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레이의 '터줏대감' 라야바디(Rayavadee) 리조트 여행기 1편
지독히도 일상이 공개되는 걸 원치 않는 남편 덕에 1년에 4번 해외에 나가면서도 우리 부부의 세계 여행에 대해서는 아직 한 번도 쓴적이 없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 내 기억력 때문에 몰래 기록하기로 했다. 참고로 우리는 둘다 파워 J 성향이라 무계획을 싫어한다. 그럼에도 정보가 없는 신선한 여행지에 환장하고, 특별한 경험을 위해서라면 과감히 투자한다. 그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인상 깊었던 여행지에 대한 정보와 여정 속의 감정들을 기록하고자 한다.
태국 여행은 이번이 두 번째다. 우리 기준에 태국은 물가도 싸고, 여행 인프라(숙박, 언어, 관광지 관리, 교통, 치안, 관광객에 대한 태도 등)가 비교적 잘 된 곳이다. 그래서 주로 여행 모토가 '힐링'일 때 태국을 선택한다.
24개국을 가 본 남편이 이국적인 느낌을 느끼려면 태국 중에서도 신선한(?) 곳이어야 했다. 그래서 그나마 남들이 잘 가지 않는 후아힌(Hua Hin)과 끄라비(Krabi)가 후보에 올랐다. 우린 아직 젊기에 조금 더 가기 어려운 끄라비를 선택했는데, 사실 끄라비를 밀어 붙인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내가 라야바디에 완벽히 꽃혔기 때문. 알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신혼 여행 리조트이기도 한 라야바디는 태국 끄라비 남쪽 라일레이 지역에 위치한 리조트다.
라일레이는 끄라비 남쪽 끝에 위치한다. 동-서로 가르는 아오낭 클리프라는 절벽 이남 지역인데 아직 도로 인프라가 조성되지 않아 육로로는 갈 수 없다. 주로 아오낭 비치, 아오남 마오 비치, 끄라비 타운에서 보트를 타고 배로 들어 가야한다. 그래서인지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고 자연 환경은 매우 보존이 잘 되어 있다.
뛰어난 자연 경관으로 라일레이엔 샌드씨 리조트, 라일레이 비치 리조트 등 많은 리조트 들이 있다. 라야바디는 그 중 유일한 5성급 리조트로 부지도 굉장히 크고 프라이빗 하다. 왼쪽에는 라일레이 서쪽 비치, 오른쪽엔 동쪽 비치, 프라낭 비치를 모두 끼고 있는데, 리조트 부지 내로는 외부 여행객들이 들어올 수 없게 가드들이 배치돼 있다.
사실 남편과 나는 최근 굉장히 지쳐있었다. 남편은 갑작스런 재택 해제로 주 5일 출근을 하게 됐고 잊고 지내던 인간관계 속 스트레스에 파묻혔다. 나는 올해 내내 서른 중반을 맞이하며 '노력하지 않으면서^^ 멈춰있는 듯한 느낌에' 시달렸는데, 여행 전 신규 프로젝트에 투입되지 못하자 불안감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
환기가 필요했고, 라야바디는 그 모든 조건을 갖춘 최적의 장소인 것 같았다. 가기 어려운 곳에 있는 아름다운 비치, 깨끗하고 고급스런 프라이빗한 리조트. 라야바디 투숙객만 이용할 수 있는 더 그루토(The GROTTO)에서 환상적인 디너까지 하면 완벽한 분위기 전환이 될 것 같았다.
유명세 때문인지 가격은 아무리 특가를 기다려도 떨어지지 않는데, 무려 일박에 50만원~100만원 대. 그럴만 한 게 라야바디 룸 타입은 딱 세개 뿐이고 모두 독채다. 지를 땐 지르는 우리여도 1박에 백만원은 너무 무리였다. 가장 저렴이인 디럭스 파빌리온을 타깃으로 출발 이틀 전까지 특가를 기다렸고 운 좋게 아고다에서 40만 원 초반에 끊을 수 있었다.
도보로 갈 수 없는 이 곳! 가는 방법은 두 가지, 럭셔리 루트가 있고 싼(?)방법이 있다. 럭셔리한 방법은 농눅 피어(Rayavadee Pier at Nong Nuch)라는 라야바디 전용 선착장에서 전용 스피드 보트를 타고 들어가는 방법이다. 인당 900바트의 요금을 내야하지만 20명 정원의 호화 보트에 시간표에 따라 단 한 명이어도 출발한다. 캐리어도 들고 탈 수 있으며 타고 내릴때 모두 직원분들이 짐을 옮겨준다.
