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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국교지 Sep 02. 2024

우리를 먹여 살리는 사람들에 대해

[동악에서] 서은, 서현, 성원

배식대 너머의 사람들

  학교는 하나의 작은 사회, 학생은 시민이라고 한다. 우리는 대학에서 강의를 들을 뿐 아니라 생활한다. 깨끗이 청소된 화장실을 이용하고, 학식당에서 배를 채운다. 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대학이라는 공간에는 화장실을 청소하는 사람이, 음식을 조리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들은 대학의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판매하고, 동시에 대학에 직·간접적으로 고용된다. 대학은 교강사와 학습자만이 아니라, 판매자와 소비자, 고용인과 피고용인을 포함한 복잡한 관계로 구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대학의 누군가를 잊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아침 먹을 여력조차 없는 학생들을 위해 ‘천원의 아침밥’을 지원하고 있다. 2017년 10개교 대상이었던 이 정책은 현재 186개교로 확대되었다.1) 2019년부터 세상을 휩쓸었던 코로나의 존재를 고려하면 매우 빠른 속도의 진전이다. 특히 서울대학교의 경우 배식량의 제한 없이 백반 형식의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최대한 많은 학생들에게 양질의 아침밥을 단돈 천원의 제공한다는 점에서 많은 학생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다만 배식대 앞의 학생들이 아닌 배식대 뒤 노동자의 상황은 또 다르다. ‘천원의 아침밥’ 행사를 통해 늘어난 배식량과는 달리 조리 노동자의 수는 충원되지 않았고, 고강도 노동에도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렀다. 휴일도 휴식 시간도 없이 증기와 연기에 휩싸여 쓰러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학생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일해야 했다. 노동자들은 빠르고 정확하게, 무제한으로 노동하는 기계가 되어야 했다.2)

  우리 대학에서도 현재 기숙사식당에서 ‘천원의 아침밥’을 진행하고 있다. 시리얼과 과일 몇 종류로 단출하게 진행되었던 작년에 비해, 올해는 백반과 뷔페식이 번갈아 나오며 빠른 개선을 일궜다. 우리 대학의 학생들은 이 같은 기숙사식당의 행보에 높은 관심으로 호응하고 있지만, 이 관심은 배식대의 음식을 향할 뿐 배식대를 넘어가지는 못했다. 이 글은 그들의 삶을 돌보기 위해, 나아가 우리, 즉 대학의 모든 구성원의 삶을 돌보기 위해 배식대 너머를 들여다보기로 한다.


노동자에게 진 10억의 빚

  급식 노동은 상당한 고강도 노동이다. 우리 대학 상록원 1층에 위치한 한 코너의 경우 하루 무려 1,000명의 식사를 제공한다고 한다. 따라서 상록원의 조리 노동자들은 거대한 밥솥과 냄비를 들고 옮기며 뜨거운 불 앞에서 1,000명의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급식의 경우 대다수의 고객이 특정 시간에 몰리고 식사 시간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더 빨리 더 많은 수의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고강도의 노동은 밤늦은 시간까지 계속된다. 밤 7시에 상록원의 운영 시간이 종료된 이후에도 1시간가량 매장 정리를 위해 일해야 한다. 10시에 출근하는 정규직 직원들은 휴게 시간을 제외한 8시간의 노동 이후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1시간의 연장 근무가 필수적인 것이다.

  앞서 말한 코너의 근무 인원은 9명이다. 그중에 정규직 직원은 단 3명뿐이다. 나머지 6명의 인원은 아침 9시에 출근해 재료 손질을 마치고 오후 3시부터 6시 사이에 퇴근한다. 이들은 상록원을 운영하는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과 계약을 맺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 직업 소개소를 통해 알선된 파견직 노동자들이다. 파견직 노동자는 일주일의 노동을 전제로 일한다. 즉 일주일이 지나면 다른 인원으로 변경된다. 파견직 인원은 매주 다른 환경에 적응해 노동해야 하며, 상록원의 정규직 노동자는 매주 다른 사람에게 새로운 환경을 교육해야 한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의 강도 높은 노동은 업무의 효율을 해치고 경우에 따라 노동자를 다치게 하며, 매주 같은 교육을 반복해야 하는 정규직 노동자는 쉽게 지친다.

  이러한 문제들은 정규직의 고용을 늘려 해결할 수 있다. 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나면 파견직 노동자로 대체되었던 업무를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뿐더러 고질적인 과중 업무와 추가 근무도 해결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해결 방법을 뒤로 하고 노동 인원의 3분의 2를 파견직 노동자로 대체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현재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재정 상태가 원인이다. 동국대학교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은 우리 대학의 학생 식당과 카페, 매점을 운영하는 주체로 상록원 식당 또한 생협의 주관하에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학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없어지자 생협은 수입원을 잃었고 절반에 달하는 인원 감축에도 20억의 적자를 입었다.

