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은 커피를 타고
지난번 방문한 로스터리 타쎄에서 탄력을 받아 맛있는 커피에 대한 집착이 다시 시작됐다. 가끔 마시면 더 큰 감동이 전해지는 맛있는 커피 한잔. 이웃 작가님의 커피 탐방기를 읽고 나니 한 번씩 동네의 새로운 곳을 찾아 가보고 싶다는 욕망이 치솟는다. 분명 집 근처에도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곳이 있을 텐데 단지 공들여 찾아보지 않은 것 같다. 틈날 때 한 곳씩 찾아 네이버 지도에 깃발을 꽂아 둔다. 웬만하면 자전거로 갈 수 있지만 집과는 거리가 좀 되는, 그래서 운동도 되고 돌아올 때는 카페인 파워로 힘차게 돌아올 수 있는 그런 곳이면 더욱 좋겠다.
작정하고 찾아 가보는 동네 커피 맛집 첫 번째는 '젠틀 로스터스'. 자전거를 타고 한적한 상가촌을 뱅뱅 돌았다. 지도엔 나오는데 상호가 눈에 보이질 않으니 폐점했나 싶어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돌다 보니 반갑게도 상가 틈 사이로 빼꼼히 coffee 가 읽힌다. 오전 찬바람에 덜덜 떨다 카페 문을 여니 온기가 훅 느껴져 기분이 좋아진다. 차분한 톤의 색감과 나무 테이블로 꾸며진 공간의 첫인상은 편하고 안락했다. 크지 않은 내부가 아늑하게 느껴지는데, 통유리창 너머 야외에 노천 테이블이 여러 개 있어 앉을 곳은 넉넉했다. 봄가을에 야외석이 더욱 빛을 발할 것 같다. 밝은 톤의 파라솔이 화사해보여 쌀쌀한 날씨임에도 야외 테이블로 발길이 갔다.
핸드드립용으론 두 가지 원두 중에 고를 수 있고, 그밖에 다양한 종류의 커피가 있다. 날이 추우니 왠지 따뜻하고 고소한 커피가 마시고 싶어 플랫화이트를 시켰다. 주문을 하자 뜻밖의 멘트가 돌아온다. "오늘의 원두는 게이샤입니다."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응? 게이샤를 써서 플랫화이트를 만든다고요? 그거 비싼 고급 원두 아녔던가요?" 말로는 못하고 내심 속으로 놀란다. 보통 게이샤 원두로 내린 커피는 다른 원두보다 더 비싸게 팔리는 거 같던데. 4,200원 커피에 게이샤를 쓴다니 좀 의아했다.
노천 테이블에 앉아 있자니 사장님이 직접 커피를 가져다주신다. 살포시 테이블에 올려두고 가시는 모습에서 젠틀한 매너가 느껴진다. 한눈에 보기에도 큼지막한 커피잔에 오동통하니 복스럽게 올라간 폼이 보인다. 라테 아트도 예사롭지 않다. 디테일에 신경 쓴 정성이 느껴져 맛도 기대가 된다. 한입 크게 베어 물며 마시니 폼이 아주 쫀득하고 폭신하다. 커피도 매끈하게 들어가는데 너무 쓰지도 옅지도 않고 맛있다. 쌀쌀한 바람에 오들 거리며 마시느라 천천히 음미하지 못했지만 홀짝홀짝 아주 맛있게 마시게 된다. 우유맛이 거진 사라지고, 커피잔 바닥이 보일 때쯤 되니 라일락 같은 꽃향기가 확 퍼져 흠짓 놀랬다. 어머. 이거 뭐야. 커피인가 차인가 헷갈리기 시작한다. 뒤이어 입안에서는 과일 파티가 벌어진다. 무슨 과일이라고 꼭 집어 내진 못하겠는데 달콤 향긋 새콤하니 아주 즐겁다. 아. 이 맛있는걸 너무 훌떡 마신 거 같아 아쉬움이 든다. 이런 기대는 안 했는데 행운의 복권을 긁었다. 커피 운이 좋았다.
커피잔을 돌려드리며 커피가 참 맛있었다고 진심을 전하니 사장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오른다. 꽃 봉오리 터지듯 툭 터진 웃음꽃에 덩달아 나도 웃는다. 다음 방문 때는 어떤 맛의 원두로 마시게 될지 기대하며 자전거 헬멧을 쓴다. 그땐 좀 더 정성을 들여 여유롭게 마셔봐야겠다. 돌아오는 동안 마스크 속에서 꽃향기가 문득문득 올라와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봄기운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