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gerun Apr 08. 2022

도렐

추억의 땅콩 맛은 젊은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

단맛이 나는 커피를 그다지 즐기지 않았는데,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견과류의 무차별한 고소함 공격에 항복 또 항복!


도렐 커피를 마시게 된 것은 엉뚱하게도 마지막 커피를 즐기기 위한 애절함 덕이었다. 당분간 건강상의 이유로 커피를 끊어야 했을 때, 한동안 못 마실 테니 정말 맛있는 커피 한잔으로 이별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성수동을 지나가는 경로라 허겁지겁 커피 맛집을 검색했다. 도렐이란 곳의 평점이 눈에 띄게 높아 의심 없이 가보기로 했다. 그곳은 노출 콘크리트 외벽이 멋스러운 건물의 1층에 있다. 문을 열자 인더스트리얼풍의 다크한 인테리어 디자인이 젊음을 마구 발산한다. 알록달록한 스케이트 보드와 군데군데 그려진 그레피티 아트는 도렐의 넘쳐나는 에너지를 한껏 돋보이게 한다.


맛집 온라인 리뷰에 한잔씩 찍혀있던 커피는 '너티 클라우드'라는 이름의 시그니처 메뉴다. 살짝 작아 보이는 유리잔에 찰랑거리도록 담긴 음료는 먹음직스럽게 엉켜 흐르는 질감의 것이 낯설고 색달라보 인다. 특유의 걸쭉한 질감이 마시기도 전에 눈으로 느껴진다. 대부분의 카페에서 시그니처 커피를 주문하면 과도한 맛의 조합에 실망감이 컸기에 조금 망설여졌지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메뉴라 도전해보기로 했다.


녹진한 식감의 첫 모음에 커피가 후루룩 입안으로 타고 들어오지 않는다. 한입 먹고 ('마시고'보다는 '먹고'가 더 어울리는 표현이다) 입맛을 다셔보니 낯이 익다. 고소하고 달큼하니 살짝 탄듯한 끝 맛이 익숙하다. 아! 어릴 적 늘 끼고 살던 땅콩 캐러멜! 고소하고 기름진 땅콩 맛에 덧입혀진 달콤함. 그리고 진하고 쌉싸름한 커피가 더해진다. 마치 멜빵바지 입고 만나던 추억의 캐러멜을 최신 유행템을 입고 새로 만난 느낌이다. 이 어려지게도 또 젊어지게도 하는 묘한 맛의 즐거움에 한껏 기쁘다. 잔의 절반에 가까워질 때까지 실컷 달콤한 견과류 구름을 타고 놀았다면 이제부터는 커피와 놀 차례다. 진득한 맛의 여운이 일부 남은 진한 커피에 입안 가득했던 견과류의 풍미가 조금씩 씻겨간다. 끝까지 묵직하게 이어지는 커피 한잔에 담긴 맛의 그러데이션이 참으로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누가 이런 즐거운 시도를 하려고 했을까. 참 고맙고 반갑다. 익숙한 맛도 새롭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경쾌한 메시지가 담긴 커피 '너티 클라우드'는 내게 반가운 만남이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반갑게 만나고 또 만나고 있다.


도렐 특유의 젊고 재치가 넘치는 감성은 제주의 젊은 호텔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호텔 '플레이스 캠프'와 찰떡처럼 어울리는 도렐 제주점에 이어 성수, 그리고 용산점이 생겼다. 도렐 특유의 정체성은 모두 같지만 지점마다 조금씩 다른 분위기가 나니 찾아가 보는 재미도 있다. 또 다른 도렐이 생길 곳은 어디 일지, 또 어떻게 그 장소에 맞게 개성을 드러낼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편애 때문인지 당연히 지점들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 보니 극성팬이 다 된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INC coffe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