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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국교지 Sep 02. 2024

동악은 세월을 잊지 않겠다 -2부

[동악에서] 서은, 서현

  세월호 참사가 10주기를 맞이했다. 아득할 것만 같은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사회는 바뀐 듯 바뀌지 않은 듯하다. 세월의 감각이 서로 다를지언정, 우리는 ‘잊지 않겠다’고 외치던 4월을 떠올리며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았다.

  <노란리본 서포터즈>는 지난 4월 16일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아 기억문화제를 개최했다. 코로나 이후 처음 개최되는 기억문화제였기에 지나가는 학우마저도 발길을 멈추어 함께했다. 동국교지는 기억문화제를 기획한 <노란리본 서포터즈>와 공동 주관단체인 북한학과 여성주의 소모임 <여성주의동맹>, 사회학과 몸짓패 <다율>, 중앙동아리 <맑스철학연구회>를 만나 세월호의 기억을 나누고, 문화제에 참여한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우리는 왜 잊지 말아야 할까, 우리는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할까. 지금부터 이 질문에 대한 학우들의 답을 들어보고자 한다.


<중앙동아리 맑스철학연구회>

-사회학과 이영지


<사진 1: 맑스철학연구회 소속 이영지 씨가 기억문화제에서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동국교지>

Q. <맑스철학연구회>는 어떤 단체인가?

영지: 맑스철학연구회는 책을 읽고 그 내용을 맑시즘적 시각으로 바라보며 함께 이야기 나누는 활동을 한다. 또한 단순히 토론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동안 참여한 연대활동으로는 팔레스타인 침공 반대, 퀴어축제 불허가 규탄, 철도 민영화 반대 등이 있다.


Q. 어떤 취지로 기억문화제에 참여하게 되었나?

영지: 맑스철학연구회가 다루는 자본주의 폐해는 세월호 참사 발생 이유 중 하나다. 따라서 추모 과정에서 슬퍼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동국대학교 학생들과 시각을 나누고자 했다.


Q. 다시는 세월호와 같은 사회적 참사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국가와 시민에게 요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영지: 발언 때 말했듯, 세월호 참사를 단순히 슬프고 안타까운 일로 생각하는 것을 넘어 왜 이와 같은 참사가 발생했는지 사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 정부와 사회는 여전히 안전을 격하하며 안전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려고 한다. 이를 단순히 받아들여서는 안되며 안전 경시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이에 대항하며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또한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자본주의 병폐뿐만이 아니라 무사유로 인한 참사라고 생각한다. 선장은 승객의 안전을 보장할 의무가 있음에도 위험한 상황에서 출항 지시에 순응했다. 스스로 행위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사유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Q. 추모사에 체제 변혁을 다뤘다. 체제 변혁을 위한 현대의 최우선 과제는 무엇인가?

영지: 자본주의, 관료제 체제의 변혁을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물질적 가치와 인간 존엄적 가치의 우선이 무엇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미국 참정권 운동 중 “빵과 장미를 원한다”는 슬로건은 ‘빵’이라는 물질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장미’라는 인간 존엄 가치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또한 특정 체제를 넘어서 변혁의 관점에서 보자면, 개인으로서는 수용적 태도를 버리는 것, 사회로서는 반대의견의 발언권을 보장하는 것이 배경이 되어야 한다.


Q. 추모사 중 잊지 말아야 할 대상을 여러 번 물었다. 잊지 말아야 할 대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영지: 세월호가 과거에 멈춰있는 사건이 아니라 지속되는 현상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참사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유가족을 지탄하는 언론도, 죽음을 외면하는 이기주의도, 국가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도 변하지 않았다. 지금의 우리는 참사를 사건으로 기억할 뿐, 그 이후에 무엇이 바뀌었고 바뀌지 않았으며, 무엇이 바뀌어야 할지는 잊은 것 같다.


