들이 아니라 국가가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밝혀야 하는 시점이다.


Q.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회적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 위해 국가에 요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원: 유가족과 생존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를 국가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갑자기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사람들이다. ‘놀다가 죽었는데 왜 그러냐’는 모욕을 확산하는 움직임을 국가적 차원에서 막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Q. 재판부는 책임 소재가 있는 서울청과 용산구청 관련자들에게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고 봤지만, 결국 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정원: 당시의 상황을 봤을 때 이태원에 배치한 경찰의 병력이 현저히 적었고 용산 시위에 배치된 수가 훨씬 더 컸다. 그런 상황을 봤을 때 이들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가능한가, 결국 꼬리 자르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Q. 참사에 대한 경찰 및 구급 대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정원: 구급 대응에 대한 부분에 충격이 컸다. 행정단체에서 유가족분들에게 연락이 가지 않은 것, 다음 날 오후까지도 피해자가 돌아가신 것을 몰랐다는 점 등 당연히 존재할 것으로 생각했던 국가와 일련의 행정 과정들이 부재했던 것이다.


Q. 초반에 이태원 참사가 보도될 때 마약 의혹을 중심으로 한 보도가 많았다. 이태원 참사에 있어서 언론의 책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정원: 참사 일주일을 생각해 보면 자극적인 이미지를 많이 접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자극적인 미지만을 보여주는 것이 참사에 대해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Q. 기억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학내 문화제 이후에 우리 학우들의 어떤 변화를 기대하시는지 듣고 싶다.

정원: 적어도 2차 가해는 멈춰 줬으면 좋겠다. 분양소에 앉아 있을 때 2차 가해를 하며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희생자들이 단순 숫자가 아니라 각자의 삶이 있고 각자의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한다.


Q. 2차 가해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2차 가해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정원: 이태원이라는 장소가 가지는 의의와도 맥락이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이태원은 놀러 가는 곳이고, 성소수자나 외국인과 같이 여러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곳이다. “놀다가 죽었다”라는 말은 어떤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을 뜻한다. 한국 사회가 ‘생산적이고 가치 있는’ 기능을 수행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서만 슬퍼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Q. 연대 활동을 하다 보면 교차성에 대해 많이 느끼게 된다. 교차성을 지니고 연대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는가

정원: 다양한 집회에 많이 나가고 있다. 주변에서는 “네가 여기에 왜 관심이 있어?” 같은 질문을 많이 듣는다. 대학생의 입장에서 연대의 자리에 나가는 것이 위선적인 것일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여러 의제에서 우리는 떨어지고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연대의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로투스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태원 참사는?

정원: 사람을 하나의 기능이나 쳇바퀴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바라보게 되고, 이를 통해 죽음조차 정당화되고 당연시되는 사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보라리본 서포터즈 활동을 하며 아리셀 참사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났다. 아직 100일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사회는 이 죽음을 잊은 것 같고, 나 또한 잊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이태원의 죽음도, 아리셀의 죽음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이태원의 죽음이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아리셀의 죽음도 기억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Q. 이태원 참사를 잊어가고 있는 이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정원: 우리는 이태원 참사를 보도된 내용으로만 접하게 된다. 이면에 있는 일련의 진상규명 활동들을 자주 접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진상이 다 밝혀지지 않았을 수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 함께 진상규명의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고 정부에 요구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정원: 언제나 2차 가해의 맥락에 영향을 받지 않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 맥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2주기에 출간된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를 읽는 과정에서 정말로 살아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을 체감했다. 물론 거시적인 맥락도 중요하지만, 여전히 남의 문제로 느껴진다면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좋겠다.

 



<사진 8: 김원 학우가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동국교지>

<중앙동아리 맑스철학연구회>

-철학과 김원


Q. <맑스철학연구회>는 어떤 단체인가

원: 동국대학교 정기 학술 동아리다. 이론과 실천의 병행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기르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를 중심으로 학습하며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등 다양한 진보적인 이사회 사상을 종합적으로 공부한다. 이론 이외로도 집회에 연대하는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Q. 학내 10‧29 이태원 참사 추모제에서 어떠한 역할을 맡았나

원: 맑철 내부에 보라리본 서포터즈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아 공동 주관단체로 참여하게 되었다. 실무에는 많이 참여하지 못하고 발언을 맡게 되었다.


