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즐거우려면
두세 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양손을 파닥거리며 전력질주로 달려옵니다. 자전거로 공원을 가로질러 가는 중이었어요. 우리 사이의 간격은 한 3미터쯤 됐을까요. 물론 어린아이의 뒤뚱거리는 전속력이라 근처까지 오진 못했지만 가슴이 철렁합니다. 아이의 할아버지와 입을 모아 '안돼. 위험해 위험해' 급한 대로 말을 해보지만 전혀 들리는 거 같지 않더군요. 얼굴 한가득 환히 웃으며 다가오는 아이는 한 곳만 보고 있어요. 시선을 따라가 보니 자전거 바퀴가 굴러가는 게 장난감처럼 재밌어 보였나 봐요. 아이는 '재밌어 보이니 가보자'며 그 순간의 감정에 충실했겠죠. 아이를 만나기 전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 싶었어요. 어떤 생각에 골똘해 자전거가 그곳을 지나가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 되지 않았어요. 현재의 아이와 어딘가에 있던 제가 그곳에서 만났습니다.
저 아이처럼 현재에 집중하고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덜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요. 흐르는 세월과 함께, 어느샌가 '좋다'보다 좋을 것 같은 것을 떠올릴 때가 많더라고요. 'oo 하면 좋을 것 같다.'식의 전제조건도 붙고요. 그냥 단순히 좋다가 아니라 조건이 붙은 좋다인 거예요. 어릴 때의 좋다가 현재형이라면 나이 든 후의 좋다는 미래형이에요. 지금보다 더 나아지면 좋을 거라는 미래 가정법인 거죠. 그러다 보니 지금 좋은 감정도 뒤로 미루고 언젠가 더 좋을 거라는데 기대를 걸죠. 확실치 않은 미래에 더 신경을 쓰느라 지금을 자꾸 놓치네요.
현재에 존재하고 매 순간에 몰입하라고 하죠. 만약 설거지를 하고 있다면 설거지하는 행위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거예요. '아 설거지 힘들다. 언제 다하나. 티브이 보는 게 더 좋겠는데. 얼른 해치우고 티브이 보자' 생각하며 그릇을 닦는 게 아니라, 그릇을 깨끗이 닦는 그 행위 자체에만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라고 하죠. 설거지하는 행위에 대해 더 이상 아무 감정 소모가 없이 현재의 행위에 몰입하는 거예요. 온갖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은 어느새 사라지고, 마음도 함께 차분해져요. 그릇은 또 어느새 깨끗이 닦여있을 거고요. 잠시 동안 그 순간의 흐름에 그대로 올라타는 거예요. 고요하게. 명상하는 것처럼요. 어디 조용한 곳을 찾아가 가부좌를 틀고 할 필요도 없네요. 산만한 마음을 현재로. 지금으로 데려와 두발 단단히 세워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