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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Mar 25. 2021

칸트가 바라본 뉴턴 물리학

철학 혁명

칸트는 뉴턴 물리학의 중요성과 엄청난 파급력을 인지한 철학자이다. 물리학 대신에 연금술이나 성경 해석에 그의 연구 시간을 대부분 할애한 뉴턴 자신은 정작 그가 구축한 물리학 이론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한 것 같다. 뉴턴 물리학이 자연을 보는 관점에 일대 전환을 가져다주었고 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철학에도 이러한 일대 전환을 이루려 한 이가 바로 칸트이다. 칸트가 젊은 시절에 수행한 물리학 연구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의 뉴턴 물리학을 향한 야심을 엿볼 수 있다. 연구 대상은 뉴턴 물리학에서 논쟁거리가 되는 것들이었다.


뉴턴 물리학은 찬사만 받은 게 아니다. <프린키피아>가 출판되자마자 이론의 진위에 관해 당시 데카르트 물리 이론이 올바르다고 믿었던 학자들의 비난이 이어졌다. 뉴턴도 공부한 바 있는 과학 교재인 데카르트의 <철학의 원리>의 물리학은 당시에 널리 받아들여진 이론이었다. 그런데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은 데카르트의 이론에 비해 부정확해 보였다. 그의 와류 이론은 별들이 어떻게 생성되고 행성들의 운동이 어떤 기법으로 이루어지는지 설명한다. 우주 공간에 가득 차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소한 물질 입자들이 원형의 흐름을 만들어 소용돌이의 형태로 움직인다. 소용돌이 중심에서 물질 입자들이 찌그러지며 생긴 마찰로 가열되어 열과 빛이 방출되어 태양이 생성되고 소용돌이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뭉친 물질 입자들이 행성이 되었다. 생성된 행성들이 태양 주위에 거대한 회전 흐름(와류)을 만들어 소용돌이가 구획을 만들고 구획을 따라 행성들이 각각 운행한다. 그러므로 와류 이론은 별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와 행성이 어떻게 돌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셈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은 행성들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법칙을 준거로 생성에 대한 이론의 구축이 가능하지만 적어도 프린키피아에 그런 내용은 없었다. 또 다른 문제는 만유인력 법칙은 힘이 두 물체의 질량과 그들 사이 거리의 역 제곱에 비례하는 구조를 가질 뿐이고, 힘이 공간을 따라 어떻게 전달되는지 설명이 없는데 와류 이론은 행성 사이의 힘이 소용돌이에 의해 전달된다고 주장한다. 그에 비해 만유인력은 힘이 두 물체 사이의 거리에 상관없이 순식간에 전달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데카르트 주의자들은 태양과 행성 사이의 거리가 수백만 킬로미터가 넘는데 둘 사이에 중력이 순식간에 작용한다는 개념 자체가 초자연적이라고 비난하였다. 뉴턴도 이에 대해 논증적 방어를 할 수 없었다.


공간에 대한 정의도 커다란 논쟁거리가 되었다. 뉴턴 물리학은 입자의 위치를 시간에 따라 예측하는 이론이다. 위치는 미래의 특정 공간 안에 개개의 입자가 점유하여 결정된다. 그러므로 공간이 없으면 미래에 물체가 공간을 점유한다는 것이 무의미해진다. 그러므로 뉴턴은 공간을 물질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로서 규정하였다. 이를 절대공간이라 하는데 데카르트의 관계주의 공간과 배치된다. 데카르트는 어떤 것이 물질이라고 여겨지기 위해서는 그것의 길이, 폭과 높이 등의 외연만이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 공간은 단지 물체의 점거를 규정해주는 수학의 좌표계와 같은 것으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공간의 본질에 관한 두 관점인 관계주의 공간과 절대공간은 이처럼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뉴턴 물리학에 제기된 문제는 칸트의 주의를 환기시켜 해결책을 내놓기에 이른다. 칸트는 우선 뉴턴 물리학으로 별의 생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태양계에서 행성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뉴턴 물리학의 관점에서 고찰한 그의 논문은 젊은 시절 도출되었다. 그의 행성 기원 이론은 라플라스의 수학적 연구와 함께 오늘날 칸트-라플라스 이론이라 불린다. 더 나아가 칸트는 절대공간을 지지하였다. 실제와 거울에 비치는 상의 관계인 반전성을 이용하여 절대공간은 존재한다고 역설하였다. 뉴턴 물리학에 대한 칸트의 관심은 철학에 관한 재고를 불러일으켰다.  자연 안에 운동 중인 물체들의 모든 사건은 특수하고 결정적으로 정해진다는 사실에 매료되었다. 철학도 자연과학처럼 보편성을 띨 수 있느냐가 그의 관심이었다.