싼 방법은 아오낭 비치, 아오남 마오 비치, 크라비 타운에서 롱테일 보트를 타고 들어가는 방법이다. 롱테일 보트는 태국식 나룻배라고 할 수 있겠다. 인당 100바트 정도 인 것 같고, 8명이 모여야 출발한다고 한다. 각 출발지마다 가격과 출발 인원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우리는 고민하다 비싼 방법을 선택했다. 이유는 너무 큰 캐리어가 있었고, 렌트를 했기에 라야바디에서 숙박을 하는 동안 안전한 곳에 차를 주차해야 했다. 또 롱테일 보트를 타는 과정에서 몇몇 선장들의 가격 후려치기로 흥정 스킬이 요구된다는 후기를 읽었다. 중국 유학을 해서 흥정과 노(NO)질서에는 익숙한 우리지만 이번 여행만큼은 쓸데없는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진 않았다.
역시 돈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선착장과 보트는 매우 훌륭했는데, 사진을 찍지 않아 구글 맵의 이용자 사진을 가져왔다. 사진과 똑같다고 보면 된다. 아무도 없는 선착장에 들어서면 어디선가 아주 친절한 직원분이 싸와디캅을 외치며 나타난다.
호텔 측은 전용 보트를 타려면 꼭 예약하라고 하는데 우리는 이 공지를 늦게봤고, 당일 아침에 11시30분 보트를 전화로 예약했다. 근데 이 마저도 길을 헤메다 놓쳤다. 그럼에도 전혀 문제는 없었다. 친절한 직원분은 투숙객임을 확인한 뒤 1시30분에 보트가 또 있으니 주변에서 좀 놀다 1시20분까지는 오라고 했다.
늠름한 보트를 봐서 인지 남편과 나는 기분 좋게 발길을 돌렸다. 어떤 걸 해야 알차게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다 근처 마사지샵을 찾았다. 시설이 엄청 좋아보이진 않지만 평점이 높은 곳을 선택했는데, 이 샵은 정말 말도 안되게 좋았다. 끄라비에서 5박동안 받은 곳 중 가성비, 마사지 스킬을 따졌을 때 최고였다. 역시 여행은 계획하지 않은 즐거움이 주는 행복이 있다. 'Body Kneads Thai Massage'라는 곳이며(위치 : 12/14 Chao Fa Alley Pak Nam, Mueang Krabi District, Krabi 81000 태국), 300바트에 60분 기본 타이 마사지를 받았다. 강추 강추
마사지로 긴장이 풀렸는지, 파도가 엄청났음에도 라일레이로 들어가는 보트에서 우린 바운스를 즐겼다. 기분이 좋았어서 망정이지 정말 이 날같이 파도가 높은날 롱테일 보트를 탔으면 생존을 걱정해야했을지도 모른다. 20분 정도를 파도를 뚫고 라일레이 근처에 도착하니 파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졌다. 에메랄드 색 바다와 우뚝 솟은 절벽이 나타나자 그제서야 진짜 끄라비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호텔 직원들은 보트가 하차하는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융숭한 대접은 너무 오랜만이라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진심으로 반겨주는 듯한 모습에 덩달아 기쁘고 설레였다. 일행 당 짐을 옮겨주는 포터와 체크인을 도와주는 직원 분이 붙었고, 독채의 돔형 로비는 새 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찬 물수건으로 얼굴을 덮는 순간 머리를 옥죄던 이직, 승진 따윈 생각나지 않았다. 시원하면서도 달달하고 건강한 맛의 웰컴 드링크를 쪼록쪼록 마시며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브리핑에 가까운 리조트에 대한 설명을 듣다보니 '이게 힐링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체크인 외에도 저녁 메뉴 예약을 하느라 다른 일행 보다도 늦게 방에 들어갔다. 라야바디 전용 레스토랑인 더 그루토는 단품 메뉴 (1인당 1주문 필수), 2명의 쉐어 메뉴 선택이 가능했다. 가격은 단품메뉴 2900바트~6900바트까지 다양한데, 단품 메뉴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현지 물가와 비교하면 더 그루토는 매우 비쌌다.
