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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여는 말

서은

by 동국교지

12월 7일, 국회의사당 앞 도로에 휴대용 방석을 깔고 앉아 복잡한 심경을 마주했습니다. 광장의 주인으로서 오랜만에 사회 앞에 당당할 수 있던 것이 기뻤지만, 주인의 것이라기엔 너무도 추운 자리에 슬펐습니다. 민주정치를 수호하기 위해 모인 시민 일동은 광장에 자리를 차지함과 동시에, 안전과 안정을 잃고 국가의 폭력을 무방비 속에 마주해야 했습니다. 민주정치를 배반한 이들은 대조적으로 따듯한 자리를 무책임하게 비움에도, 우리는 왜 그곳에 남아있었을까요?


또 다른 생각이 있습니다. 자리 없는 존재는 괴롭습니다. 매 순간 생존해야 하며 허가되어야 하고 증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우주를 떠올리며, 존재하기 힘든 지구에서 벗어나 별이 되는 상상을 합니다. 하지만 상상은 상상일 뿐, 우주선에는 제 자리가 없기에 올린 고개를 내리고, 감은 눈을 뜹니다. 자리가 없는 현실을 봅니다. 모순되게도 그런 세상 에서 저는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동국교지 85집은 자리에 대해 말해보려 합니다. 단순한 공간이 아닌, 존재를 상정한 자리를 말입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동국대학교 학생의 시선으로 대학이 우리에게 마련한 자리에서 안전을 찾습니다. 「오래된 도시에 더는 오래된 것들이 없고」는 삶의 자리를 무너뜨리고 부동산의 자리만이 들어차는 주거에 대해 말합니다. 「거리는 누구를 배제하는 가」는 장애인이 배제된 거리를 보며 무형의 혐오가 유형의 자리를 빼앗는 과정을 적습니다. 「Seoul (not) My Soul」은 애초부터 상경 청년을 위한 자리는 없이 권력의 재생산을 위해 그들을 착취할 뿐인 서울의 환상 을 밝힙니다.


사회면의 「디지털 성범죄의 온상, 남초 커뮤니티」는 반복되는 성착취의 원인으로 남초 커뮤니티와 이를 지지하는 국가를 지목합니다. 「분단 이 낳은 모든 것」은 분단 이래로 남한을 지배하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권위주의를 조명합니다. 「불평등하며 관대하고 폭력적인 국경에 대해」 는 근대 국가질서가 묵인하던 폭력의 부정함과 새로운 세계로의 상상을 그립니다. 「간절함을 뜯어먹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본질을 잊은 종교가 권력과 결탁한 모습을 비판합니다. 한편, 기고면의 「살아남았단 건 다정하다는 증거」는 혐오를 이길 다정에 대해 말하며, 「방송국의 목소리 너머」는 아나운서의 노동환경에 대해, 「일할 수 있지만, 일할 수 없 는 나라」는 이주노동자의 처우에 대해 말합니다.


누군가는 자리를 빼앗기고, 누군가는 자리에서 배제되는 와중에, 누군가는 자리를 이탈하고, 그럼에도 누군가는 자리를 만듭니다. 존재는 자리를 필요로 하나 자리가 없어진다 한들 존재는 사라지지 않으며, 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정치의 의무임에도 자리를 만드는 것은 모든 존재의 역할입니다. 자리 없는 도로와 광장을 투쟁의 공간으로 만들어온 우리는 몇 번이고 그 결과로서의 자리를 마주해왔습니다. 그렇기에 결국에 는 또다시 상투적이며 순진한 말투로 돌아와,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민주시민임을,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갈 자리를 위해 투쟁해야함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지편집위원회 동국은 1986년부터 학생회관의 한켠에 자리해 있습니다. 존재를 증명하며 학생회관에 자리를 만들고, 교지대를 빼앗기던 중에도 자리를 지킨 역사를 디뎌 매주 글을 쓰고 고칩니다. 우리의 글이 비록 직접 디딜 땅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손에 쥘 수 있는 공론의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東國 동국교지 편집장 김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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