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와 운동을 포함한 사유나 탐구는 철학이든 과학이든 상관없이 관심 대상의 논증에서 체계적 구성 요소가 되는 전제 조건이다. 어떤 담론의 체계를 세우기 위해 가장 이상적인 조건은 하나로부터 모든 것을 설명하는 구조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하나의 원리가 담론의 대상 전체의 근본 법칙이 되고 담론 안에서의 다양성은 법칙의 우산 안에 놓이게 된다. 인간 이성의 가장 최상의 목표는 세계를 하나의 법칙 안에서 설명하는 것일 것이다. 모든 것을 통합하여 하나의 틀로 묶어 세계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철학이나 과학에 오랜 역사를 가졌고 물리학에서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물리학의 통일장 이론에 의하면 오늘날 우주에 존재하는 네 개의 근본적 힘이 우주의 시작에는 원래 하나의 힘이었다. 중력, 전자기력, 강력 및 약력의 기본 힘이 하나의 힘으로부터 생성되었다는 점에서 통일을 지향한다. 시작에서 현재 및 미래에 이들 힘이 어떻게 나누어졌고 나누어진 힘들에 따라 기본입자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설명한다. 보다시피 이론이 추구하는 바는 매우 근원적이고 근본적이다. 이런 추구는 필수적으로 우주 전체를 통하는 기본 법칙을 전제로 한다. 구축된 이론은 실험 결과와 반드시 맞아야 하는 엄중한 조건이 있다. 이 점이 인문학, 사회과학과 다른 점이다.
물리학의 역사에서 첫 번째 통일장 이론은 19세기에 구축된 전기와 자기 현상을 하나로 묶은 이론인 맥스웰 방정식이다. 언급했다시피 정지 상태의 전기와 자기 현상을 이해는 변화하는 전기와 자기가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알아내게 한 전제였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전기가 자기를 생성하고 역으로 변화하는 자기가 전기를 생성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과정 모두는 실험을 통하여 알아낸 결과로써 전기와 자기 현상을 독립적으로 치부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이와 같은 두 현상은 서로 깊이 연계되어 한 현상의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전기와 자기를 통합하여 하나의 이론을 구축한 것이 전자기 이론이므로 맥스웰 방정식은 물리학 역사상 처음 구축된 통일장 이론이다.
전자기학 이론의 성립 과정은 정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운동을 이해하고 난 후, 즉, 전기와 자기 현상 각각을 알고 그것들의 연계를 파악하고 난 후, 이에 대한 통일 이론의 구축이다. 그러므로 정지, 운동과 통일은 물리학에서 자연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전자기 방정식은 자연에 존재하는 힘을 모두 고려한 통일장 이론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모든 힘을 고려한 통일장 이론 구축 기반에 전자기 방정식의 예시가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담론에서 정지, 운동 그리고 통합이라는 기본 틀은 고대 그리스 사상에도 적확히 나타난다. 세계의 근원에 대한 정적인 사유가 발전하여 변화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한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 등의 기원전 5세기 철학자들의 화두는 단지 그 세대의 화두에 머물지 않았다. 기원전 5, 6세기의 2백 년에 걸친 정적인 관점과 동적인 관점에 대한 온갖 사유들은 플라톤에 의해 다듬어져 담론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플라톤에 의해 통합이 시도되기도 했는데 다만 이데아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이데아는 이상적 환경을 만들었지만, 무엇인가 인간 이성으로 알 수 없는 한계 또한 자연적으로 노출되므로 세계를 이성으로 파악하는 것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자연현상을 매우 꼼꼼히 들여다본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이데아가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파악해낸 자연현상이 실재가 아니라면 그가 탐구한 것들이 무의미하게 되므로 이데아를 반박한다. 그는 인간의 이성이 알아낸 것을 실재와 동일시하였다. 세계라는 실재를 이성이 파악할 수 있으므로 세계를 체계적으로 통합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철학은 인간의 지성이 성취한 지식의 종합 가운데 가장 포괄적이고 체계적이다. 개개의 학문을 통일된 원리에 따라 체계화하려 하였다. 가히 학문의 통일장 이론이라 칭할만한 그의 체계는 BC 6세기부터 약 20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선대 철학자들이 사유한 정지와 운동을 통합적 사고로 해석하여 통일된 학문체계를 구축하였다. 고대, 중세를 막론하고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이 인문, 사회과학 및 자연과학 모두를 포함한 방대한 지식을 자신의 체계로 통합시킨 사상가는 아리스토텔레스 빼고는 없다.
이러한 체계가 뉴턴에 의한 근대 과학 혁명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류가 드러나게 되어 자연과학이 따로 떨어져 나가면서 학문의 통일은 해체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칸트의 혁혁한 근대철학의 여명은 심대한 영향과 함께 반발도 나타나면서 자연과학을 제외한 인문, 사회과학의 통합이라는 과제는 헤겔에 의해 이루어졌다. 물론 자연과학에서의 통일장 이론은 현대 물리학의 입자 물리 분야에서 구축된 표준모형이 그 예가 될 것이다. 물리학에서 통일장 이론의 시동은 1967년이고 헤겔의 성취는 19세기 초 무렵이었다.
근대 초기의 철학이 이성을 중심으로 합리주의가 나타나고 경험을 발판으로 경험주의가 도출되고 선험 비판철학이 이를 통합한 형태를 취해 근대철학의 시작을 알릴 만큼 큰 혁명이었을지라도 사유는 모두 정적이었다. 통일성의 관점에서 풀어내려면 동적인 관점, 즉, 시간과 공간, 개체 모두를 고려하지 않으면, 무시대적, 무공간적 균질성을 해체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헤겔은 그간의 철학을 바탕으로, 주로 칸트의 비판철학을 비판하면서, 시공간을 고려한 사상을 발전시켰다. 뉴턴의 아리스토텔레스 해체 이후, 자연과학과 인간 과학(인문학과 사회과학)은 분리될 수밖에 없었다. 인간 과학의 통합은 헤겔이 구축하려 하였고 자연과학의 통합은 물리학의 통일장 이론의 구축이다.
역사상 세 경우 통합의 공통점은 모두 시대적 사유의 변화를 모두 흡수하여 통일을 이루어낸 것이다. 핵심은 정적 사유에서 동적 사유로의 이행으로 나타난 사상의 흡수를 통해 통일성을 담보로 한 사유의 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