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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gerun Mar 25. 2022

늘 체스에서 질 수밖에 없는 까닭

뭣이 중헌데

장기. 바둑. 체스. 취미 있으신가요? 저는 없는 편이에요. 스스로 찾아 하지 않는 거 보면 관심이 적은 거겠죠. 이런 류의 게임? 스포츠?를 잘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심은 많아요. 멋지잖아요. 두뇌훈련을 많이 해야 가능하고, 전략적이어야 하고, 또 승부욕도 있어야 하는데, 좀 취약한 부분들이거든요.


마음만 있고 행동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체스를 배우게 됐어요. 그런데 항상 지는 겁니다. 초보니 늘 지는 게 당연한걸 수도 있는데, 어처구니없이 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 한번은 스승님에게 내 문제가 뭐냐고 게임을 진행하며 알려달라고 부탁했어요. 단번에 문제 파악이 되더군요. 정신없이 상대방이 어떻게 공격할지 어떤 말을 움직이려고 할지 집중해서 보는 중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움직이겠지 예상했던 몇 개의 말들을 놔두고 전혀 다른 말을 집어 들며 한마디 하더군요."지금 이 말로 여기 눈앞에 놓인 당신의 중요한 말 하나를 잡겠습니다. 보지 못한 겁니까" 아차. 상대방이 어떻게 움직 일지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위험에 그냥 노출되어 방치된 제 말들엔 신경을 전혀 안 쓰고 있더군요. 엄청 초보적이고 황당한 실수죠?


적이 공격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대부분 일단 자신의 성벽부터 점검하고 방어할 준비를 마치잖아요. 그러고 나서는 어떻게 상대방의 공격에 대처할지 그리고 무기는 잘 준비되어있는지 확인하고 보강하죠. 그런데 저의 체스 속 전쟁은, 성벽이 다 허물어져 가는데 언젠가 어디선가 공격할지도 모를 적의 말에 대해 몇 수 미리 생각한다고 (초보라 몇 수 앞을 볼 능력도 없습니다) 시간을 보내고 있었더라고요. 나름 전략적인 접근이라 생각했지만 게임에 매 순간 몰입하지 못한 거죠. 그러는 사이 적의 말은 한 번에 하나씩 제 말들을 해치워 나가며 전진했죠.


초보면서 뭐 그리 안달이 난 걸까요? 초보긴 하지만 그래도 요행으로 한번 정도는 어떻게 이겨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 같아요. 일단 좀 배우고 승리의 기쁨은 나중에 누려도 될 텐데 말이죠. 체스 천재도 아니고 애초에 관심도 별로 없던 게임인데 무슨 수로 난데없이 성실히 배우고 노력한 상대방을 이기겠어요. 승부욕에 그냥 한번 이겼다는 짜릿한 감정을 느껴보고 싶었어요. 설사 이겼다 한들 그건 실력도 아니고 우연에 의한 결과일 확률이 아주 높죠. 다음 판부터는 다시 내리 지니까요. 일단 본인이 왜 이겼는지 모를 확률도 높아서 다음 게임에 도움도 별로 안 됩니다. 어리석은 승부욕은 승부에 도움은커녕 스스로를 한보 후퇴시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일단 자신을 전략적으로 돌아볼 여유도 없어요. 그리고 아무리 승패가 나야 하는 게임이라지만, 게임 자체를 즐길 여유도 없이 자신의 울퉁불퉁한 감정과 먼저 싸워야 하니까요. 자신을 이기는 자가 타인도 이긴다는데 멘털이 약한 티가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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