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gerun Feb 09. 2022

주저하다가는 아무것도 못할까봐

5번째지만 5번째는 아닌 

자린이는 맞지만 사실 자전거 타기가 인생에 처음은 아니다. 20년 전쯤의 20대 초반에 나는 친구 앞에서 죽을 뻔했다. 혈기 넘치던 그 시절 일산 호수공원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에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러 갔다. 아마도 이전에 한두 번 타봤겠지만 그날처럼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탄 건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밌어서 공원 내의 자전거 도로를 무턱대고 달렸던 것 같다. 하지만 겁도 없고 요령도 없던 나는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속도 조절을 한다는 게 한 번에 있는 힘껏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 순간 문득 공기 속을 날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급정거한 자전거에서 무게를 잃고 앞으로 붕 날아 떨어졌다. 마지막 기억은 오른쪽 빰에 차갑게 닿던 아스팔트의 서늘한 촉감이었는데 그 뒤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없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눈을 떠보니 도로 위에 널브러져 있는 나를 보며 일어나라고 소리치는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아 나 안 죽었나? 싶을 만큼 날아가 넘어질 때의 기억이 느릿느릿하다. 친구는 얼굴을 처박고 한참을 눈뜨지 못하는 나를 보며 정말 죽은 게 아닐까 사색이 되었다 하니 꽤나 심하게 굴렀던 것 같다. 


한여름 옷차림이라 온몸 군데군데 안 까진 곳이 없고 사방에 피가 흘렀다. 수호천사라도 있었는지 어디 한 군데 부러진 곳 없이 멀쩡히 일어나 급히 공원관리실로 갔는데, 들어오는 나를 보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달려와 물어볼 정도로 꼴이 엉망이었다. 오른쪽 얼굴은 이마 빰 할 것 없이 살갗이 밀렸는데 덕지덕지 거즈를 붙여놓은 것이 우스웠다. 그날은 친구의 남자 친구를 처음 소개받는 날이었는데 첫인상이 아주 볼품없었겠다. 그날 이후로 마음 한구석에 '나는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이다. 속도 조절 같은 것에 나는 재주가 없다.'는 생각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나는 몸치다와 모두를 위해 탈것을 조심해야 하는 사람이다'의 자기 암시는 오래도록 꾸준히 내 도전을 가로막았으며 바퀴 달린 것들은 일단 거부부터 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공포심은 고스란히 운전에도 영향을 끼쳐 무사고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운전대를 잡는 것에 겁부터 먹게 했다. 그렇게 나는 자동차 자전거등의 탈것들과 거리를 두고 뚜벅이의 생을 당연히 여기며 지금껏 살았다. 


오늘은 미사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 암사대교 근처까지 한강 자전거길을 타고 돌아왔는데 또 다른 공포와 마주하자 회피하는 자신을 만났다. 고덕동을 지나 암사대교에 임박할 쯤에 조금은 살벌한 언덕이 있는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낑낑대며 올라갈 정도의 꽤 가파른 언덕이다. 다들 어떻게든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허벅지가 터져라 올라가고 있는데 나는 그 언덕에서 서너 번 멈추어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다 다시 타다가를 반복했다. 한계가 찾아왔다 싶으면 일단 몸을 사려버리는 것이다. 비록 자전거를 타게는 되었지만 초보라는 핑계로 조금만 올라가기 힘든 언덕이 나오면 냉큼 내려 끌고 걸어가거나 엘리베이터를 타버리고 만다. 아마 쉽게 자전거에서 내려버리는 만큼 내 허벅지는 단련되지 않을 것이고 그만큼 자전거 타는 실력은 늘지 않을 것이 뻔하다. 그리고는 저 사람은 오래 탔으니 잘 타지. 혹은 저 사람 자전거는 좋은 거니 잘 타지. 라며 핑계를 댈 테지.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이라는 다큐영화가 있다. 희귀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20대의 청년은 항암치료를 받다가 불현듯 프랑스로 건너가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자전거 경주에 임한다. 그 열정에 감동받고 인생의 마지막에 모든 것을 불태우고자 하는 그가 너무 안쓰러워 보는 내내 마음이 미어진다. 한참 혈기가 왕성한 나이 라선 지 화면상에 자전거를 타고 산을 오르내리는 그는 암환자라곤 믿기 어렵다. 숙소에 들어와 주치의가 그만하라고 만류하는 장면이 나오면 그때서야 그가 실제로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 아찔해져 영화를 다 보기가 힘들 정도다. 과연 그가 시한부 인생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까지 무리했을까 아니면 그는 원래 그렇게 인생에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었을까. 어떤 쪽이라도 나는 그의 인생을 응원했으며 존경한다. 


인생의 많은 기회들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경험해보라고 손을 뻗는데, 결국 그것들은 스스로가 도전해 온몸으로 부딪혀 익혀가고 배워가는 만큼 내 것이 된다. 혹은 내 것이 아닌 경우는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해보지 않고 나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자전거 타기처럼 스스로 움츠려 들어 미리 단념한 인생의 즐거움들이 얼마나 많을까. 해볼까 말까 고민하고 주저할 동안 흘러간 시간은 또 얼마나 많을까.'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버나드 쇼의 유명한 묘비명처럼 주저하다 보내는 인생의 시간은 너무도 짧고 삶은 유한하다. 아무리 지나간 시간을 애석해 한들 단 일초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또 앞으로 주어진 운명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전혀 알 길이 없기에 주저하는 대신 즐겁게 도전하고 한 발작씩 걸어 나가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장영화 속 주인공처럼 자전거 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