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타기 2일차
덜컥 자전거부터 사버렸다.
힘으로 무리하게 올라타다 종아리에 멍이 시퍼렇게 든 첫날을 보내고, 집 앞 10분 거리 슈퍼 다녀오기로 홀로 타기 1일 차를 거친 후 조금은 자전거 타기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며칠 후 대략 왕복으로 10킬로 정도 되는 거리를 남편과 2일 차 라이딩을 무사히 하고 나니 나도 자전거를 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 되었다. 그리고 알루미늄 자전거는 철 자전거와는 차원이 틀리다는 사실도 덩달아 알 수 있었다. 지난여름 서너 번 타다 만 따릉이의 그 묵직함이 나를 힘들게 했다면 내 첫 자전거 - 초보용 스팅어 100(삼천리)은 뒷바퀴에 날개라도 달려있는 듯 가볍고 날쌔다. 그렇다면 다른 라이딩 전문 자전거들은 로켓이라도 달려있는 느낌일까. 정말 궁금하고 욕심난다. 벌써부터.
설날 아침 펑펑 내리는 눈을 보며 당분간 자전거는 방치되겠구나 생각했으나, 눈이 내린 지 3일 후 오후에 무작정 나가본 한강 자전거 종주길은 의외로 안전하고 상쾌한 기분이 들게 하기 충분했다. 그렇게 홀로 타기 2일 차 코스를 한강 자전거 길로 무작정 정하고 나가 봤는데 웬걸 너무 신나. 재밌어. 왜 진작 안 했나 싶다.
44살을 기점으로 나는 이제 드디어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 큰 사고 없이 이렇게 즐겁게 타는 날들이 이어진다면 앞으로 한 20년은 큰 무리 없이 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기분이지만 아직 그런 생각은 너무 시기상조지. 가끔 유튜브나 인터넷 기사에 60대나 70대에 자전거를 처음 배워 동호회 최고령 언니가 되었다더라 등의 기사를 보면 얼마나 부럽던지. 그리고 나는 그 언젠가의 나이에 그렇게 할 수 있으려나 초초한 마음이 들곤 했다. 남들 다 타는 자전거 왜 나는 못 탈까 종종 비참하고 초라했거든. 그런데 생각보다 가능한 날이 일찍 와버려서 너무 기쁘고 즐겁고 스스로 대견하기까지 하다.
아무튼 홀로 라이딩 2일 차 코스는 미사역 근처의 집부터 스타필드 하남까지 왕복으로 다녀오기. 준비물은 라이딩 전 집 앞에서 아이스 라테 한잔 미리 마시기. 대략 왕복 10킬로 정도의 거리다. 지도로 검색했을 때, 자전거로 편도 20분 거리로 나왔지만 왕초보에 쉬엄쉬엄 놀며 다녀오니 왕복 2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얼어붙은 한강 위에 하얗게 내린 눈과 그 뒤로 시원시원 펼쳐지는 산맥들을 바라보며 가는 재미도 있고, 또 한강 변을 따라 무심히 방치된 누렇게 뜬 수풀들과 겨울 햇살에 반사되어 바다처럼 새파란 한강의 아름다운 색감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있다. 단지 겨울 강바람이 매서워 머리가 띵하게 울려온다는 점이 그나마 찾아본 힘든 점이다. 그것 마저도 스스로 신나게 굴러 앞으로 갈 수 있다는 즐거움에 비하면 충분히 견딜만한 단점이다.
눈 내린 한강에 오롯이 앉아 쉬는 새들의 무리며, 산책로에는 낑낑대며 앞으로 내달리고 싶어 하는 애완견의 몸부림들이 끊임없이 눈을 즐겁게 한다. 잔잔한 일상의 풍경을 여유롭게 구경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근심 걱정은 내 뒤로 저만치 속도가 줄어들며 상쾌해지는 나를 따라오지 못한다. 중간중간 쉬어가며 핸드폰으로 눈에 띄는 즐겁고 아름다운 것들을 담아보긴 하지만 역시 사진으론 그 감상을 다 담아낼 수가 없다. 공기와 소리 그리고 찰나의 느낌들은 그 순간에 살아있다 사라지는 것들이다. 다시는 되감아 똑같이 느낄 수도 어디에 기록할 수도 없는 찰나의 순간들. 그 눈부신 순간들이 자전거 타기와 함께 더 풍요롭고 다채로워지길 바란다.
욕심은 나는데 2시간가량 타고나니 다리도 팔도 2시간 전처럼 마음 가는 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느낌이 들어 가던길을 돌아 집으로 향한다. 마음속 아쉬움을 가득 안고 말이다. 또 내일 혹은 멀지 않은 날에 제3차 제4차로 이어질 라이딩이겠지만 초보 2일 차의 기분은 오늘이 아니면 없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비비안 리가 영화에서 읊었던 대사처럼 내일은 내일의 라이딩이 있겠지. 오늘의 즐거웠던 순간들은 마음속에 잘 정리해 두고 또 새로이 즐거울 다음의 라이딩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