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 현서, 현아
학교 가는 길을 떠올려보자. 지하철역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학교에 도착해서는 수업을 듣기 위해, 식사를 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내린다. 학기가 시작한 이후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이러한 생활의 기반이 되는 것이 바로 학내 시설이다. 설비의 정도에 따라 학업이 방해되기도, 식사가 제한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생활에 익숙해짐에 따라 시설은 배경화된다. 의도적으로 주목하지 않는 한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본 기사는 너무도 당연해 주목하지 못했던 학내 시설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우리 학교를 둘러보았다. 우선 취재 당시 법학관 계단 보도블럭이 파손되어 있었지만, 곧 복구 공사가 이루어져 학생들은 크게 불편함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이처럼 대학의 빠른 대처로 학생들의 편의와 안전이 보장된 사례는 다수 있었다. 그러나 취재 시작 전부터 이용의 불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사 작성 시점까지도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곳들도 있었다. 정보문화관 계단에는 비가 오지 않는 날이었음에도 누수가 있어 물통이 방치되어 있다. 또한 학림관 계단과 정보문화관 앞 계단은 파손되어 보행에 방해가 되는 상태이다. 이렇게 노후하고, 파손된 시설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시설 이용에 있어 기본적인 안전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동국대학교의 현 상황을 보여준다.
이러한 우리 학교 시설에 대해 실제로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우리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설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학교를 다니며 불편했던 경험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대해, 학생들은 정보문화관과 원흥관에서 물이 새고 건물이 전체적으로 낡아서 불편한 점이 많다고 답했다. 또한 학교 부지의 경사가 심하여 불편하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와 같은 시설이 부족하다는 답변이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학생들 모두 학교를 다니면서 불편했던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대부분 학교 시설이 낡았으며 학교의 경사가 심해서 불편하다는 답변이었다. 우리 대학은 남산 둘레에 위치해 가파른 경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특징은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와 같은 시설을 통해 보조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계단과 가파른 오르막에서 우회할 수 없는 경우들이 존재한다. 비장애 학우들마저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에서 장애 학우의 경우 접근이 불가능할 수준임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노후에 대해서, 지난 학기 발생한 화재사고와 지속적인 누수 문제가 존재한다. 누수와 화재는 건물의 노화가 심각해 이용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대학은 아직까지 근본적인 대책을 제공하고 있지 않다.
<사진1: 시계방향으로 법학관, 충무로역 에스컬레이터, 정보문화관 계단, 학림관 계단 ⓒ동국교지>
지난 9월 27일 금요일, 정보문화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학기 중이었기에 상당 수의 학생이 강의를 듣기 위해 해당 건물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화재 발생 이후에도 위험경보와 대피 안내가 미비했으며, 화재 상황마저도 파악되지 못했다. 따라서 해당 건물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은 교수자가 도착한 이후에서야 화재를 인지하고 대비할 수 있었다. 이후 불이 언제 어떻게 꺼졌고, 다치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는지, 이 불이 왜 발생한 것이며 재발 방지를 위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학생들은 모른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사과는커녕 기본적인 상황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해당 화재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마저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고 발생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학생들이 많다. 인지하고 있는 학생들도 친구에게 듣거나 교내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 내 학생 게시글을 통해 알게 된 상태에 불과하다.
기숙사인 남산학사에도 화재경보기 오작동이 잦지만, 기숙사생에게 왜 화재경보가 발생했는지, 어떤 해결책을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얘기는 없다. 시설 이용자는 자신이 이용하는 시설물에 대해 시설 안전이 보장되는 방식과 정도를 알아야 한다. 이는 시설물을 공급하고 관리하는 주체가 직접 시설 이용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심리적 차원의 안전이다. 사고 발생 시 관리 주체는 사고가 왜 발생했는지, 어떻게 해결했고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어떻게 조치했는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 대학 사고의 경우 이를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심리적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대학이 안전하며 안전할 것이라는 기반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의도적으로 사고 발 생 사실을 지우려는 목적이 아닐지라도, 안전사고에 대한 안일한 대처는 추후 심각한 인명 피해를 유발하는 불씨가 된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안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학교에 등교하고 생활해야 했다.