  하지만 사라진 절반의 인원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종료되고 2년이 지난 현시점까지도 복구되지 않았다. 매일을 견디는 노동자의 고통은 거대한 재정적 위기의 그림자 속에 감춰진 것이다. 파견직 노동자는 우리 대학에서 노동하지만 일하다 다쳐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 대학의 입장에서 노동자의 권리에 책임을 더는 것은 단기적으로 비용의 절감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바라본다면 정규직 노동자에게 업무가 집중되며 전체적인 효율이 떨어지고 이들이 지쳐 일을 그만뒀을 때도 영업에 차질이 생길 것이다. 우리 대학의 조리 노동자는 단지 2년을 버티고 있을 뿐이다. 현재 생협은 10억의 빚을 탕감한 상태다. 2년간 생협이 창출한 10억의 잉여금은 노동자에게 진 빚의 액수일 것이다.


숨 쉴 틈 없는 공간, 책임 없는 계약

  고된 노동 속에서도 조리 노동자에게 주어진 휴식 시간 은 식사 시간을 포함하는 점심의 1시간뿐이다. 빠르게 식사를 마치더라도 쉴 수 있는 실제 휴식 시간은 30분 남짓에 불과하다. 심지어 남산학사의 기숙사식당의 경우 노동자가 다리 뻗고 쉴 수 있는 휴식 공간, 더운 몸을 식힐 샤워 공간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학생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먹이기 위해 사우나와 다를 바 없는 조리 공간에서 노동하다 겨우 밖으로 나오게 되어도, 땀을 가득 흘린 그대로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학식당 안에서 불편한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퇴근할 때도 그들은 매일같이 찝찝함을 해결하지 못한 채로 집을 향할 수밖에 없다.

<사진 1: 남산학사 기숙사식당의 내부다. ⓒ동국교지>

  또한 남산학사 기숙사식당의 조리 공간에는 환풍 시설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조리 공간에서의 환풍 시설은 조리 노동자의 건강문제와 직결된 만큼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량의 음식을 조리할 때, ‘조리흄’이라는 유독 증기가 발생하는데, 이 안에는 미세 분진과 포름알데히드와 같은 유독물질이 포함되어 있어 폐암 유발 물질로 분류된다. 2021년 이래로 총 134건의 산업재해가 조리흄에 의해 유발된 폐암을 발생 원인으로 인정했다. 즉, 조리흄 유해성은 충분히 입증되었으며, 적합한 환기 시설을 갖추지 않은 기숙사식당의 조리 공간은 노동자에게 굉장히 위험한 것이다. 하지만 남산학사 기숙사식당의 조리실을 방문한 결과 천장 배기구는 존재하나 작동하지 않았고, 임시방편으로 하역장과 연결된 문을 열어 선풍기를 통해 미약하게나마 공기를 순환하고 있었다. 이 역시 임시방편인 만큼 문제점은 많다. 하역장은 본래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두는 곳으로 벌레가 유입될 경우 학식의 위생을 해칠 수 있고, 기온이 더 높아질 경우 조리 공간의 더위를 전혀 해결할 수 없다.

