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gerun Feb 19. 2022

속아주고 싶은 마음은 옳은 걸까

누구를 위한 거짓인가

횡단보도 한편에  트럭이 있었어요. 알록달록 화사한 봄빛에 이끌려 평소 사지 않는   송이를 덥석 사들고 왔죠. 트럭에 펼쳐져있는 꽃잎들 상태를 보니 얘들이  시들시들 죽어가는 느낌이 들었지만, 내가 고른 꽃은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봉지에 싸여 있는 귀엽고 샛노란 폼폼이들이 유독 싱싱해 보였거든요. 그런데 이미 봤듯이, 기운 없던 꽃들 사이에서 나만 행운의 뽑기 운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집에 와서 꽃다발을 열어보니 잎사귀들이  먹은 한지처럼 흐물흐물 죽어가고 있더군요. 한두 이파리 띠어내다가 그냥 포기합니다. 이러다가 앙상한 줄기만 남겠다 싶어서요.


꽃을 본 순간 '사고 싶다'에 지배당한 마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생각하고 싶은 것에만 집중했던 거예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싶지 않았던 거죠. 당연히 이성적인 판단력은 일찍이 달나라로 갔고요. '속아주고 싶은 마음'이 상황을 주도한 거죠. 결론적으로 꽃은 내 손에 쥐게 되었지만, 다 시든 꽃에 제값을 치르고 뒤늦게 속상한 것은 접니다.


사람 관계 사이에서도 분명 잘못되었거나 아닌 걸 알아챘으면서도 종종 그냥 '속아 넘어가 줄 때'가 있죠. 번거로워서, 믿어 주고 싶어서 등등의 많은 이유에 따라 그냥 상황을 넘겨버리는 거예요.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셈이죠. 모든 상황을 다 파악하기도 쉽지 않고, 매번 깐깐하게 굴기도 힘드니까요.


그렇지만 지속적이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속아주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거짓으로 점철된 관계를 지속할수록, 당사자는 본인 스스로가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모를 거예요. 혹은 알고 있어도 이미 헤어 나올 수 없는 지경 일지 몰라요. 그럼 진창에 빠진 걸 알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관계가 거짓이 되고, 철석같이 믿었던 상대가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니라면 좌절감이 오죠. 그래도 그 상대를 내가 어떻게 할 도리는 없어요. 그건 그 사람의 선택과 의지의 문제니까요.


세상에서 본인의 의지로 바꿀  있는  자신뿐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앞으로는 현란한  색깔만 보지 말고, 꽃을 사고 싶다는 생각에 빠지기 전에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는 거예요. 값을 치르기 전에 정신을 차려보는 거죠. 그래도 어쩔  없이 시든 꽃을 사버린 경우도 있겠죠. 그럴 때는 이미 엎어진 상황에 속상해하주저앉지 말고요. 다시  일어나서 싱싱한 꽃을 보는 안목을 키우고 새로운 꽃을 사러 나가 보는 거예요. 이제 그만 시든 꽃에 속아주지 말고 믿을만한 싱싱한 꽃을 스스로 찾는 거예요. 씩씩하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