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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Mar 31. 2021

순수이성

철학 혁명

칸트의 인식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직관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라는 그의 말이다. 사람이 무엇을 인식하는 것은 어떤 대상을 오감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여, 어떤 개념이 형성되어 인식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인식을 위해서 직관에 관여하는 감성과 개념에 관여하는 오성(또는 지성. understanding)은 서로에게 상호보완적이다. 인간이 어떻게 인식에 이르게 되는가를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밝힌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이성이 할 수 있는 한계 또한 분명히 규정짓는다. 순수이성은 합리론과 경험론에서 합당한 부분을 취하므로 둘이 가지는 모순을 해결하지만, 이들의 결과를 단순하게 종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철학의 새로운 접근 방식인 비판철학의 문을 열었다. 


칸트는 원래 이성이 세계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이 진리라고 주장하며, 경험은 불필요하다는 라이프니츠 합리주의에 기울어 있었다. 그러나 이성이 경험 없이 확실한 인식을 제공할 능력이 있는지의 선행 논증이 없는 합리주의의 독단적 태도에는 의문을 품었다. 형이상학의 독단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 것은 인간 이성이 수학의 체계처럼 한 관념에서 다른 관념으로 이동하면서 실재를 알 수 있다는 그들의 사상체계 안에서 도달했던 결론의 다양성이다. 진리는 유일하므로 이성주의자들의 주장이 올바르다면 그들의 결과는 일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단적 합리주의는 초감성을 허용하므로 형이상학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믿을 게 되지 못했다. 


다른 한편으로 인식은 모두 감성에 의해 미리 주어진다고 주장하는 경험주의는 경험이 불가한 형이상학은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 경험주의를 더욱더 끌고 나가 회의주의로 발전시킨 흄의 결론은 귀납적 추론을 부정하지만, 과학이 인과성과 귀납적 추론에 근거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칸트는 과학의 진보를 경탄해 마지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철학에 대해서는 철학의 정당성에 심각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합리론과 경험론의 회의주의 모두 자연과학 체계와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였다. 


우리가 올바른 과학 체계를 가지게 된 이상 과학의 정확성과 인식의 관계를 철학에서 논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이와 관련하여 과학의 진보에 커다란 찬사를 아끼지 않은 칸트일지라도 과학 자체에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우선 인간 인식의 무엇이 세계를 잘 설명하는 자연과학을 가능하게 만드는지 궁금했다. 과학적 인식을 어떻게 정당화하느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과학이 세상을 잘 설명한다면 인간 의지나 신에 관한 관념 또한 과학적 방법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아닌지였다. 


칸트 사상의 발전에 흄의 회의주의가 전환점이 되었다. 칸트는 회의주의적 경험론에서 경험을 초월한 어떠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며 합리주의의 독단론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다른 한편으로 회의주의의 자연과학조차 의심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거부했다. 형이상학이 인간 이성의 한계로 말미암아 가능치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순수수학이나 순수과학은 명징한 학으로서는 존재할 것이라는데 의심치 않았다. 그러므로 자신의 과업을 인간 이성을 정확히 파악하여 그 한계를 규정하므로 수학과 과학이 어떻게 가능한지 보이고, 이러한 규정을 형이상학에 적용하여 형이상학이 자연과학과 같은 지식에 속하는지를 묻고자 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그의 사명은 자연과학에서의 혁명과 같은 것을 철학에서도 이루고자 함이었는데 이러한 방법이 그의 순수이성비판에 묻어있다. 


시작점은 경험과 관계없이 인간의 오성과 이성이 무엇을 얼마나 알 수 있는가이다. 합리주의처럼 이성이 무조건 할 수 있다고 우기기 전에 인간 이성이 형이상학을 탐구할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먼저 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식이 가장 먼저 시작되는 지점은 감성(감각)이다. 이 단계에서 칸트는 합리주의의 본유관념과 경험주의의 경험 또한 받아들인다. 칸트의 감성론은 인간의 감성이 받아들이는 경험의 근저에 선천적으로 알고 있는 개념이 있다는 것이 요지이다. 외부로부터 대상이 인간 오감으로 들어온 것에 대해 선천적으로 알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형식이 덧붙여져 직관이 제공되어 대상을 구별하는 초기 단계인 어떤 재료가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감성의 역할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어떤 것을 확실히 구별해내기 위한 밑 재료를 만드는 일로써 이때의 정보는 다중적이고 규정적이 아니다. 


이렇게 얻어진 정보는 오성에 의해서 어떤 대상으로 특정되는 개념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정확히 무엇이고 그 무엇이 어떻다는 판단을 위해 작용하는 오성 또한 선천적 형식을 가지고 있어 이러한 형식 하에 최종 판단이 이루어진다. 오성에서의 선천적 형식은 분량, 성질, 관계 및 양상이다. 분량은 하나 또는 다수이고 성질은 긍정적이나 부정적 진술을 의미한다. 관계의 판단은 주어와 술어의 관계이거나 원인과 결과이고 양상에 관한 판단은 어떤 것이 가능한지 또는 불가능한지를 생각한다. 모두 12개 형식의 범주는 오성에 의해 규정되는 사물 존재의 방식이다. 인간 오감으로 들어오는 외부의 대상의 순수 개념 획득은 감성 및 오성의 단순 형식들인 공간, 시간 및 범주를 서로 결합한 결과로 이루어진다. 


칸트는 감성의 규칙 학문을 선험적 감성론, 오성 이상의 규칙 학문을 통틀어 선험적 논리학으로 칭하고 그 아래 오성의 영역을 다룬 학문인 선험적 분석론과 추리 능력의 이성을 다룬 선험적 변증론으로 나누고 있다. 분석론에서 오성의 범주만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개개인의 사고가 주관적이므로 범주로 판단하는 과정에서 범주가 객관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증명 방법은 선험적 연역으로 감각기관, 구상력과 통각이라는 개념으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세 개의 종합 활동을 통해 객관적 타당성을 증명한다. 그뿐만 아니라 감성과 오성이 그런 구조적 형식을 가지고 있다면 이 둘을 연결하는 매개자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감성과 오성의 메신저가 무엇인지 또한 밝힌다.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구상력이 산출하는 도식의 개념을 내세우는데 칸트는 도식을 통해 오성과 감성의 만남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이성은 추리 능력으로 선험적 변증론에서 다루는데, 굳이 변증론으로 다루는 이유는 감성과 오성을 거쳐 고난도의 추리를 통해 판단하는 이성의 능력 외에 이성은 경험이 없어도 어떤 것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 자아, 세계, 신 또는 영혼 같은 것들은 경험하지 않았는데 왜 인간 인식에 나타나는지도 넓은 의미의 이성의 추리 능력에 포함한다. 여하튼 칸트는 이성의 추리 능력에 의해 물 자체, 신, 영혼 같은 것을 생각하며 더욱더 깊이 생각하여 완벽한 진, 선, 미를 갈망하는 것을 인간 본성이라고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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