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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국교지 Sep 02. 2024

'세월'을 기억한다는 것

[담장너머] 민지, 현서

세월호의 기억

  세월호 참사 이후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곳곳에는 여전히 기억을 외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을 논한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존재한다.

  SBS 데이터 저널리즘팀 ‘마부작침’에 따르면 2014년 참사 발생 이후 10년간 13개 주요 매체의 세월호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은 330만 건이 넘는다. 이 중에서 무작위로 추출한 10%를 악성 댓글 데이터를 학습시켜 만든 알고리즘으로 분석한 결과 약 31%가 악성 댓글이었다. 참사 첫해인 2014년에 기사 및 악성 댓글의 수가 가장 많았고, 그다음 해부터 관련 기사는 줄어들었지만 악성 댓글의 수는 5주기를 지나 2020년까지 점점 증가했다. 참사 첫해에 가장 많이 나온 키워드는 ‘선장’, ‘해경’, ‘구조’, ‘공무원’, ‘무능’ 등이었다. 이처럼 정부에 대한 질책이 큰 비율을 차지했던 2014년과 달리, 참사 5주기 전후로 댓글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쓰레기’, ‘재앙’, ‘빨갱이’, ‘왜구’ 등 세월호의 본질과 관련 없는 단어들이 다수를 차지했다.1)

  세월호가 단순한 사고로 기억돼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월호 참사는 책임소재가 국가에 존재하는 국가적 참사이다. 국가범죄에 해당하는 이 참사를 우발적인 사고라고 할 수는 없다. 더 이상 세월호를 기억하지 않고 잊겠다는 것 같은 일이 반복되도록 놔두겠다는 것이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저버리겠다는 의미이다. 다양한 이유를 들며 세월호에 대한 기억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닿을 수 있도록, 그 기억을 함께하자는 이유를 떠올려보고자 한다.


의사소통과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기억

  기억은 마치 퍼즐 같다. 개인의 기억이 모여 집단 기억이 되고 사회적 기억이 될 때 비로소 퍼즐이 완성된다. 두 과정 모두가 중요하지만, 그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부분은 바로 ‘사회적 기억’이 구성될 때이다. 사회적 기억은 프랑스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스가 제시한 개념으로, 이에 따르면 과거의 사건은 사회적 맥락에 의해 재구성된다. 개인적 기억이 타인과 연결되면서 그 의미를 획득할 수 있게 되는 의사소통적인 작용을 ‘집단 기억’이라고 한다면, 사회적 기억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사회적 실천을 요구하게끔 하는 역할이다. 이를 통해 사건을 직접적으로 겪지 않았던 사람들도 함께 공감하며 연대하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 결국 사회에 필요한 법, 제도 제정에 기여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참사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세월호 집단기억’은 국민들에게 안전에 대한 재인식을 제공했다. 집단기억의 핵심인 의사소통적 작용을 통해 사건을 직접 겪지 않았던 이들도 유족의 고통에 공감하고 참사가 남의 일이 아니라 함께 공감하고 애도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국가에 분노하게 되었다. 올해 5월 4.16 재단이 발표한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국민 인식 조사 리서치연구’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가 사회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묻는 항목에서는 응답자의 91.3%가 “큰 영향 또는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고 답했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국가라는 사실과 동시에 현재의 우리 사회는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집단 기억의 단계에서 머물러있을 뿐, 아직 사회적 기억으로 나아가지는 못한 듯하다.

  세월호 참사 발생 직후부터 현재까지 법적, 제도적 안전망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늘 존재해 왔다.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거부함에 따라 충분한 안전망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위 문단과 동일한 설문에서 우리 사회는 재난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응답이 69.9%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이는 곧 현재까지도 참사 이후 정부의 신속하고 확실한 대처나 사회적 안전망 및 법적, 제도적 안전망이 확립되지 않았다는 것을 대다수가 인정했다는 방증이다. 진상 규명의 첫 번째 단추인 ‘세월호 특별법’ 처리 과정에서도 여야는 정쟁에 골몰했고, 우여곡절 끝에 법이 통과되어 박근혜 정부 때 1기 세월호 특조위가 꾸려졌지만, 여당 추천 위원들의 방해로 별 성과 없이 해산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비통한 현실에 분노나 공감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사회 분위기이다. 사회적 개념에 있어 실천이라는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직접 밖으로 나가 피켓을 드는 것 외에도 그들의 향한 공감까지도 실천이다. 우리 사회에서 마땅히 요구되어야 할 것들이 철저히 무시되고 거부되는 상황에서 어떠한 공감적인 태도도 보이지 않는 것은 문제가 맞고, 바뀌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하고, 본인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태도는 세월호 사회적 기억이 무너지는 데 큰 비중을 차지해 왔다.

