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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Dec 15. 2020

정지와 운동

프롤로그 I


운동(또는 변화)은 정지를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 정지를 먼저 이해하여야 한다. 자연이나 인간 또는 사회의 어떤 변화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정지 상태 또는 정적인 상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파악한다. 물체의 운동이든 사회 또는 인간의 변화이든 모든 변화를 알고자 할 때 우선 정지 상태 또는 정적 상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아는 것이 우선적이다. 정지를 이해하는 것이 운동을 이해하기보다 쉽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이 균질한 특정 상태의 정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운동을 알 수는 없다.  그러므로 철학이건 과학이건 상태를 이해하기 위하여 항상 정적 상태의 담론을 먼저 사유하거나 탐구하여 왔다. 정지가 이해되었으면 이를 바탕으로 변화의 이해로 들어간다. 한 가지 예를 들여다보자. 19세기에 이루어진 전기와 자기 현상에 대한 이해는 정지와 운동의 순차적 이해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이다.


18세기 중반에 전기를 모으는 장치인 라이덴병이 발명되고 병 안에 축적된 전기를 이용하여 전기에 대한 여러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양과 음의 두 종류의 전기는 많은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전기는 서로 밀치고 다른 전기는 서로 끌어당기고 전기의 양에 따라 미치는 영향이 모두 다르다. 전하 사이에 미치는 힘 또한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18세기 말에 쿨롱이 발견한 법칙은 두 전하 사이에 작용하는 힘은 두 전하의 양에 비례하고 그것들 간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여 만유인력의 법칙을 닮았다. 그런데 쿨롱의 법칙은 두 개의 전하가 정지해 있는 상태에서 전하 사이에 미치는 힘의 법칙이다. 라이덴병은 정지해 있는 전기를 모아 놓은 도구였으므로 병에서 방출되는 전하는 일정 시간 동안 도선 등에 전기를 흐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방전되곤 했다. 즉 전기를 지속해서 흐르게 할 수 없었던 라이덴병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정지 상태의 전하의 성질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라이덴병은 정전기의 성질을 알게 하는 중요한 도구였다. 쿨롱의 법칙은 정전기 연구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기념 법칙이 되었다. 사람들은 전기를 지속해서 공급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1800년에 전기를 지속해서 흐르게 하는 전지가 발명되었다. 전지의 발명은 전기 현상의 이해에 기폭제가 되었다. 전지는 흐르는 전기인 전류에 관한 연구를 촉발하였고 전류는 단위 시간당 전하의 흐름으로 규정되었다. 전하의 운동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를 낳았다. 전류가 흐르면 반드시 자기장이 유도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전기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없다. 전하가 시간에 따라 변하면 자기가 유도된다. 전류가 자기를 유도하는 법칙이 앙페르의 법칙이다. 앙페르의 법칙이 알려진 지 20년 후인 1831년에 이와는 반대 현상이 발견되었다. 즉, 시간에 따라 변하는 자기장이 전류를 유도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패러데이 법칙의 발견은 전기와 자기가 독립적이 아니라 서로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함의하고 있었다. 이처럼 전기와 자기의 변화에 대한 일련의 이해는 정지 상태의 전기 및 자기 현상의 이해를 전제로 한다. 정지가 이해되지 않거나 정지가 먼저 화두가 되지 않고 변화가 선행하는 일은 없다.


정지와 운동의 선행 관계는 철학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서양철학의 시초로 알려진 그리스의 밀레투스학파는 만물의 근원에 대해 사유했다. 학파는 만물이 물로 되어 있거나 아페이론으로 되어 있거나 또는 공기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만물이 무엇으로 되어 있냐는 질문은 정적이다. 물론 물이라고 주장한 탈레스는 물이 고체, 액체 및 기체로 변하는 것으로부터 근원을 유추했을 것이다. 공기라고 주장한 아낙사고라스 또한 그러한데 다만 이들에게 변화가 중요한 화두는 아니었다. 세계의 변화무쌍함을 알고 있었으나 변화를 철학적으로 어떻게 접근하기에 앞서 세계가 무엇으로 되어 있냐는 질문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고 했다. 정적인 질문이 있음으로 변화에 대한 사유가 시작될 수 있었다.


BC 6세기 그리스 철학자들의 세계에 대한 정적인 사유는 BC 5세기의 철학자들에게 동적인 사유를 하도록 영향을 끼친다. 앞서 기술한 대로 동적 사유는 정적 사유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이토스에게 세계의 변화가 화두의 중심이었다. 그의 만물 유전설은 이를 잘 대변해주며 만물이 불이라는 주장은 세계가 변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명제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에 관한 사유 또한 변화를 화두의 중심에 두었던 깊은 생각이었다.  


이와 같이 정적 또는 동적 관점은 근대철학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중세의 스콜라철학을 넘어서 근대철학은 이전과는 다른 사유로서 이성이 논의의 중심 대상이었다. 신에의 의존을 벗어나 인간 이성으로 사유하고 결정하는 인간 존재 중심의 사유는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에서 시작되었고 이에 대항하는 경험주의 또한 인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얻으려 하였다.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의 주장을 다 고려한 칸트의 비판철학은 근대철학의 본격적 시작을 알린 쾌거였다. 그런데 이러한 계몽시대의 철학은 시간과 공간에 균질한 정적 철학이다. 인간이 인식하는 방법을 얘기하고는 있어도 인간 개체가 성장하면서 인식의 범위가 달라진다는 언급은 없다. 더 나아가 인간 인식이 고대와 현대가 같을 리도 없다. 또한 사회도 변하므로 역사 속에서 인식이 어떻게 변천되는 지도 중요할 수 있다. 칸트의 정적 철학은 근대철학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이정표였으므로 근대철학의 발전은 동적 관점을 부여하여 사유하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헤겔의 철학이 바로 인간, 사회와 역사를 다 포함하여 사유한 동적 철학이다. 정지를 넘어 운동학적 관점에서의 사유가 헤겔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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