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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국교지 Sep 02. 2024

여성이 죽었다

[담장 너머] 서은

일상이 되어버린 비일상에 대해  

  모든 사람은 태어나고 죽는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일상적인 사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른 사람에 의해 살해당하지는 않는다. 살인은 지극히 비일상적인 사건이다. 만일 어느 집단에 속한 사람들 이 어느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살해당한다면, 이는 일상에 속하는 것일까, 비일상에 속하는 것일까? “멀리서 보면 일상, 가까이서 보면 비일상.” 어느 명언을 참고해 이렇게 말하면 되는 것일까?  

  한국여성의전화는 매년 ‘분노의 게이지’라는 이름으로 언론에 보도된 여성살해를 분석하고 통계내어 발표하고 있다. 『2023 분노의 게이지』에 따르면 지난해 총 146명의 여성이 남성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 뿐만 이 아니다. 살인미수, 즉 살해하고자 했으나 실패한 사건까지 포함하자면 언론에 보도된 것만으로 526명의  피해 여성이 추가적으로 발견된다.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또는 살해당할 뻔한 여성의 수는 총 672명, 365 일로 나누자면 매일 1.8명의 여성이 살해 위협을 받는다. 국가적인 통계가 진행되지 않았으며 상해치사의 수도 집계되지 않은 만큼, 이 수치는 분명 실제 살해당한 여성보다 더 적은 수일 것으로 예상한다. 참고로 최근 한국인은 하루 평균 1.8회 쌀을 섭취한다고 한다.1) 쌀을 먹는 것보다도 잦은 빈도로 남성은 여성을 살해하려 했다.  

  여기 일상이 되어버린 비일상이 있다. 이쯤 되면 왜 이런 현상이 존재하는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여성이 죽은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정확히는 남성이 여성을 살해한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왜 남성은  여성을 살해했는가, 왜 국가는 남성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지 못했는가. 이 질문의 답을 찾아낸 종국에 여성에게 일상다운 일상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을 가까이서 바라보려 한다.


강남역에서


<사진 1:  2016년 5월 23일 강남역 살인사건을 ‘묻지마 범죄’로 규정한 것에 대해 ‘여성혐오가 죽였다’고 항의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10번 출구 앞 화 장실에서 한 남성은 사회를 향한 분노를 이유 로 여성을 살해했다. 그는 본인의 입으로 이리 말했다, “여자라서 죽였다.” 이 말에 분노한 여 성들은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고 호명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이 사건을 정신질환에 의 한 ‘묻지마 범죄(이하 이상동기 범죄)’로 종결 했다.

  경찰은 가해자가 피해망상과 같은 정신질환을 이유로 여성에 대한 반감 또는 공격성을 띠고 있었지만, 여성에 대한 무차별적 편견이나 ‘여성이라면 무조건 싫다’는 식의 신념 체계가 있던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며  여성혐오 범죄가 아님을 주장했다.2)  이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지닌 사람은 혐오를 지니지 못한다. 혐오는 하나의 신념 체계이며 이를 지니기 위해서는 정신이 온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혐오는 이성을 활용해 체계를 확립하고 인지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 집단을 착취하기 위해, 또는 착취해왔기 때문에 존재하는, 그 착취를 정당화하는 불합리한 논리일 뿐이다. 사회는 교과서를 통하지 않더라도 개인에게 혐오를 주입할 수 있다.  

  게다가 가해자가 여성관련 자료와 성인물을 여러 차례 검색하고, 어머니로부터 소개받은 여성과 잠시 교제한 경험도 있는 점에 따라 여성을 ‘싫어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가해자의 여성혐오를 부정한 경찰의 의견은 우리 사회가 여성혐오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증명한다.3)  여성혐오는 여성을 싫어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하게 여기는 멸시, 여성을 쟁취하고 소유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물건화, 여성은 남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위계의 논리다. 가해자의 무시당했던 경험이 남성을 대상으로는 두려움으로, 여성을 대상으로는 분노로 나타난 것도 혐오의 논리다.

