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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gerun Feb 06. 2022

성장영화 속 주인공처럼 자전거 타기

라이딩 4차

성장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이제 어린이 티를 막 벗어날 무렵의 소년들이 대충 후줄근한 티셔츠를 걸치고 우르르 등장해 좌충우돌 사고 친 후, 한 뼘씩 성장하는 영화는 언제 봐도 훈훈하고 아련한 기분이 들게 한다. E.T. 나 스탠바이미류의 성장 영화들에 단골로 등장하는 씬들 중 늘 유독 눈길을 끈 것은 미국 교외 주택 단지 내를 자전거로 누비고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여기저기서 하나 둘 모여들었다 땀에 찌든 이마를 쓱 닦으며 흩어지곤 하는 자전거 타는 소년들을 보는 게 왠지 어릴 때부터 참 좋았다. 하지만 정작 44살이 되도록 내 자전거도 없고 제대로 탈 줄도 몰랐다. 어린 시절 함께 놀다 자전거를 타고 내달려 가던 친구들을 우두커니 서서 보냈던 시간도 생각이 난다. 그래서 더 그 자전거 타는 소년들이 부럽고 좋아 보였는지 모른다. 뭔가 말로 다 묘사할 수 없는 아련한 낭만 같은 게 있다. 아마도 인생의 한때로 지나가 버린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이랄까.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을 거쳐 미사 경정공원을 한 바퀴 돌아 장을 봐왔다. 한 시간 반 외출에 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니?! 득템이다. 미사 신도시에는 이제 일 년 조금 넘게 살았는데 자전거로 돌아보니 또 새롭다. 걸어가거나 마을버스를 타고 다닐 때는 귀찮거나 불편하던 거리감이 확 줄어든 느낌이다. 드디어 나에게도 성장영화 속 아이들처럼 온 동네를 자전거 타고 누비고 다니는 날이 도래했다. 도서관 가는 길에는 신도시에 한두 구역쯤은 흔히 조성되어 있는 전원주택단지가 있는데, 평소에도 그 구역을 지나쳐 가는걸 참 좋아한다. 그 많은 주택을 지나오면서도 마주치는 사람은 많아야 한두 명이다. 사람 한 명 차 한 대 마주치지 않은 날도 많다. 그곳은 왠지 영화 속 아이들이 내달리던, 시간이 멈춘것 같던, 그 주택단지들을 연상케하기 때문일까. 오늘 자전거로 쌩쌩 지나쳐 가보니 44살에서 14살이 된 기분이 든다. 자전거 타기가 젊은 기분이 들게 하는건 확실한 것 같다.


거북이 배낭에 빌린 책 두 권을 넣고 못내 아쉬워 근처의 미사 경정공원으로 들어가 봤다. 이곳은 평상시에는 경기 같은 것이 없기에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곳이다. 거대한 직사각형 인공 호수 주변으로 산책로가 잘 구성되어 있다. 한 바퀴 돌면 5킬로라고 하니 제법 운동이 된다. 아직은 여전한 겨울 칼바람을 역풍으로 맞으며 공원길을 돌다 보니 옆에 강아지 산책시키고 있는 사람보다 속도가 느리다. 비틀거리며 다 돌고 나니 허벅지는 아무 감각이 없어가고 자전거는 더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지만 뿌듯하다. 자전거 타기로 얻어지는 기쁨이 따로 또 있다는 것이 새롭고 새로움이 성장을 돕는다. 나의 성장을 함께할 자전거에게 이름을 지어줘야겠다. 이름 추천해주실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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