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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gerun Feb 04. 2022

아버지의 자전거

 라이딩 3차

본가 베란다에는 녹이 슬어 본래의 청록색이 다 빛이 바래버린 20살도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 아버지가 생전에 즐겨타시던 자전거는 주인도 없이 그 긴 시간을 우리 식구와 함께 했다. 가끔 베란다에 들렸을  괜히 자전거 경적을 눌러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골목 끝부터 느릿느릿 자전거를 타며 다가오시던 장면이 떠오른다.  주변을 오고   난데없이 따릉! 하는 소리에 놀라 고개 돌려보면 장난기 많던 아버지가 웃으며 다가오시곤 했다.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는 그리운 기억들이다.


나는 그 자전거가 정확히 언제 어떻게 우리  식구가 되었는지 모를뿐더러 한 번도 올라탄 기억이 없다. 분명 아버지라면 한두  혹은 여러  태워주신다고 권하셨을 테지만 사춘기가 한창이던 소녀는  손길을  번도 잡은 적이 없었던  같다. 지금이라면 당장에 올라타고 어디든 가시고 싶은  따라갈 텐데 말이다. 인생은 타이밍이라더니 참 얄궂은 타이밍이다. 아버지가  내밀어 주실 때는 의미를 알지 못했으며, 이제 아무리   모두 내밀어 본들 아버지의 부재만이 존재하는 허공에 휘적거릴 뿐이다.


오늘도 한강 자전거길을 힘차게 달렸다. 어제보다 겨울바람은  거셌으며 피곤함이 남아있는 다리는 시작부터 묵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쨌거나 오늘도 같은 길을 달렸으며 무사히 돌아왔다. 달리는 내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화두는 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유산이었다. 아버지는 짧다면 짧은 당신의 인생을 정말로 열심히 살다 가셨다. 한평생 교사로 근무하시면서도  새로운 것들에 도전하셨고 그에 따르는 공부를 일상으로 하셨다. 또한 취미도 참으로 많아 나열하려면 한참이 걸린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열심히 사시는 부모님을 보며 조금은 게을러도 되는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곤 했다.  그렇게 뭔가에 도전하라고 하실까.  새로운 공부를 해보고, 새로운 곳에 가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라고 하실까. 남들도 나처럼 게으르면 내가 부지런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어리석은 생각도 종종 했다. 부모님의 가장  유산이라면 그렇게 열심히 당신들의 인생을 살아내시며 오빠와 나에게 바른 삶의 본보기를 몸소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는  지금의 자신에서  발짝 혹은 조금이라도 앞으로 전진해보라고 격려해주셨다.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도 남을 이겨내라던가 다른  자식은 어떻다더라는 비교성 멘트를 하시지 않으셨다. 언제나 경쟁의 대상은 과거의 혹은 현재의 나이며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성장이라는 믿음을 주셨다.


  타지 않은 자전거지만 자전거 타기도 인생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의  다리로 자전거 바퀴를 굴려 스스로 정한 길을  뿐이다. 같은 길을 가는 타인  누군가는 나를 앞서  것이고 누군가는 내가 앞서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조바심을 낼 필요도 기를 쓰고 앞질러 갈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저 각자 자신의 자전거를 탈뿐이다. (여기서 자전거 경주 같은 대회는 제외하고 얘기하겠다.) 꾸준히 타며 다리 근육이 탄탄해지면  힘을 내어 빨리   있을 것이고 노련미도 생길 것이다. 또한 자신의 향상된 실력에 맞는 자전거도 구입해 새로운 기록을 세우는 즐거움도 누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경쟁이고 남을 이겨내어  삶의 의미를 찾는 다면 아마도  자전거 타기는 평생 즐거울  없을 것이다. 자신을 보지 못하고 남만 쳐다보고 있으니까. 그리고 자신 주변에  있는 즐거움을 알아채지 못할 테니 말이다.


아버지는 당신만의 자전거를 타시듯 아버지만의 인생을 살아 내셨고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은 날로 커진다. 조금 철이 드는 걸까. 그리고 이제는   같다.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자전거는 쉽게 녹슬어 버린다. 아버지가 지금 계신다면 초록 자전거는 아마 조금 낡기는 했겠지만 전히 잘 굴러갈 것이다. 녹슬지 않는 자전거로 계속 전진해야겠다. 비와 와도 눈이 와도 바퀴가 펑크가 나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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