  형사사법 체계는 여성이 범죄의 대상이 되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판단한다. 여성은 물리적인 약자기에  범죄의 성공을 위해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이다. 가해자는 분명 여성을 범죄 대상으로 설정했음에도, 이 사건이 불특정 대상을 향한 이상동기 범죄로 종결된 것은 이러한 연유다.4)  여성을  범죄 대상으로 선정함의 동기는 혐오가 아닌 합리성이라는 것이다. 사회는 유독 약자를 대상으로 벌어진 잔혹사에 약육강식의 논리를 씌운다. ‘혐오조차 지니지 못하는’ 가해자가 어떻게 여성을 범죄 대상으로 선정하는 데에 있어 합리성을 발휘했는지에 대한 반문은 차치하더라도, 물리적 우위를 이용해 죽이는 것이 당연하다면 살인은 더 이상 비판가능하지 않다. 자연 상태처럼 힘의 논리에 따를 것이라면 국가도 법도 무용하다.

  무엇보다,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혐오범죄의 기준에만 집중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정신질환에서 기인한  범죄로 볼 것인지, 여성혐오를 원인으로 볼 것인지 명확하게 분류하고자 했다. 동시에 정신질환자의 범죄의 경우 혐오범죄의 형태를 띠고 있더라도 정신질환 범죄로 분류하는, 무려 50년도 넘은 해외사례를 따르기로  결정했다.5) 국내 혐오범죄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강학상의 언어로 혐오범죄로서의 시비를 가린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부르고자 한 의도는 지워졌다.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은 우 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가시화하는 하나의 표상이었다. 여성혐오 범죄란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만 으로 마주하게 되는 폭력을, 여성을 향한 폭력이 정당화되는 구조를, 여성의 생명이 가볍게 다루어지는 사회를, 여성혐오의 논리를 체화한 젠더 권력 기반의 범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신당역에서

<사진 2: 신당역 10번출구에 붙어있던 추모 글귀, 여성이었기 때문에 죽었음을 반문한다. ⓒ오마이뉴스>

  2022년 9월 14일 신당역 화장실에 서 어느 남성이 본인과 교제해주지 않음에 분노해 여성을 스토킹한 후 살해 했다. 이듬해 7월 인천에서도 같은 이유로 여성을 살해한 남성이 있었다. 비슷한 사례는 결코 이 둘뿐은 아니다. 여성을 향한 성애적 집착은 여성에 게 거절되는 순간 분노가 된다. 여성은, 특히나 성(性)에 있어서, 유구히 결정권을 지니지 못한 존재로 여겨져왔다. 이 같은 인식하에 남성은 여성의 거절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언론에 보도된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 중 배우자 또는 데이트 관계에서의 살인(살인미수 포함)은 무려 93.9%에 달하는 422건이다. 이중 이혼 및 결별의 요구나 재결합 및 만남의 거부가 원인인 사건은 총 104건이다.6)  여성의 거절은 정당한 권리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며, 남성을 향한 배신과 무시가 되어 보복의 대상이 된다. 이는 비단 스토킹 살인이나 교제 살인과 같이 성애적 집착이 개입한 사건에만 적용되는 논리는 아니다. 나를 무시한 것 같은 여자 종업원을,7)  나에게 잔소리를 한 어머니를,8)  ‘페미’인 것 같은 숏컷의 여성을 향한 폭력은 혐오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실행될 수 없다.9)  남성을 향한 여성의 불복종, 지적, 표출은 언제나 ‘감히’ 행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분노는 ‘나’에게 유해한 것을 대상으로, 이를 제거하고자 하는 욕구를 동반하는 감정이다.10) 하지만 분노 를 이유로 한 살인은 쉬이 실행되지 않는다. 살인은 그 결과를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가장 파괴적인 범죄 행위다. 따라서 사회구성원으로서 용서받기 어렵고, 가해자가 짊어져야 할 사법적 책임 또한 무겁다. 그런 행위를 실현하기 위해 단순한 분노 이전에 대상의 존재를 부정할 근거가 필요하다. 혐오와 분노는 모두 대상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나타내지만 표출의 양식이 다르다. 혐오는 분노와 달리 ‘나’와 대상 집단을 분리하며, 대상 집단을 폄하하거나 기피하게 한다. 이에 따라 분노가 혐오로부터 비롯되었을 때, 분노의 대상은 완전한 타자가 된다. 분노의 대상인 여성은 권리를 지닌 동등한 인간이 아닌, ‘나’의 하위의, ‘나’의 권력으로  다룰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때 분노의 욕구는 실현가능해진다.