Q. 어떤 취지로 공동 주관 단체로서 추모제에 참여하게 되었나

원: 동아리 내부에 보라리본 서포터즈에 속한 사람들이 많았고, 참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서 참여하게 되었다. 학술동아리이기도 하지만 이론적 공부뿐만이 아니라 실천적인 활동을 목표로 하고 있고 이태원 참사가 멀리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가 컸다.


Q. 행사의 기획과 진행에서 어려웠던 점이나 느낀 점이 있었나

원: 발언문 작성하며 정원과 비슷한 고민을 했다. 참사 2주기가 되어 작년에 비하면 관심이 많이 줄었던 것 같다. 발언에서 관심을 환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방법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Q. 보라리본 서포터즈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원: 26일의 시청광장의 추모제에 참석했었는데, 생존자분의 발언이 인상 깊었다. 생존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국가에 계속해서 증명해야 했다. 지금 국가는 책임을 최대한으로 방기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우리가 계속 연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이번 이태원 참사 추모제에서 '함께 기억' 퍼포먼스가 인상 깊었다. 우리가 참사를 기억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

원: 뻔한 이유지만 진상규명이나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발언문에도 인용했지만, 인간이 고통받는 곳이 지옥이 아니다. 인간의 고통에 그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 곳이 지옥이라고 생각한다. 참사로 사람이 죽은 이후로 유가족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 또한 우리가 처한 심각한 문제 상황이다. 이런 사회는 신뢰가 작동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코 피해자와 유가족분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Q.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무엇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원: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 국가에 대한 비판이 가장 많이 얘기되는 것 같다. 이태원 참사에 국가의 실패도 있지만 사회의 실패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유가족을 향한 혐오 발언을 생각해 봤을 때,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나아가는 것에 실패했다는 것이 한국 사회의 안 좋은 면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싶다. 연대 불감증에 대해 경각심을 길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Q.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회적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 위해 국가에 요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원: 참사 당일날 국가가 책임을 방기한 것과는 별개로 국가에서 유가족과 피해자들을 향해 진심으로 다가가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모습이 있었다면 유가족분들이 지금만큼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참사 이후 국가가 이 사안을 진지하게 여기거나 유가족을 향한 신뢰를 보이지 않았고, 결국 참사 이후의 책임을 방기했다고 본다.


Q. 재판부는 책임 소재가 있는 서울청과 용산구청 관련자들에게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고 봤지만, 결국 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원: 체르노빌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생각났다. 체르노빌 참사는 결함 있게 설계된 원자로가 원인이었다. 그런데 재판에서는 원인을 제공한 국가의 책임은 감추고 그날 발전소에 있던 책임자 몇 명만을 처벌했다.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 인력이 부족했고 안전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았던 등의 국가의 책임은 감추고, 현장에 있던 실무진에게 책임을 넘기는 것이다. 꼬리를 자르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Q. 참사에 대한 경찰 및 구급 대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원: 뉴스를 본 기억으로 서울에 있는 병동이 모자라 일산 동국대 병원에도 갔다고 들었다. 용산에서 동국대 병원까지 차로 1시간 넘게 걸린다. 치안 시스템뿐만이 아니라 보건 시스템에도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이 점이 해결되지 않으면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공적인 보호가 발생한다는 것은 사회적 약속인데, 그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어디에 있든 불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Q. 초반에 이태원 참사가 보도될 때 마약 의혹을 중심으로 한 보도가 많았다. 이태원 참사에 있어서 언론의 책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원: 언론사가 의식했든 안 했든 마약 보도는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였다고 생각한다. 마약을 복용했다고 할지언정 공권력의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약 보도는 피해자는 순수해야 한다. 부추기는 행동이었다. 언론이 신중하게 보도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Q. 기억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학내 문화제 이후에 우리 학우들의 어떤 변화를 기대하시는지 듣고 싶다.

원: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조사해 만든 책이나 영화를 보면 분명 각자만의 삶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피해를 기억하는 것과 별개로 피해자로서의 것만이 아닌 그들의 삶을 기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Q. 2차 가해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2차 가해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원: 이태원 참사의 가장 많이 대두되는 2차 가해가 “나라 지키다 죽었냐”라는 말이다. 사실 근본적으로 국가는 모든 피해에 책임을 질 의무가 있다. 나라를 지키다 죽은 사람과 놀다 죽은 사람이 대립할 이유가 없다. 이런 현상은 피해에 대한 경중을 나누고 무게를 나눠 값을 매기는 것이다. 이를 통해 피해자 사이의 경쟁을 조장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 사회의 경쟁주의적인 문화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남의 일이 아니라 동료 시민의 이야기라는 것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Q. 추모사에서 언급해 주셨듯 일각에서는 ‘놀러 갔다가 죽은 사람들에게 무슨 추모고 보상이냐’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추모사를 낭독하며 이런 반응에 분노하셨는데, 추모의 중요성을 폄하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린다.

