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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gerun Feb 08. 2022

긴자 람브르 (Cafe De L'ambre)

Coffee Only

서늘한 바람이 부는 12월 말. 우리는 도쿄의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예상치 않게 생각보다 추웠던 그날의 아침. 여행자의 부지런함으로 너무 일찍 와버린 긴자 거리는 아직 문 열어 우리를 반기는 곳이 많지 않았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긴자 어딘가의 맛집은 아직 문 열 기미가 없어 정처 없이 거리의 상점들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세련되게 반짝이던 건물들 사이, 저 멀리 오래된 나무틀 특유의 윤기가 나는 낡은 문이 보여 본능적으로 끌려 가보았다. 그곳 또한 여전히 개시하지 않은 카페였는데 왠지 오래된 노포가 마음에 들어 다시 방문하기로 하고 이른 점심부터 먹기로 했다.


오픈 시간에 맞춰 다시 갔지만 이미 카페 안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만석이었다. 밖에서 조금 기다린 후에야 들어간 그곳은 수십 년을 역행하는 느낌의 오래된 인테리어를 그래도 두었는데 반들거리게  관리해 두어 멋이 났다. 100 정도 되었다고 하니 오랜 시간이 켜켜이 쌓여 내뿜는 에너지가 남달랐다. 개미굴처럼 닥지닥지 붙은 탁자 사이에 자리를 잡아 앉고 기본 커피를 주문했다. 손에 들려진 메뉴는 각종   없는 커피 종류와 원두 이름들로 빼곡했는데 나는  당시 커피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할뿐더러  마시지도 못했다. 카페의, 클래식한 다방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같은, 분위기로 봤을 때는 왠지 왼손에 담배 개피를 느슨히 늘어뜨리고 오른손으론 조금은 떨리듯 커피잔을 들어 올려 홀짝거려야 할거 같은데 말이다. 마치  자무쉬의 흑백 영화 '커피와 담배' 나오는 캐릭터들처럼 어딘가는 조금 삐딱하게. 그리고 탁자 위엔 쓰다만 원고지있어야   같은 뭔가 오묘하고 독특한 무드가 카페 안의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분위기에 취해보려 했으나 생각보다 그다지 감동적이진 않은  같은 커피를 마시며 두리번거리다 눈길이  곳은  멀리 카운터 자리였다. 그곳엔 엄숙한 표정을  중년의 바리스타가 너무나 진지하게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정지 동작처럼 아주 느리고 느리게 주전자의 물을 아래로 따르고 있었는데 보는 내내 속이 답답할 지경이었다. 이미 평소 마시지 않던 커피 한잔에 속이 쓰려오고 있었지만  느린 물줄기의 정체를 직접 확인하고 경험하고 싶었다.  잔의 커피를  마시고 웨이터를 불러 우리는  카운터에  앉아 다시 마시고 싶다 했고 흔쾌히 자리를 옮길  있었다.


그가 다시 건네준 메뉴는 여전히   없는 메뉴들로 빽빽했지만  커피 메뉴의 숲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웨이터를 다시 불러 정말 맛있고 자신 있는 메뉴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는 두세 가지의 메뉴를 추천하며 아주 자세히 각각의 커피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는데 그중 가장 생경하고 인상 깊었던 것은 숙성이었다. 보통 커피 원두의 신선도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정도를 상식으로 알고 있었는데,  추천 원두는 10년을 숙성했다는  아닌가. 맘속으로 그럼 썩은  아닌가 이거 믿어도 되나 싶었다. 하지만  자신감 넘치는 눈빛에 속아보고 싶었다.


그렇게 주문한 원두의 이름은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그 커피 한잔을 경험하며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커피는 이제껏 알던 커피의 맛이 결코 아니었는데, 이건 그냥 커피를 넘어 다른 그 무엇인가 였다. 그리고 융드립. 10년 숙성한 원두는 장인의 손을 거쳐 융드립이라는 방식으로 한 방울 한 방울 추출되었다. 그 음료 한잔은 마치 걸쭉한 죽을 (느낌상으로) 먹는 듯 묵직하고 혀끝에서는 너무도 다양한 맛이 무지개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정말 말로 다 표현을 할 수 없을 만큼 놀란 나는 감동적인 맛에 놀라 가슴이 뛰는지 두 잔째의 카페인에 가슴이 뛰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 한잔의 커피. 그 순간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나는 그 맛을 한동안 잊지 못해, 그 놀라웠던 감각을 다시 느끼고 싶어 쓰린 위장을 달래 가며 수많은 카페들을 정처 없이 헤매고 다녔다. 그리고 아직 다시 만나지 못했다. 제2의 커피를. 어쩌면 영원히 없을지도 모르겠다. 첫 경험은 다시 오지 않으니까. 그리고 커피를 향한 영원한 짝사랑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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