  세월호에 대한 무관심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사회 전반에서도 나타났다. 올해가 10주기라는 큰 의미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10주기 기억식, 그리고 일반인 희생자 추모식은 언론에서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기억식’은 391건으로 18%에 그쳤으며, ‘일반인 희생자 추모식’은 63건으로 3%에 불과했다. 올해 세월호 언급을 사실상 대부분 없애버려 논란이 되었던 ‘교육부 공문’ 관련 보도는 고작 4건뿐이었고, 장관급 정부 인사들이 기억식이 아닌 정부 행사 ‘국민안전의날’에 참석한 보도도 11건이 전부였다. 그동안의 진상규명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도 91건의 보도에서만 언급되었으며 사참위의 주요 권고 사항인 ‘생명안전기본법’은 단 3건에 불과했다.2) 이러한 보도 흐름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월호를 잊게 만들며, 사회적 기억 구성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결국 기본적으로 이러한 세태를 벗어나 보편적인 공감과 연대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안전망이 세워질 때, 법 제도적 안전망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왜곡된 기억의 피로

  참사 당시 언론과 정부는 세월호에 대해 책임감 없고 이기적인 태도를 여실히 드러냈다.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형성에 있어 ‘프레임’은 중요한 요소이다. 사회적 기억을 쌓는 토대로 작용하며, 프레임 구성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주로 언론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정치인들은 이를 본인들의 권력과 이득을 위한 정쟁적 수단으로 이용했고, 언론은 이를 중점으로 프레임을 구성했다. 결국 이러한 프레임에 사건의 본질이 가려져 유족들이 진정으로 바랐던 실질적 진상규명 및 국가 제도의 보완, 즉 법적 제도적 안전망은 제대로 구축될 수 없었다. 이후에도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국가에 책임소재가 있는 사건사고가 계속해서 발생했으며, 이들 역시 제대로 된 사후 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 내내 세월호를 추모하거나 진실을 알고자 하는 이들은 감시와 억압을 받았고, 세월호 참사를 다룬 조사위원회들은 정권의 방해 등 정치적 영향으로 원활한 진행이 불가능했다. 이 사이 세월호를 둘러싸고 제한적인 정보를 짜깁기한 무수한 추측과 음모들이 난립하는 과정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을 앞둔 시점에 활동을 시작한 선체조사위원회(이하 선조위)는 앞서 제기되었던 수많은 의혹에 대한 조사를 벌였는데 이러한 과정에서도 정치적 진영 논리가 작동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선조위는 배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내인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세월호가 잠수함과 충돌했을지도 모른다는 외력설을 폐기하지 않았다. 결국 조사는 두 개의 결론을 모두 제시했고, 이는 끊임없이 두 의견의 갈등을 일으키며 국민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게끔 했다. 결국 유가족들은 한층 더 거세게 진상 요구 목소리를 내게 되었으며, 결론이 나왔는데 이를 인정하지 않고 대체 어떤 진상규명을 더 하라는 것이냐며 공연히 세금만 더 낭비하게 될 것이라는 비난의 여론도 생겨났다.

  세월호 참사 발생 보름 후 기무사에서 작성한 계엄령 조기 검토 문건을 살펴보면, 당시 박근혜 정권이 정부 비판 여론을 수그러들게 하고자 보수언론을 친정부 편으로 세우고 관리하는 방식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계획이 드러나 있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박근혜 정권은 보수단체와 보수언론을 ‘전위 세력’으로 삼으려 했고, 실제 당시 보수언론은 세월호 유족이 보상금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특정 정당 및 단체와 가깝다는 내용의 보수단체 집회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유족들이 ‘진상규명 없는 보상금은 의미 없다’고 수없이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언론은 의도적으로 프레임을 구성해 나갔다. 이는 10주기인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이 세월호 이야기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끔 작용했다. 결국 세월호는 모두가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안에서 벗어나 진위를 가리고 가치를 판단해야 하는 쟁점적 문제로 변화했다.