원: 놀러 갔다고 죽었다고 그게 정상적인 일인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일상을 누리다가 갑작스러운 사회적 참사에 휘말린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또한 반복해서 말하지만, 참사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근처에 몇 다리만 건너면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이 있다. 희생자와 생존자들을 소수의 무절제한 사람들로 몰아가는 것은 너무도 잘못된 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Q. 이태원의 장소성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이태원 참사를 향한 혐오는 약자들을 향한 공격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원: 사람이 혐오하기로 마음을 먹으면 구실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성소수자의 이미자와 엮는 것은 의식했는지와는 무관하게 편견과 혐오의 작용이라고 생각한다.     


Q. 추모사에서 연대와 단결의 이름으로 행동할 것을 역설하셨다. 우리는 개인으로서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나

원: 첫 번째로는 자기 일임을 인식하고. 서로 위로하고 단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해결된 것이 아니니 국가 기구를 감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연대 활동을 하다 보면 교차성에 대해 많이 느끼게 된다. 교차성을 지니고 연대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나

원: 연대하는 공간에 가면 내가 여기에 오는 것이 맞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당사자가 아닌 경우도 많으니 어떻게 보면 남의 일이기도 하다. 사실 활동가분들도 자주 하는 고민이라고 한다. 우리가 연대한다고 왔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고 어디까지 대변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자연스러운 고민이기도 하고 건강한 질문인 것도 같다. 한 개인의 정체성은 다양하다. 각각의 정체성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강자로서, 또 어떤 때는 약자로서 존재한다. 자본주의적 특성은 이 과정에서 내적인 분열을 유도하고 한 개인을 항구적인 위치로 이주시키려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운동은 자본주의의 특성을 넘어서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교차성에 대한 고민은 안고 가야 하는 존재라 없애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통하며 해소하고 다독이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이태원 참사를 잊어가고 있는 이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원: 살아남은 것이라는 표현에 공감이 간다.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라도 다시 경험할 수 있는 일이고, 생각보다도 가까이에 있는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유가족에게도 진심으로 다가가야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원: Interpol이라는 밴드의 NYC라는 곡의 가사를 첨부하고 싶다. 911 테러의 추모곡이다. NYC는 911테러가 발생했던 뉴욕시를 의미하기도 하고, 유가족 구호단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Training myself not to care,(무심해지도록 스스로를 훈련하고)”라는 가사가 있다. 유가족들은 향한 2차 가해나 무관심이 사실은 일종의 방어기제이기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마지막 가사는 “Got to be some more change in my life(내 삶에 더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해)”라며 끝난다. 우리 사회는 언제나 일상의 위기가 존재한다. 우리는 재난이 되지 않을 사회를 만들기 위해 더 나아가야 한다.




  2년 전 그날, 이태원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 이들은 그저 ‘놀러 갔다 죽은 사람들’이 아니다. 무너진 정부와 경찰 및 의료 시스템에 의해 희생당한 피해자들이다. 또한 이들은 언론과 포털에서 허위사실 유포 및 2차 가해를 당하며 여전히 온전하게 추모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2년 전 그날을 떠올리기 괴로워하지만, 가족의 억울한 죽음을 규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따라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추모와 진상규명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이 참사를 기리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저 ‘함께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우리가 연대하여 다 같이 기억하고 잊지 않는다면 참사의 진상규명 및 조사에 더 큰 힘이 실릴 수 있다. 더불어 참사의 여러 문제점과 책임소재를 여러 번 되새김으로써 다음 참사가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10월 29일 하늘의 별이 된 159명의 사람들은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친구였으며, 연인이었고 동료였다. 소중한 사람들을 국가적 참사로 인해 한순간에 잃게 된 슬픔은 몇 년, 몇십 년이 되더라도 쉽게 치유될 수 없다. 그러니 우리도 몇 년, 몇십 년이 걸리더라도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해야만 한다. 동악의 학우들은 이태원에 떠오른 159명의 별들을 기리며, 참사의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돌아오는 가을마다 잊지 않고 추모에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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