현재 한국의 대학은 자본권력과의 결탁을 통해 기업화되었다. 본래 대학은 자본 축적의 장이 아니다. 학문을 가르치고, 학술이론과 응용방법을 연구하는 장소이다.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하기 위한 직업인 양성 기능뿐만 아니라 사회의 가치와 질서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지성인 양성의 기능을 수행해야만 한다. 즉, 대학교는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이 중점이 되는 공간이어야 한다.
안전한 시설의 마련은 교육 및 학습 환경의 향상을 위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조건이다. 고장나거나 노후한 시설은 학생들의 효율적인 학습을 방해하고 교육의 질을 저하시킨다. 학습권이 침해되는 사례로 건물에서 불이 나 강의 도중 대피를 하거나, 노후화된 디지털 기기들이 작동하지 않아 수업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시설 문제로 인해 강의나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학습권 침해, 대학의 연구 성과 등 학문적 측면의 여러 요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대학에는 하루에도 학생, 교직원 등 수많은 사람이 드나든다. 고장나고 노후한 시설을 다수의 사람이 사용하는 현 상태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위험성이 낮지 않다. 누수, 전기 문제, 구조적 결함 등으로 인해 화재나 각종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필수적으로 예방되고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본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내가 안전한지, 학교에서 안전하다는 감각을 느끼는지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지금 당장 나에게 별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안전한 것이다.’라는 답변이 있었다. 그러나 ‘안전한 상태’의 조건은 지금 당장 내 눈 앞에 어떠한 안전사고가 발생했는지 아닌지의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사고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앞으로도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안전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내딛는 첫걸음이 된다.
다시 말해, 학교는 물리적 안전을 넘어 학생들이 ‘이 공간 속에서 나는 앞으로도 안전할 것이다.’ 고 믿을 수 있는 심리적 안전까지 보장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학교는 대표적인 사회화 기관이다. 국가와 사회 구조가 설정한 교육과정대로 성장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입시를 거쳐 대학생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들은 그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대부분의 시간을 교내에서 보낸다. 약 4년 동안의 일상이 학교를 중심으로 구성되고, ‘학교 안’이라는 물리적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몇 년 동안 자신의 하루 중 상당한 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학교는 이들에게 아무 사고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환경을 기본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자신이 시간을 보내는 공간 안에서 안전하다고 느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은 자신이 있는 곳, 있을 곳이 안전한 상태이며 이곳에 있는 시간 동안 보호받는다는 안정감을 느껴야 한다.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에서 자신과 주변인의 안전에 대한 확신 없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 때문에 언제나 긴장하고 있을 수는 없다.
학교와 학생은 보존과 확장의 관계이다.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 보호받는 존재여야 하고, 학교를 스스로의 발전에 대한 확신의 장소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은 학생에게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언제나 실패를 해도 괜찮’다는 지지망을 제공함으로써 실패와 재도전의 경험을 통해 경험치를 확장해가는, 나아가 한 사람의 세상을 확장해가는 도전의 공간으로 존재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학교가 사회에 나가기 전 학생들의 몸과 마음을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면, 학생은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의 발전을 위해 힘쓸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대학 역시도 학생과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상호 보완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글로벌 사회혁신가 네트워크 ‘식스’(six, social innovation exchange)의 총괄 매니저 줄리 멍크는 “안전한 공간은 자신의 고민을 나누고 지지받을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실패를 무릅쓰고 사회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공간이란 두 가지 뜻이 있다”며, 이 공간이 될 수 있는 장소로 대학을 꼽았다. 단순한 학점 따기 공부에서 얻을 수 없는 다양한 사회 경험을 하며, 실패해도 괜찮다는 경험을 하고, 이를 통해 안전한 공간인 학교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고, 다른 사람들과는 연대하며, 사회에 진정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안전한 보호망을 제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