여성의 죽음 겉에서  

  여성 혐오는 한 남성의 비뚤어진 신념이 아니며, 이에 기반한 폭력 또한 예기치 못한 이상현상이 아니다. 여성 살해는 국가가 묵인하고 있다. 여성 폭력 범죄의 암수율이 높은 것은 인지하고 있음에도, 국가는 통계 를 진행하지 않았다. 여성 폭력을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여성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 여성은 죽여도 되는 존재가 되었다.

  신당역 이후 1년이 지나서야 스토킹 처벌법의 반의사 불벌 조항이 폐지되었다.11) 2021년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거의 2년이 지난 후였다. 하지만 여전히 스토킹 범죄의 처벌은 집행유예에 그치기 일쑤다.12) 실 형으로 이어지지 않은 사건의 경우 스토킹 가해자의 보복이 더욱 거세진다. 아무리 접근금지와 같은 잠정 조치를 내리더라도 분노와 적대감으로 이행하지 않는다면 피해자는 더 큰 위기에 빠지게 된다. 교제 폭력의 경우 처벌을 강화하거나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안은 존재하지조차 않는다. 따라서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접근 금지 명령, 피해자의 일상을 위한 상담 및 의료지원도 불가능하다. 가해자 처벌을 위해서는 폭행죄에 의거해야 하는데, 현행법상 폭행죄는 반의사 불벌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보복이 두려워 신고 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13)  2016년 6월 1일 정부는 ‘여성대상 강력범죄 및 동기없는 범죄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총 6개의 대책이 제시되었는데, 그 중 한 가지만이 성평등(원문 양성평등)을 목표로 한다. 이마저도 방송통신위원회와의 협업 을 통해 방송심의 규정의 성평등 조항을 확대하는 것에 그친다. 이에 반해 정신질환자 및 알코올 중독자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면에서는 적극적이었다. 경찰은 정신질환이 의심되는 자가 위해를 가할 위험이  있을 때 응급입원 조치까지 내릴 수 있게 되었고, 정신질환 범죄자에 대한 치료감호기간 연장제도를 적극 활용하고자 했다. 와중에 강남역 살인사건이 공용화장실에서 발생했다는 점에 집중해 ‘공중화장실법시행령’을 개정해 남·여 화장실 분리설치를 확대하려 하기도 했다.14) 이 중 여성혐오 대한 언급은 전무하며, 여성이 일상적으로 겪어오던 폭력에 대한 어떠한 대책도 나타나 있지 않다. 여성살해의 발생 원인은 명백히 여성혐오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부는 악마화된 정신질환자를 향한 통제와 강력범죄의 처벌 강화에만 집중했다. 표면적인 강경대응을 통해 시민의 안심을 얻고 근본적인 해결은 회피하기 위함이다. 국가는 여성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없다. 국가의 중심은 기득권이며, 이들은 여성을 착취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여성에게는 너무 느린, 남성에게는 너무 이른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당장 살해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을 법·제도적 안전망이다. 가해자 처벌과 피해 자 지원, 재발방지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해 남성의 의도가 어떠하든지, 여성이 살해의 위협에서 보호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가해자의 심리를 분석하는 작업은, 가해자의 행위에 논리적인 이유를 제공함에 따라 면죄부를 쥐어주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성을 살해한 남성의 심리를  분석하는 과정을 경유해 여성혐오를 다시금 호명한 것은, 현 사회가 여성 살해의 원인이 여성혐오라는 당연 한 합의조차 이뤄내지 못했으며 오히려 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구조적 성차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여성가족부의 폐지를 주장했고, 이준석과 이십대 남성 일동은 평등을 불공정이라 불렀다. 혐오가 지워진 세상에서 여성 집단의 죽음은 파편화되었고, 남성 집단의 살해는 유별난 것, 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 되었다. 이대로라면 사망하는 여성의 수가 늘어나면 늘어나지,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여성인권이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가장 처음의 것부터 다시 증명하기 시작해야 한다. 남성이 여성을 살해한 이유도, 국가가 여성을 보호하지 않은 이유도 결국에는 혐오에 있다. 답을 모르고 내건 질문은 아니었다. 이제 우리는 처음 여성이 빵과 장미를 손에 쥐었을 때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여성혐오의 존재를 말해야 한다. 여성에게는 너무 느린 말이지만, 남성에게는 너무 이른 말로.




