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악에서] 서은, 서현
세월호 참사가 10주기를 맞이했다. 아득할 것만 같은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사회는 바뀐 듯 바뀌지 않은 듯하다. 세월의 감각이 서로 다를지언정, 우리는 ‘잊지 않겠다’고 외치던 4월을 떠올리며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았다.
<노란리본 서포터즈>는 지난 4월 16일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아 기억문화제를 개최했다. 코로나 이후 처음 개최되는 기억문화제였기에 지나가는 학우마저도 발길을 멈추어 함께했다. 동국교지는 기억문화제를 기획한 <노란리본 서포터즈>와 공동주관단체인 북한학과 여성주의 소모임 <여성주의동맹>, 사회학과 몸짓패 <다율>, 중앙동아리 <맑스철학연구회>를 만나 세월호의 기억을 나누고, 문화제에 참여한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우리는 왜 잊지 말아야 할까, 우리는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할까. 지금부터 이 질문에 대한 학우들의 답을 들어보고자 한다.
Q. <노란리본 서포터즈>는 어떤 단체인가?
휘주: <노란리본 서포터즈>는 세월호 참사를 함께 기억하기 위해 동국대학교 학생들끼리 자발적으로 모인 모임이다. 과거에도 우리 대학에서 세월호를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모여 추모 활동을 진행했었다. 다만, 올해가 10주기인 만큼 공개 모집을 비롯해, 북토크와 안산 기행 등 공식적인 활동을 진행했다.
Q. 행사의 기획과 진행에서 어려운 점이나 느꼈던 점은 무엇인가?
준성: 기획할 때는 누군가 정치적 색안경을 끼고 기억문화제 자체를 정치적 행사라며 오도할 경우가 걱정되었다. 행사를 마무리해 보니 생각보다 부정적인 반응은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많은 사람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던 것 같다. 세월호라는 주제가 무겁게 느껴져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꺼내기 어려웠는데, 좋은 반응이 있었던 만큼 더 활발히 홍보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미혜: 참사 당시 나이가 어려 세월호의 기억이 잘 남아있지 않은 학생들에게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어떤 방식으로 전할지 고민되었다. 발언과 추모사를 통해 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 기억문화제로 인해 학내 기억문화제가 이어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고 느꼈다.
휘주: 학내 단체와의 연락이나 학교의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굉장히 긴장했었다. 생각보다 취지에 공감해 주고 함께하는 단체가 많아서 힘이 되었다. 학교의 승인을 받는 과정도 생각보다 굉장히 수월해서 놀랐다.
Q. 세월호 참사를 다루는 것을 무겁다고 느끼며 꺼리는 사람들이 있다. 행사를 기획하는 입장에서 행사의 분위기도 고려했었나?
휘주: 기획할 때 누구나 세월호를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 방점을 두었다. 그렇기 위해서는 이 행사가 누구의 표현도 전부 품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획의 중심으로 ‘기억, 추모, 애도’라는 세 키워드를 정한 것 또한 이 단어들은 어느 누가 세월호를 말하더라도 전부 포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참사를 대하는 무겁거나 가벼운 태도가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라 개인 기억의 방식을 존중하며 함께 기억해야 할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 점에서 사회학과 밴드 아노미의 「천개의 바람이 되어」 밴드 편곡 공연이 정말 좋았다.
미혜: 4월 13일의 기억문화제에서 “세월호 참사가 ‘세월호 때문에 수학여행을 못 갔어’라고 기억되지 않았으면 해서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발언이 인상 깊었다. 참사를 대하며 추모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세월호 기억 교실의 유가족분들도 참사를 경건하고 무겁게 대하기보다는 떠난 학생들을 떠올리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듯이 가벼운 분위기로 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Q. 4월 13일 기억문화제에서 변화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다.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의 무엇이 변했으며 무엇이 변하지 않았나?
휘주: 양면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오늘 기억문화제의 마지막 순서였던 세월호 유가족분의 편지를 인용하자면, “국가는 변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변했”던 것 같다. 국가의 제도와 방식은 변하지 않았지만, 사회적 참사를 대하는 시민의 인식은 변한 것 같다. 세월호 때와 달리 이태원 참사의 가족협의회가 빠르게 결성된 것도 시민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다.
미혜: 세월호의 10년은 조금씩 위로 올라가는 함수의 형태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큰 변화가 없는 듯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씩 변화 발전해 온 것 같다. 오늘 유가족을 사찰한 해경 관계자가 유죄 판결을 받은 것처럼, 우리가 계속 기억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진상규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준성: 실제로 체감되는 것이 없으니 많이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시민사회가 위태로울 때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촛불 탄핵도 사람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며 사회를 바꿨다는 부분에서 의미가 있다. 이런 변화가 쌓이면 시민들이 원하는 사회가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Q. 앞으로 다시는 사회적 참사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
준성: 정부의 안전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 국가가 지속해서 안전한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재난방지 대책과 계획을 제시해야 국민이 정부의 시스템을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다.
휘주: 상식적인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죽은 사람을 추모하고 애도하고 기억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죽은 사람의 사인을 밝히는 것도 원래 하는 일이다. 이런 일에 대해 정치적 낙인을 찍는다든지 지겹다고 하는 것은 유가족에 대한 상식적인 존중과 이해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란리본 서포터즈>는 이번 기억문화제를 기점으로 학내에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사회적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나아가 더 이상 사회적 참사가 없도록 국가를 주시하는 흐름을 만들고자 했다.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국가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사 발생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세월호의 침몰과 구조 실패의 원인을 알지 못하며, 국민의 죽음을 방관한 정부 관계자 중 유죄 선고를 받은 것은 단 한 명뿐이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조차도 불가능한 우리 사회에서 안전 시스템의 변화는 더욱이 아득하고, 그 결과로 오송과 이태원에서 수많은 생명을 잃었다. 그럼에도 서포터즈가 말했듯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은 변화하고 있다. 학생 사회의 의식 또한 마찬가지다. 세월호 참사에 뒤덮인 정치적 낙인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며 애도해야 한다고 느끼며 행동했다. 앞으로 우리는 캠퍼스에서 더 활발한 연대의 흐름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안전한 사회에서 살 수 있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마음을 담아 서포터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