  조리 노동자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몇 번이고 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실질적인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을뿐더러 그들의 목소리가 명확하게 학교까지 닿았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기숙사식당의 조리 노동자들과 동국대학교는 일 대 일 계약이 아닌, 중간 업체들을 통해 계약해 운영하고 있다. 조리 노동자들은 급식 용역 업체인 '삼성 웰스토리'와 계약한 직원들이며, '삼성 웰스토리' 또한 동국대학교와 직접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닌 마스터리스 업체인 '캠퍼스 파트너스'를 통해 고용되었다. 마스터리스 업체란 건물주의 일부 또는 모든 건물을 통째로 임대해 운영 및 관리를 전담하는 업체를 의미한다. 즉, 우리 대학과 직접적인 계약을 맺은 것은 '캠퍼스 파트너스'뿐이며, 해당 업체는 동국대학교에서 기숙사식당 이외에도 남산학사 식당에 입점해 있는 음식점들을 관리하고 있다. [동국대학교 - 캠퍼스파트너스 - 삼성웰스토리 - 조리 노동자]로 이루어진 구조에 따라 기숙사식당의 조리 노동자들은 학교에 직접적으로 의견을 낼 수 없다. 일차적으로 삼성 웰스토리 측에 의견을 전달한 뒤, 이차적으로 삼성 웰스토리의 담당자가 이를 캠퍼스파트너스 측에 전달한다. 그리고 3차로 캠퍼스파트너스가 학교에 의견을 전달하고 답변을 받은 뒤, 최종적으로 캠퍼스파트너스 측에서 다시 삼성 웰스토리, 기숙사식당의 조리 노동자들에게 답변을 전달하는 것이다. 무려 세 다리를 건너야 하는 복잡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환경개선에 대한 의견을 피력할 수 없어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기숙사식당의 조리 노동자는 “다른 학교에서 업무했었을 때는 대부분 삼성 웰스토리와 대학의 일 대 일의 계약을 맺어왔다. 이러한 계약은 특수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동국대학교는 어째서 직접계약이 아닌 마스터리스 업체를 택한 것일까? 그 이유는 ‘비용 절감’과 ‘책임 감소’로 추측해 볼 수 있다. 1차 용역에서, 학교는 삼성 웰스토리와의 계약 부분을 직접 담당해야 한다. 업체 선정부터 계약 조건 등을 조율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스터리스 업체는 관리의 업무를 위임받게 된다. 업체 선정부터 계약, 더 나아가 관리까지 담당하게 되어 조리 노동자의 직접 사용자이자 원청인 학교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이다. 대학교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편리함을 취할 수 있으나, 조리 노동자의 노동안정성은 낮아진다. 그들은 동국대학교에서 업무를 진행하는 노동자이면서도, 학교가 책임지지는 않는 외부인인 것이다. 

 코로나 이전, 생협이 기숙사식당을 운영했을 당시에는 배기 시설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로 작동이 멈췄고, 학교는 이를 수리하지 않은 채로 기숙사식당 영업을 재개했다. 그렇게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환풍 없는 조리 노동이 이어졌다. 조리 노동자들은 업무상의 불편함을 겪을 뿐만 아니라 환풍시설의 미비로 인한 건강의 위협까지 떠안게 되었다. 학교는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있으나 조리 노동자의 고용 환경 안정보단 코로나로 인한 손실을 빠르게 복구하는 것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책임 회피의 방식으로 직접 운영에서 손을 떼고, 마스터리스 업체와의 계약을 통한 용역을 택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기숙사식당 조리 노동자는 “다가올 여름이 걱정된다.”며 여름이 되어 심화할 문제들에 대해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삼성 웰스토리는 2024년 2월부터 기숙사식당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업무를 시작한 2월부터 인터뷰 당시인 4월까지는 기온이 높지 않아 주먹구구식 대처가 가능했지만,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다면 이러한 대처마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실질적인 해결 방안은 마련되지 않고 있으며, 하다못해 학교의 답변조차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어야 할 뿐이다. 조리 노동자들은 동국대학교의 학생들을 위해 매일같이 노동하고 있지만, 그들을 책임져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톱니바퀴를 돌보는 사람들

  조리 노동자는 우리 대학에서 공부하거나 노동하는 이들을 먹임으로써 매일의 활동을 지속할 힘을 공급한다. 학생과 교직원들은 조리 노동자의 노동 생산물인 학식을 통해 학업 또는 업무에 다시 정진할 수 있는 주된 동력을 얻는 것이다. 이는 수강 등의 서비스 소비와 강의 또는 행정 업무 등의 서비스 생산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대학의 자본 창출의 기반이 된다. 이와 같이 자본이 요구하는 가치 창출 행위의 바탕을 제공하는 노동을 재생산 노동이라고 한다. 자본을 생산하는 노동자를 톱니바퀴라고 할 때, 톱니바퀴에 윤활유와 움직일 힘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재생산 노동인 것이다. 재생산 노동은 흔히 돌봄 노동으로 대표된다. 아픈 사람을 간호하는 것, 미래의 생산 가능 인구를 양육하는 것, 머무는 자리를 정돈하고 청소하는 것 모두 돌봄 노동에 속한다. 그중에서도 조리 노동은 직관적으로도 동력을 제공한다는 설명을 붙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인간은 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노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데 조리 노동자가 맡은 바는 이토록 막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불안정한 고용 형태와 열악한 시설, 고강도·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며 학교의 필요에 따라 착취되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돌봄 노동을 향한 경시 기조로부터 기인한다. 돌봄 노동은 흔히 전문성 없이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열악한 근무환경과 고강도의 노동을 감내하며 최저임금을 받아도 되는 일로 여겨진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에서 급여와 노동환경은 대개 자본주의적 가치를 생산해 내는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 많은 급여와 좋은 업무 환경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이들에게 주어진다고 믿어지고, 이 가치는 얼마나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는지에 따라 평가된다. 돌봄 노동에 부과되는 적은 임금과 열악한 환경은 사회가 이를 얼마나 몰가치하게 여기는지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가부장제와 결합하며 한 층 더 심화한다. 자본주의는 생산비용의 절감을 위해 돌봄 비용의 절감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생산양식과 더불어, “남성은 생산자이며 여성은 사적-가정적”이라는 가부장제에 의해 돌봄 노동은 여성의 몫으로 전가되어왔다. 돌봄 노동은 어머니, 아내, 딸, 혹은 며느리라는 이름의 여성에 의해 수행되는 ‘사랑의 행위’이자 보수를 지불할 필요가 없는 무급의 활동으로 여겨진 것이다. 사회의 피지배 단위이자 지배 논리가 실현되는 작은 사회로서 가정은 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의 예속을 강화하는 도구로서 기능했다. 여성은 민주적 회의를 통해 그들의 평생 과업이자 사명으로서 돌봄 노동을 선택한 적이 없다. 유구한 여성혐오의 역사를 통해 여성에게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간주하였을 뿐이다.