1) 안현주, 「[잡학톡] '삼시세끼'는 옛말... 쌀 섭취 끼니 수 평균 1.8회」, 『파이낸스 뉴스』, 2024.03.26., http://www.fnnews1.com/ news/articleView.html?idxno=99982

2) 김민정, 「‘묻지마 범죄’가 묻지 않은 것: 지식권력의 혐오 생산」, 『한국여성학』33(3), 2017, p.35 

3) 김민정, 위의 글, p.35 

4) 김민정, 위의 글, p.51 

5) 이기수, 「‘강남역 살인’ 사건의 여성혐오 논란과 수사상 시사점」, 『치안정책연구』31(1), 2017, pp.238-247

6) 한국여성의전화, 『2023년 분노의 게이지: 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 및 일면식 없는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분 석』, https://hotline.or.kr/archive/?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26 184041&t=board&category=62A76J71CU 

7) 강경모, 「동해 노래주점 여종업원 살해 40대...“나 무시해서...”」, 『채널A』, 2024.07.11., https://www.ichannela.com/news/ main/news_detailPage.do?publishId=000000420474 

8) 박효주, 「잔소리 듣고 홧김에...모친 흉기 살해한 패륜아」, 『머니투데이』, 2024.07.08., https://news.mt.co.kr/mtview. php?no=2024070815571582884

9) 장수경, 「“숏컷도 페미도 잘못 없는데...‘우연히 살아남았다’ 그 말 절감했죠”」, 『한겨레』, 2023.11.28., https://www.hani.co.kr/ arti/society/women/1118117.htm

10) 임동균, 「미래세대의 감정과 마음: 분노와 혐오」, 『한국사회학회』, 2017, pp.101-103

11) 스토킹 처벌법은 2021년 10월 제정 및 시행되었다. 그전까지 스토킹 범죄는 ‘경범죄 처벌법’에 의거해 미약한 벌금형 처벌을 받아왔 으며, 이는 결국 피해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스토킹 처벌법 제정 이후에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처벌하지 않는 반의사 불 벌 조항으로 인해 가해자에게 협박 받은 피해자가 어쩔 수 없이 처벌에 반하는 경우로 엄정한 처벌과 피해자 보호가 이뤄지지 못했다. 

12) 오세진, 「스토킹 실형 비율, 평균보다 10%p 낮아...“접근금지 큰 효과 없다”」, 『한겨레』, 2024.06.25., https://www.hani. co.kr/arti/society/women/1146189.html?utm_source=copy&utm_medium=copy&utm_campaign=btn_share&utm_ content=20240809 

13) 박준이, 「‘천만 유튜버’ 쯔양 4년간 교제폭력 피해…신고조차 어려운 법 사각지대」, 『아시아경제』, 2024.07.12., https://view. asiae.co.kr/article/2024071209134831571

14) 여성가족부, 「정부, 여성대상 강력범죄 및 동기없는 범죄 종합대책 마련」,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16.06.01., https://www. korea.kr/briefing/pressReleaseView.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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