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포진이 깨어있으라 하네
밀당을 잘하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데 꽤나 유용한 기술이라고들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밀고 당기는 것을 잘하면 매력적이라고도 하고요. 밀당의 기술은 어쩌면 지혜와 어느 정도 같은 영역에 속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걸 알려준 건 다름 아닌 피부병입니다. 2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한포진이라는 피부병과 동거하고 있어요. 잊을만하면 까꿍 하고 존재를 알리는 친하고 싶진 않은데 친해진 친구 같은 존재죠. 면역계 질환이라고 하니 조금만 면역이 떨어진다 싶으면 가장 먼저 알려주는 적신호예요. 그 덕에 미리 몸을 사리는 습관이 생겼으니 어쩌면 고마운 친구인 거죠.
대부분의 피부 질환이 그렇듯이 미칠듯한 가려움을 동반하는 한포진은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순식간에 영역을 넓혀갑니다. 깨알 같은 수포가 한두 개라도 터지면 한 이주 동안은 금이야 옥이야 피부 상태를 돌봐야 하죠. 오랜 시간 함께한 끝에 일단 생기면 무조건 건드리지 말자. 모른 척 놔두자. 가 응급처치술이 되었습니다. 모른 척 며칠 두면 스르륵 수포 주머니가 주저앉는 게 보여요. 그리고 그때부터 인내하는 시간입니다.
상처가 나면 연고도 바르고 밴드도 바르고 조심하는데, 딱지가 앉으면 조심하지 않고 막 뜯어 내고 싶잖아요. 상처는 뜯어내면 흉터가 나지만, 한포진 이 녀석은 우연히라도 주저앉은 수포 덩이들을 건드리면 그램린이 무한 증식하듯 미친 듯이 퍼집니다. 이전보다 더 폭주합니다. 더 크고 더 빠르게. 이제까지의 인내했던 시간이 무용지물이 되는 거죠. 신경이 쓰이지만 당기지 말고 끝까지 밀어내야 합니다. 마치 원래 아무 일도 없던 듯이 그냥 잊고 지내야 합니다. 다시 주저앉아 새살이 다 올라올 때까지.
한포진은 그래도 기승전결의 과정이라도 정해져 있으니 밀고 당겨야 할 때를 알아 다루기 쉬운 편이에요. 그것조차도 처음엔 몰랐지만 결국 경험의 시간이 쌓이니 나름의 지혜 같은 것이 생기더군요. 어떤 일을 행할 때나 혹은 인간관계를 맺을 때 밀어야 하는 때인지 당겨야 하는지 감이 안 올 때가 있죠. 수학 문제처럼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상황엔 그에 맞는 해결방안이 다르기에 난감합니다. 옳다고 생각될 때 좀 당겨도 보고, 옳지 않다 싶을 때 밀어내 보기도 하면서 적당한 선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정확히 그 경계를 알 길이 없으니까요. 답답하고 불안합니다.
그런데 최진석 교수는 저서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에서 '늘 경계에 서서 깨어있으라' 조언합니다. 경계에 서 있다는 것은 어쩌면 매 순간 불안과 초조 속에 존재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요. 생각해보면 괴로운 일입니다. 안정과 편안함이 주는 달콤함에 취하거나 포기하면 편한데 늘 어중간하게 서성여야 하다니요. 하지만 그럴 때 우리는 주체적이며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생각은 늘 날이 선 채 살아있고, 몸은 언제나 바로 세상에 반응하며 실천할 수 있도록 말이죠. 밀고 당기는 그 중간 어디쯤에 서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유연함을 가지고 말이죠. 그만큼 정체되지 않은 자세로 삶에 한발 가까이 다가설 수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마치 어느 순간 한포진 수포가 마구 늘어나는 일이 없도록 늘 몸 상태를 살피며 관리하듯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