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gerun Mar 06. 2022

너는 그냥 너였구나

창이던 왕이던 상관없어

아침 햇살이 환하게 비칠 무렵 화원에 갔습니다. 길가에 줄지어 꺼내놓은 식물들이 반짝반짝 매력을 발산하니 일단정지. 그냥 지나갈 수 있나요. 기웃기웃 줄지어선 화분들을 구경하고 있자니 각양각색 화사한 식물들이 너무 많아요. 도대체 뭐가 좋은지 혼돈이 오더군요. 어떤 식물이 오래 사는지. 관리가 편한 게 무언지. 시든 건지 건강한 건지는 구분도 안되고. 가격은 또 얼마인지. 머릿속 말풍선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니 이내 포기하고 싶어 집니다. 아. 그냥 갈까 못 고르겠다 싶어요.


그래도 미련이 남네요. 편한 마음으로 즐겨보자 싶어 마음속 질문들을 싹 지우고 다시 봅니다. 너는 통통해서 귀엽구나. 또 너는 길쭉하고 납작한 게 참 세련되게 생겼다. 저쪽 녀석은 장난스러운 외형이 보는 내내 늘 웃음이 나겠구나. 자세히 보니 어느 것 하나 같은 것 없이 개성이 있어 정신없이 빠져들어요. 보는 재미에 빠져 한참을 돌다 보니 문득 저쪽 상자 구석에서 조용히 부릅니다. 빼곡히 꽂아놓은 비슷비슷한 생김들 속, 유난히 마음이 가는 다육이 하나를 뽑아 들고 물었죠. "얘는 이름이 뭐예요?" 잠시 망설이시더니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하시네요. 화원 안을 둘러보고 오시더니 '창'이라 불린다 합니다. 창? 그래. 너 창이라고 하는구나. 반갑다. 나랑 함께 가자.


신문지에 둘둘 말아 들고 나온 작고 귀여운 식물을 보며 문득 이름은 왜 물었지. 무슨 의미가 있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창이면 어떻고 이름이 없다면 또 어떤가. 이미 너는 이렇게 존재하고 또 내 식구가 되었는데. 뭐라고 불리던 너는 그냥 너구나 싶더군요. 들판에 핀 이름 모를 들꽃의 이름을 알아야 더 아름다워 보이는 건 아니니까요. 이 앙증맞은 식물은 어디에 있건 이미 자신으로 잘 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새삼 놀랍습니다. 물을 주면 먹고 해가 뜨면 받고 자기 할 일을 잘하고 있으니 더욱 멋지네요. 조용히 주어진 모습으로 잘 살고 있어요. 뭐라고 부르던 상관도 안 하네요. 참 심플합니다. 싱싱하게 잘 살고 있는 2000원짜리 다육이에게 오늘도 한수 배우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