우리는 언제 또 이런 곳에 와보겠냐며 무려 6900바트(한화 약 25만 원)의 wood fired seafood platter를 선택했다. 정말 미쳤다. 다행히 25만원짜리 플래터를 선택하면, 에피타이져 2개, 사이드 3개, 디저트 2개를 함께 준다. 25만원 외 추가로 나갈 돈은 없었다. 그럼에도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던 게 맞다. 한 끼 식사에 25만원이라니...
그래도 후회는 안 한다. 정말 완벽한 디너였고, 우리 기억속에 오래 남을거다(...라고 합리화를 해본다)
극흥분상태로 엄청나게 비싼 디너를 주문하고 우리는 전담 직원을 따라 룸으로 이동했다. 룸으로 이동하는 길은 우거진 열대우림과 기암괴석 덕분에 미지의 세계로 가는 탐험같았다. 그럼에도 정원은 돌 하나, 나무하나 정돈이 잘 되어 있고 독채로된 룸 구성 때문인지 매우 평화롭고 조용했다.
직원 설명에 따르면 라야바디는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나무하나 망가뜨리지 않고 리조트를 만드는데 주력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리조트 내부여도 숲은 울창했고, 지붕과 나무에 원숭이가 돌아다니고 있고 특이한 새들도 많았다.
드디어 도착한 230호 우리 숙소. 숙소는 일직선으로 위치한 로비와 풀장을 기준으로 왼쪽 가운데 위치했는데 비치, 레스토랑, 풀장, 헬스장 등 시설들을 이용하는데 편리했다. 디럭스 파빌리온은 1층은 거실과 작은 화장실, 2층은 침실과 큰 화장실로 구성됐다. 룸마다 앞에 테라스가 있고 정돈된 의자와 테이블이 있다. 문 입구 옆에는 비가 자주오는 태국 날씨를 고려해서인지 우산 꽃이가 있고 우산이 두 개 준비돼 있다. 해변으로 갔다 돌아오면 발을 씻을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작은 수도도 있다.
룸은 정말 완벽했다. 날이 쨍하지 않아 사진이 좀 어둡게 나왔는데, 너무 편안하고 깔끔했다. 특히 1층에 화장실이 하나 더 있는 게 정말 센스 짱이다. 총 2층이어서 1층 쇼파에서 뒹굴뒹굴하다가 화장실을 가려면 올라가야하는 줄 알았는데, 구석에 있는 문을 무심코 연 남편덕에 화장실을 발견하고 감탄했다. 참고로 이 1층 쇼파는 배드만큼이나 푹신하고 넓다. 나는 특히 이 쇼파를 제대로 즐겼는데, 머무는 기간 동안 저 쇼파에 누워서 책도 읽고, 낮잠을 자기도 했다.
신혼 여행은 아니지만 신혼같이 살고 있는 우리는 예약할 때 허니문이라 호텔에 슬쩍 언급했고 호텔에선 몇가지 허니문 선물을 준비해줬다. (쓰다보니 죄송하다) 허니문 축하 편지와 샴페인을 선물받고 1차 감동을 했는데, 2층에 올라가니 욕조, 침대에 화관과 입욕 시 넣는 꽃들도 준비돼 있었다. 이 밖에 각종 과일과 쿠키, 물은 동일하게 모두 무료로 제공되는 것 같았다.
어메니티는 라야바디에서 만든 제품이라는데, 향도 질도 너무 좋았다. 특히 바디 로션들이 좋았는데 무려 두 종류로 준비가 되어 있다. 어메니티는 큰 용기에 가득 담겨 있어 머무는 동안 신나게 썼다! 그리고 취침 전 이부자리와 욕실 등을 간단히 정리해준다. 화장실에 모기 쫒는 초도 켜주고 어메니티도 가득 채워 넣어 준다. 라야바디의 우렁각시 서비스에 감동 또 감동.
신나게 룸 투어를 마치고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룸은 확실히 독채여서 그런지 조용했다. 밖에는 간간히 내리는 빗소리와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만 들렸다. 나는 비행기에서 읽다만 책을 읽었고, 남편은 커피를 내려 마시며 호텔 엑티비티를 훓어보았다. 카약 투어가 있다며 대뜸 카약을 타보자고 했다. 정말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2편에서는 수영장, 라일레이 비치 워킹 스트릿, 더 그루토, 조식, 프라낭 비치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