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혁명
중세의 기나긴 보편자와 개별자에 관한 논쟁과 르네상스의 인간 본위 인문주의는 이성이 일어서는 데 커다란 디딤돌이 되었다. 중세 철학자들은 이성의 역할이 전통이 설정한 한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지만 이성을 화두로 한 논증의 끝은 유명론이었다. 르네상스 철학자들은 자신들이 사라진 고대의 지혜를 다시 발견하여 보급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곧 고대 그리스 사상의 발현 이후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이성의 일깨움을 의미했다. 이성은 독립을 얻었고 이성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닦아졌다. 다만 이성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은 17세기가 되어서 등장한다.
르네 데카르트는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의 이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이성으로 진리를 도출하는 확고한 방법론을 구축했다는 의미에서 근대철학의 문을 연 장본인이다. 그는 자신이 고대 철학 이래로 완전히 새로운 철학을 제시하였다고 생각했다. 원리들로부터 실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진리 체계를 연역으로 구축할 수 있다고 믿었다. 방법은 참과 거짓만을 따져 확실한 정보를 담보로 하는 수학적 체계를 철학적 체계에 접목하여 사실적 정보를 얻는 진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같은 합리주의자인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도 같은 생각을 하였다. 스피노자의 <에티카>의 경우, 정의와 공리로부터 출발하여 연속되는 명제를 체계적으로 증명하여 결론이 도출되도록 구성되어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의 체계를 그대로 따랐다.
연역 체계의 구축은 곧 이성만의 사용을 의미한다. 합리주의자는 경험적 확증이 없이 성립하는 진리인 본유 관념과 선천적으로 주어진 진리를 인정하였다. 설령 우리가 경험으로서(배움으로) 본유적 진리를 인식한다고 할지라도 선천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선천적으로 주어진 관념은 <기하학 원론>의 공리 같은 것으로 이해되므로 우리가 진리를 알고자 할 때 관념을 소환하면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본유 관념을 가지고 있다면 이성의 전개 결과는 연역적 진리의 체계가 된다. 오직 이성만으로 진리의 세계 구축이 가능하므로 경험은 무시될 수밖에 없다.
데카르트는 <성찰>에서 연역으로 진리를 도출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서술한다. 우선 모든 것을 의심함으로 이성적으로 확실한 것을 찾아낸다. 이는 실재에 대한 의문이며 만약 의심하여 단 하나라도 아닌 듯하면 또 의심하는 식을 반복한다. 그의 주장은 일상에서 확실하게 여겨지는 것들도 실은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감각을 이용한 물체에 대한 인식은 물체의 속성이 시시때때로 변하기 때문에 보편적 속성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계속 의심함으로써 보편성을 띤 속성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 한다. 그런데 의심으로 모든 감각적 대상은 배제되더라도 코기토(나는 생각한다) 하는 자신의 현존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신의 현존 또한 그러하므로 신의 현존을 진리의 원천으로 규정한다. 그러므로 신으로부터 받은 지성이 명약관화하게 판단하는 것은 참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데카르트의 의심은 매우 체계적이어서 적어도 어떠한 결론을 끌어내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코기토 하는 나는 물질이 제외되고 정신만으로 현존함을 아는 상태이다. 그래서 상상된 것은 참이 아니라도 상상력은 현존이며 사유의 한 부분으로서 비록 실체가 아닐지라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으로 정신이 물질과 분리될 수 있다고 보았다. 물체에 대한 인식은 단지 감각이나 상상력이 아니고 이해하여 지각되므로 정신이 인증되는 것은 자명하다고 생각했다. 물체의 보편적 속성은 연장, 연장적 사물의 형태, 양, 존재 장소, 지속되는 시간뿐이다. 연장 등 위에 제시한 것들 외에 물체를 규정짓는 다른 어떤 것도 물체의 속성이 아니다.
데카르트는 정신과 물질의 실체를 구분한 이원론을 주장하지만, 스피노자는 오직 신 또는 자연이라 불릴 수 있는 하나의 실체만을 인정하여 일원론의 입장을 견지한다. 이 실체는 사고와 연장성의 속성을 모두 가져 정신은 사고의 속성에서 본 인간이며 육체는 연장성이라는 속성에서 본 인간이다. 그러므로 정신과 육체는 결코 분리될 수 없으므로 인간의 정신은 인간의 육체에 관한 관념에 불과하다. 그에 비해 라이프니츠는 오직 정신적인 속성만을 가지는 무한히 많은 실체인 단자(모나드)를 주장하므로 다원론을 펼친다. 모든 복합적인 것은 단순한 것(단자)들로 구성된다. 신이 최고의 단자이고 모든 단자는 역동적이고 비물질적 활동의 중심점이 되어 각 단자의 모든 변화는 신의 예정된 조화 속에 있다.
여기서 이성만으로 판단한 것이 진리인지는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설령 수학적 체계를 철학에 적용하여 객관적 결과를 얻고자 하는 경우에도 원리적으로 올바른 방법이 적용되었을 때만 가능하다. 연역 체계의 으뜸 원리가 참일 때만 결과를 참으로 준다. 데카르트는 신이 계시한 진리들이 존재한다는 확고한 믿음에 의존했다. 어떤 것이 참인지 알기 위해서 충분히 명석판명하게 지각하고 있지 않을 때는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명석판명하게 지각한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데카르트는 신을 끌어들여 명석판명하게 인식된 것은 참임을 주장한다. 그의 사유 방식, 즉, 자신의 현존, 신의 현존, 신의 절대성, 그러므로 명석판명한 이성적 유추가 참이라는 논리는 신의 현존을 제일 원리로써 내세운 결과이다. 데카르트가 안셀무스나 아퀴나스처럼 방법은 다르나 신 존재 증명을 한 것이 이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현존이 참인지 증명한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절차적 방법을 통해 판단한 참이라는 자연현상에 대한 그의 설명은 거의 모두 틀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문제는 명확해진다.
이처럼 이성에 의한 진리 판명이 올바르냐는 것은 논쟁거리가 되며, 경험을 무시한 진리 체계의 구축이 과연 맞는 방법이냐는 의문 또한 제기된다. 더군다나 합리주의가 추구하는 것이 올바로 적용된다면 오직 하나의 관점이어야 할 정신과 물질 문제는 이원론, 일원론 및 다원론으로 쪼개져 있다. 이 문제들은 이성만을 추구하여 얻고자 하는 무엇에 수정을 가할 필요가 있음을 함의한다. 그런데도 데카르트가 내세운 철학의 방법론은 철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의 방법론은 이성주의이자 관념론이다. 인간은 사유하는 실체로서 이성의 역할은 중요하며 코기토 하는 인간을 내세워 사물은 인간 자신이 만든 관념에 의존함을 주장했다. 이성주의와 관념론은 후대 철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또 한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그의 과학에 관한 업적이다. 설령 그의 과학이 거의 모두 틀렸다고 할지라도 데카르트가 새로운 과학의 선구자 역할을 한 것은 분명히 사실이다. 그가 제안한 새로운 과학은 전톤적인 아리스토텔레스와 갈레노스의 이론에 대한 대안으로 기계론에 입각한 이론을 제안했다. 그의 자연철학은 코페르니쿠스 이래 제기된 모든 논쟁을 포함했을 뿐만이 아니라 과학에 거의 모든 현상에 대해 포괄적으로 새로운 설명을 제시하였다. 즉, 구시대의 자연과학을 완전히 밀어내어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데카르트의 자연과학이 옳고 그름을 떠나, 그가 과학혁명에 쐐기를 박은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