칸트는 과학과 같은 명백한 지식이 있는 데 비해 당시 철학이 가진 모호성에 커다란 의문을 제기했다. 대륙의 합리주의와 영국의 경험주의는 각각 제 나름대로 필요한 것만 주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태까지의 철학이 진리에 이미 다가선 자연과학의 시대에 적합하지 않았다. 합리주의는 과학적 사실을 전혀 제공해주지 못했고 경험주의는 뉴턴 물리학의 성공과 믿을만한 세상의 지식이 증가하고 있는 사실을 정당화시키지 못했다. 수학적 체계 위에 형이상학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려 한 데카르트는 확실한 결론에 이르는 데 실패하였지만, 뉴턴 물리학과 같이 전혀 합치가 되지 않은 이론은 자연을 올바르게 묘사하고 있었다. 이성을 통해 경험을 넘어서는 실재에 관한 인식을 확장하려는 시도가 실패했음을 의미했다. 다른 한편으로 흄은 경험에 근거한 인과적 사건일지라도 어떠한 정당화도 제공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경험론에 준거하면 우리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뉴턴 물리학은 그러한 판단에 기초하고 있다. 고로 두 철학 사조는 뉴턴 물리학과 같은 과학의 정당성에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 뉴턴 물리학은 두 철학 사조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지위를 누리기에 충분한 보편성을 확실히 확보하고 있었다. 이게 현실이다. 철학의 로망은 태초 이래 보편성과 필연성이 아니었던 적이 있었는가? 어느 누가 자신의 철학이 틀렸다는 전제하에 중심을 세웠겠는가? 왜 연역을 사용하였겠는가? 모두 자신의 철학이 보편성과 필연성을 가지기를 희망하지 않으면 자신의 논증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불운하게도 이런 적은 없었다. 생뚱맞게도 보편성과 필연성을 품은 것은 뉴턴물리학이었다. 뉴턴주의는 합리주의나 경험주의와 전혀 관계가 없었다.   


이제 칸트가 철학하는 목적이 분명해졌다. 과학 세계가 유기체적 관점에서 기계론적 관점으로 전환된 획기적 사건에 발맞춰 철학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해야 한다는 세기적 목적 말이다. 그가 보기에 뉴턴 물리학으로 보편적 승인이 과학에 시작되었는데 인식의 궁극적 원칙에 관한 철학의 형이상학 체계는 전혀 보편적이지 않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합리적인 논증이 불가능한 형이상학의 신과 같은 비물질적인 대상은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타당해 보였다. 대신에 인과 법칙에 따라 시간과 공간에서 상호작용하는 물체에 대한 논리인 자연과학은 합리성을 담보하므로 논의 대상으로 고려했다. 칸트에게 철학 논증의 대상은 형이상학이 아니라, 유클리드 기하학의 순수수학과 뉴턴 물리학의 자연과학과 같이 명료한 지식이 인간에게 어떻게 가능한지였다.  이와 아울러 과학 세계의 개념이 개개의 사건들이 상호 결정되는 과정의 객관적 지식인 것과는  다른 인식 체계인 자유에 준거한 도덕적 경험의 세계와 융화시키는 것을 그의 일대 사명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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