Q. 세월호 이후에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영지: 사람들이 국가의 역할을 인지하도록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참사를 개인의 잘못으로 바라보던 것에 반해, 지금은 사회 전반의 시스템이 복합적으로 얽혀 참사가 발생한다는 시각을 갖게 된 것 같다. 다만 참사에 대한 책임을 형사 처벌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사회적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안전 경시 기조와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Q. 더 많은 사람이 세월호를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영지: ‘많은’보다 ‘오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억문화제를 보고 ‘언제 적 일인데…’라고 말하는 학우가 있었다. 사회 병폐가 사라지고 추모가 의미 없어질 때까지 추모를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학과 몸짓패 소모임 다율>

-북한학과 조민


<사진 2: 몸짓패 다율이 기억문화제에서 몸짓 공연을 하고 있다. ⓒ동국교지>

Q. <다율>은 어떤 단체인가?

민: <다율>은 민중가요에 맞춰 율동을 하는 모임이다. 민중가요는 투쟁하는 민중의 목소리를 담은 노래로, 이에 맞춰 몸짓하는 <다율>은 사회 모순에 대항하는 것을 추구한다. 과거에는 사회과학대학 새내기 배움터에서 공연을 올리는 전통이 있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유실된 역사가 있다. 올해 다시 시작하기 위해 모였고, 이번 기억문화제에서의 공연을 기점으로 다시금 활발히 활동해 보고자 한다.


Q. 어떤 취지로 기억문화제에 참여하게 되었나?

민: 당연히 세월호 10주기를 추모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따라서 제안이 들어왔을 때도 함께 연대하고 공동주관으로 이름을 올려 공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월호를 추모하는 것은 대학생 전반으로 이견이 없는 사안이라고 느꼈기에 제안을 받고 큰 무리 없이 함께 할 수 있었다.


Q. ‘바위처럼’이라는 곡을 공연해 주셨다. 이 곡을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민: 세월호 참사로부터 10년이 지나고 지겨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굳이 표현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말에 지치는 활동가나 유가족들이 많다. 그럼에도 우리가 밝혀야 하는 것들이 있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있기에 바위처럼 단단하게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Q. 세월호와 같은 사회적 참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 위해 시민과 국가에 요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민: 우리는 지금 세월호 체제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세월호 이전부터 참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체제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순들에 “이윤이 먼저였나, 생명이 먼저였나”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참사 이후에 이 질문을 던져보면 많은 경우 이윤이 생명을 앞섰던 것 같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가 하나의 거대한 세월호가 아닐까 싶었다. 또한 세월호 참사 당시에 우리는 추모를 적실히 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사회적 참사가 발생했다. 시민들은 무엇보다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주변에서도 세월호를 직시하고 싶지 않아 하고 지겨워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추모는 희생자가 아닌 남은 이들을 위한 것으로, 참사를 기억함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꿈꾸고 연대를 확인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혼자가 아니라 함께 기억해야 한다.


Q.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무엇이 필요한가?

민: 회피하고자 하는 이유는 트라우마 때문이다. 4월 16일의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트라우마가 되었고, 무겁고 어둡게 느끼기 때문에 세월호를 직시하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 그들이 비로소 가장 절실하게 세월호를 마주 봐야 하는 사람들인 만큼, 오늘 같은 문화제를 통해 함께 추모해도 안전하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진 3: 기억문화제에 참여한 한 학우가 공동주관단체 '찰칵'의 전시를 보고 있다. ⓒ동국교지>

  기억문화제 이후 팔정도에 남아있던 학생들과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소감 또는 계기에 대해 “혼자 고민하다 연대하고자 참여했다.”, “대학 구성원이 함께 추모하고 연대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모두의 마음이 담긴 ‘기억의 나무’가 인상 깊었다.” 등 함께하는 것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앞서 인터뷰를 나눈 <맑스철학연구회>와 <다율>은 이번 기억문화제의 공동주관 단체다. 이들은 모두 문화제의 주최자인 <노란리본 서포터즈>와, 우리 대학의 학생들과,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과 세월호를 기억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과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어떤 의지를 가질지언정 홀로 나서는 일은 고되고 두려우며, 그 의지가 아무리 강렬할지언정 홀로 사회를 바꿀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함께 기억하고자 한다. 기억의 힘은 세다. <노란리본 서포터즈>와 공동 주관단체 <여성주의동맹>에서 동시에 활동하던 손지원 학우는 기억할 뿐이던 자신이 함께 활동에 나서게 된 것이 기억의 힘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함께하는 기억은 안전한 사회가 실현될 때까지 꿋꿋이, 단단한 바위처럼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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