  이러한 과정을 받아들이는 사회 구성원들은 피로감이 쌓이게 되었다. 언론의 정쟁적 보도로 인한 피로는 참사에 대한 무관심과 회피에 무게를 싣는다. 다시 말해 세월호 참사를 정치 성향의 문제로 몰고 가는 사람들, 혹은 프레임을 구성한 언론에 속은 사람들이 세월호에 피로감을 느끼고, 제대로 기억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연민 피로’란 심리학자 찰스 피글리가 정리한 개념으로, 이는 타인의 과도한 고통에 대해 공감하기 위해 자신의 관점을 벗어나 그 타인의 관점을 취하게 되었을 때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과정에서는 큰 노력과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타인의 고통이 쉽게 해결되지 않거나 진행이 예상보다 장기화할 경우, 또는 확실한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공감을 통한 문제 해결로 성취감을 느끼려던 원래의 목적이 실패로 이어지게 된다.3) 이에 따라 지치고 통제감을 잃으며 무기력함에 빠지기 쉽다. 결국 서서히 연민 피로를 느끼기 쉬운 ‘취약한 정신상태’에 다다르게 된다. 현대 사회 속에서 개인의 삶은 이미 피로로 가득하다. 매일 찾아오는 하루마다 주어지는 각자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현실이 눈앞에 놓여 있다. 이들에게 주로 신문 기사, 뉴스 보도를 통해서만 접하게 되는 세월호 참사는 감정적인 충격 이상의 동요를 끌어내기에 한계가 있다. 여유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일상에서 참사는 무관심과 회피의 대상이 되기 쉽다. 연민 피로가 이어지면 사회적으로 더 많은 폭력과 더 많은 혐오 발언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시리아 난민에 대한 연민 피로와 언론의 부정적 보도가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한 연구에서도 다루어졌다. 이에 따르면 언론이 보도하는 난민의 부정적인 이미지와 메시지를 접하게 된 독자는 난민에 대한 연민을 잃기도 하고, 나아가 난민에 대한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게 되기도 한다. 미디어는 연민 피로의 발생을 촉진하며, 혐오와 폭력의 감정을 야기한다.4)

  이렇게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 사회적 기억은 결코 구성될 수 없다. 연민이나 공감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시들어버리기도 하지만 다시 활성화될 수도 있고, 불안정한 감정인 연민이 시들어버리지 않게끔 하려면 감정에서 벗어나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비슷한 관점에서, 사건을 인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우 연민 피로는 역전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언론이 보도 대상을 보다 긍정적인 관점으로 기사화해야 한다. 독자는 언론의 시각에 맞추어 보도되는 대상에 공감하게 되고, 나아가 상황을 지켜보는 것 이상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결심을 끌어낼 수 있다. 과정의 진행에 따라 독자는 ‘능동적 실천가’가 될 수 있다. 한 명 한 명의 사람들이 실천하고자 마음먹고 이를 행동으로 옮겼을 때, 해결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상황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잘’ 기억하는 법

  이제 실천하기로 마음먹은 우리가 내디뎌야 할 첫 번째 걸음은 기존의 불합리한 프레임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각자만의 방식으로 실천을 행하고 있다. 안전사고 예방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담아 전하는 제작자들, 낭독회를 통해 세월호를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 이외에도 세월호의 기억을 이어가고자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수만큼의 움직임이 존재한다. 크기나 방향성보다도 중요한 것은 일단 기억을 실천했다는 사실 자체다.

  이러한 마음을 담아 만든, 올해 개봉한 문종택 씨의 영화 <바람의 세월>은 정부의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책을 요구해 온 세월호 유족들의 발걸음을 영상 위에 담담히 그려낸다. 추모 공간을 지키는 것이 왜 유가족들에게 그토록 중요했는지, 배상·보상 문제가 유족 사이에 어떻게 분열을 초래했는지를 다루며 당시의 상황들도 보여준다. 문종택 씨는 꼭 영화로 찍어야 한다면 “우리 영화”였으면 한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와 다큐멘터리는 많았지만, 오롯이 유가족이 10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돌아보는 기록은 없었기 때문이다. 함께한 김환태 감독은 유족 사이에 날 선 반응이 오가는 장면을 빼야 할지 고심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국가의 책임 방기 속에서 빚어진 비극이라는 문제의식을 확실히 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유족이라는 이유로 쉽게 울거나 웃지도 못하게끔 하는 편견을 깨부수고 싶었다고 전했다.5)