  이러한 인식은 돌봄 노동이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에서 노동 시장으로 외연을 확장했음에도 여전하다. 몰가치하며 천한 노동이라는 기조하에 돌봄 노동은 그 강도나 숙련도가 고려될 기회를 빼앗겼다. 직무에 대한 범위나 숙련, 경력과 노동의 질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부재하며, 그 기준은 필요 없다고 여겨진 것이다. 이는 그대로 고용관계에서의 임금 책정에 사용되어 결과적으로 아주 낮은 시세가 형성되었다. 이전에 비해 돌봄 영역에 남성 노동자의 수가 늘었음에도 여전히 열악한 노동환경은 돌봄 노동이 실제로 여성이 종사하는 노동이기 때문에 천대받는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유구히 지속되어 온 여성에 대한 혐오가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는 돌봄 노동 자체를 향한 경시 기조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배식대를 넘어서

  돌봄 노동은 이토록 복합적인 이유로 그 가치가 평가절하되었다. 이에 경제 불황 등의 여러 위기 상황이 맞물려 노동력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돌봄 노동의 현실이다. 노동 환경이 열악하니 인력 충원이 어렵고, 일손이 부족하니 노동 환경이 더욱 열악해지는 악순환의 반복인 것이다. 우리 대학의 경우에도 코로나와 그로 인한 적자라는 위기 상황에 의해 재정비되지 않은 열악한 시설, 회복된 수요에도 여전히 코로나 때와 비슷한 적은 인력으로 극심한 노동 강도, 여전히 낮은 임금으로 착취가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이들의 노동이 고되고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지속되기를 방관한 것은 이들의 노동이 어쩔 수 없이 이러한 환경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뷰 중 한 조리 노동자는 인력 부족 문제에 대해 “이런 일은 노가다라 사람들이 (일하러) 안 온다.”고 말했다. 조리 노동자 당사자까지 이러한 인식을 내제하였다. 조리 노동은 그 필수불가결함을 인정받아 마땅한 숭고한 노동이다. 자본의 요구에 의해 가치가 지워짐에 따라 그림자적 존재로 남게 되었을 뿐이다. 

  생산의 원천인 재생산 노동으로서의 조리 노동이 그 가치를 인정받기는커녕 폄훼당하는 현실에서 자본주의 그리고 그 복무자들이 종용하는 ‘성장’이란 지속 불가능하다. 허구의 무한성장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삶다운 삶을 구성하기 위해서 노동 환경과 사회의 인식에 대한 개선은 불가결하다.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휴게 공간,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환풍 시설, 청결을 유지할 수 있는 샤워 시설, 고강도 업무에 마땅한 임금, 안정적인 고용과 사회적 인정은 비단 조리 노동자를 포함한 돌봄 노동자만을 위해서가 아닌 사회 전체의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재)생산을 위해 필수적이다. 돌봄이란 언제까지나 일방향적일 수는 없는 소모적 행위이다. 우리를 돌보는 이들의 삶을 돌보지 않는다면 일상은 유지될 수 없다.




1) 식량정책관 전략작물육성팀, 「농식품부와 전국 186개 대학이 ‘천원의 아침밥’ 사업을 함께합니다.」, 2024.02.25.,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35590.html

2) 김채운, 「대학 ‘천원의 식사’ 인기 이면엔...‘1인 200식’ 조리 노동자 골병」, 『한겨레』, 2024.04.08.,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355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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