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gerun Feb 26. 2022

로스터리 타쎄

커피와 수다로의 일탈

'아. 향 좋은 커피 한 모금만 마시고 싶다'. 며칠간 집 커피를 마침표 없이 이어 마시다 순간 발동이 걸렸다. 사실 스페셜티 커피라는 개념은 카페를 찾아다니다 알게 되었지만 자세히 관심 가져본 적은 없다. 어쩌다가 추천받아 마신 커피가 그날 기분이나 입맛에 따라 마음에 들면 아 나는 이런 종류의 커피를 좋아하는구나 정도의 관심이랄까. 그런데 유난히 그날따라 그 언젠가 마셨던 베리향이 짙었던 커피가 생각이 나더니, 마실수만 있다면 마시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동네 반경을 넓혀 인터넷을 뒤져보니 옆동네 서울에 핸드드립을 하는 로스터리 카페가 있단다. 왠지 거기 가면 그런 커피 한잔 얻어 마실 수 있을까 꿈에 부풀어 자전거에 올라탔다. 기억도 안 날 만큼 많은 횡단보도를 지나 한참만에 찾아간 아담한 카페는 '로스터리 타쎄'. 테이블은 없고 반들반들 잘 닦여 관리된 나무 바만 있다. 그리고 눈앞에 원두를 담은 유리병들이 단정히 줄지어 서있다.


처음 보는 원두 이름이 많아 사장님의 추천을 받아 주문했다. "저 언젠가 마신 커피가 좀 시고 블루베리향이 확 난 거 같은데... 쓰지는 않았으면 좋겠고요" 우물우물 원하는 바를 얘기하니 눈치 빠른 사장님이 바로 추천을 해주신다. "그렇다면 예가체프 고르보타를 드셔 보세요" 뭐라고 대꾸할 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뭘 알아야지 의견을 말하지. 예가체프는 들어봤지만 고르보타는 생소하다. 외우기도 힘든 단어다. 바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설렌다. 커피가 갈리고 정성스레 내려지는 과정을 정성스레 지켜본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역시 바리스타의 노련한 센스 덕에, 첫 모금에 먼길 달려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도록 기억에만 존재하던 베리향이 입으로 코로 확 퍼지니 계속 홀짝홀짝. 맛있는 커피가 급속도로 줄어들어 중간부터는 속도를 줄여본다. 천천히 마시다 보니 묵직했던 커피에 신맛이 가속도가 붙는다. 이렇게 까지 신걸 원한 건 아니었는데 처음에만 맛있는 건가 생각이 들 무렵, 신맛이 달콤한 맛과 하이파이브를 한다. 달콤함이 점점 진하게 올라오며 시큼함을 중화시킨다. 아니 이 조그마한 커피잔 안에 이렇게 다양한 맛이 담긴다고?! 역시 재밌다! 그리고 맛있다! 다 마시고 롤러코스터 같았던 커피맛을 신이 나 떠들어내니 바리스타는 연신 맞아요 맞아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진짜 맞게 얘기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웃으며 대화가 오고 간다. 짧지만 즐거운 교감이다.


단골이 되고 싶지만 멀다. 멀지만 또 어느 날 향 좋은 커피가 생각나면 자전거에 올라타겠지. 사장님의 커피 한잔 덕에 오늘 하루가 무척 즐거울 것 같다는 인사를 전하고 찬거리를 사러 마트로 향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