  또 다른 세월호 참사 10주기 영화 프로젝트 <목화솜 피는 날> 신경수 감독과 <흔적> 한영희 감독은 세월호를 ‘잘’ 기억하는 방법으로 추모 공간을 제시했다. 개인적인 기억과 추모가 하나의 공간 안에 함께 연결될 수 있도록 작용하는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 그라운드 제로에 세워진 9.11테러 추모 공원이 선례가 된다. 기억하는 목적과 이유는 단 하나, ‘이 사회가 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신경수 감독은 4월 16일 안산에서 열린 추모식에 갔다가 추모를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귀에 담지 못할 이야기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들의 스피커가 크고 방식이 격하다 보니 다들 잠자코 있을 뿐이지, 아직 대한민국에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80~90%라고 생각한다는 언급과 함께, 그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극장에 방문해 존재감을 드러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그래야 그 힘으로 제2, 제3의 이야기가 탄생할 것 같다며 많은 이들이 함께하기를 권유했다.6)

  신경수 감독의 권유에서도 알 수 있듯 극장에 가서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 한 편을 보는 것만으로도 유족들, 세월호 참사 활동가들에게 앞으로도 활동을 이어 나갈 힘을 보태줄 수 있다. 활동의 원동력은 타인이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데서 오기도 한다. 매년 4월 16일이 돌아오면 SNS에 노란 리본과 추모의 메시지를 올리는 것, 지나가던 길에 세월호 추모 문화제가 열리고 있을 때 바삐 옮기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함께 묵념해 주는 것, 어딘가 걸려 있는 세월호의 노란 리본에 눈길을 머무르는 것 모두가 기억의 실천이고 연대의 표시가 된다.

  각자가 할 수 있는 스스로의 방식대로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고, 또 다른 이들에게 계속해서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는다. 정부와 언론이 구성한 프레임으로 인해 사회 전반에 연민 피로 현상이 만연했고, 이에 따라 기억하지 않겠다는 선택들이 생겨났다. 개인적 차원에서 연민 피로를 해소하려면 우선 연민이라는 감정적인 개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서 시작된다. 감정은 아무래도 가시적이지 않아서, 그 감정을 가진 사람 스스로 지금 느끼는 이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없어서 답답해하기 쉽다. 이렇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연민이라는 감정을 계속해서 회피하게 된다면 연민 피로는 영원히 해소될 수 없다. 하고 싶은 말은 일단 해야 속이 시원해진다는 말처럼 감정을 대할 때는 우선 세상 밖으로 꺼내야 한다. 길을 걸어가면서 노란 리본을 단 사람들이 보일 때. 내 발끝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천천히 들어 올려 그들 쪽으로 옮긴다면 연민 피로를 해소하기 위한 첫걸음은 성공한 것이다.


다시 세월호를 기억하기

  한 사물의 거리감은 흘러간 세월의 실제 거리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기억의 시력에 비례한다. 시간은 상대적이라서, 누군가에게 있어 10년은 무척 소중하며 평생을 안고 가야 할 시간일지도 모른다. 문종택 씨는 10년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라고 말한다. 지난 3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2시간 전인 오전 7시경 이준석 선장이 사고 발생 우려에 따라 퇴선을 건의했지만, 세월호 선사의 임원에게 묵살당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이렇게 아직 새로운 진실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10년이나 지났으면 그만하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어떻게 기억하는지이다.




1) 배여운, 「세월호 참사 10년 치 기사 댓글 분석했더니 '막말과 혐오' 더욱 심해졌다 [스프]」, 『SBS NEWS』, 2024.04.17.,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613421&plink=SHARE&cooper=COPY

2) 최영주, 「[EN:터뷰]신경수·한영희 두 기록자의 ‘세월호’ 기억법」, 『노컷뉴스』, 2024.05.25., https://www.nocutnews.co.kr/news/6150218?utm_source=naver&utm_medium=article&utm_campaign=20240525100552

3) 허용회, 「타인에 대한 지나친 공감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직썰』, 2018.08.07., https://www.ziksir.com/news/articleView.html?idxno=6794

4) 이성만, 「[세상속으로] 그날의 기억」, 『중도일보』, 2032.06.12., https://www.joongdo.co.kr/web/view.php?key=20230611010002505

5) 김영화, 「세월호 참사 그후, 아빠가 카메라를 들었다」, 『시사IN』, 2024.04.16.,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753

6) 최영주, 위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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