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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동환 Oct 03. 2020

누구 좋으라고 용서하나?

단순히 갈등을 피하려고 용서하지 말라.


마음에 상처를 가진 사람들에게 용서를 권유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반응이 이것이다. “누구 좋으라고 용서하나?”이다. 내가 상처를 받은 것으로도 힘든데, 용서로 상대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용서는 내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좋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좋으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많은 상처를 받고 살아간다. 우리가 받은 상처를 해결하지 않고, 마음속에 가두어 두고 살아갈 때 그 상처는 우리의 마음에 쓴 물을 만들어 내고, 자존감이 낮아지고, 마음에 평화가 사라지며 쉽게 분노하고 인간관계에 문제를 만든다. 해결책이 무엇인가? 용서를 선택하는 것이다. 제니스 스프링 박사는 미국의 상담 전문가로서 용서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스프링 박사는 그의 책 ‘How can I forgive you?’’에서 용서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하며 무엇이 참된 용서이며, 어떻게 용서할 것인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스프링 박사가 이야기하는 용서 중에 ‘값싼 용서(Cheap forgiveness)’가 있다. 값싼 용서는 용서하기는 쉽지만 진짜 용서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늘은 값싼 용서와 용서 거절하기(Refusing to forgive)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무엇이 값싼 용서인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아서 마음속에 갈등이 일어날 때 그 갈등을 빨리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마음에 갈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값싼 용서’이다.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았지만 상처를 준 사람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는 상황에 있을 때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값싼 용서이다. 값싼 용서를 선택하는 첫 번째 이유는,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관계를 회복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또다시 분노와 폭력을 행사하고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두려움에서 이런 값싼 용서를 선택하기도 한다. 부부 사이에서 배우자가 폭력을 행사하거나 폭언을 하는 것은 다른 배우자에게 큰 모욕감을 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관계를 더욱 힘들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과 함께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배우자가 또 다른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상대가 상처를 준 것을 잊어버리고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생각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어떻게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살 수 있겠는가? 상처를 받은 사람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품고 살게 되며, 기쁨이나 생명력을 잃어가며 사는 것이다. 


값싼 용서를 선택하는 두 번째 이유는, 상처를 준 사람이 거절하거나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처를 주었지만 그 사람과 관계를 끊어서는 안 될 환경에 있을 때 이런 값싼 용서를 선택을 할 수 있다. 이런 선택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이란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코끼리 길들이기 의식 ‘파잔(phajaan)’과 같다. 파잔은 야생의 코끼를 잡아서 묶어둔 후 굶기고 구타하는 의식이다. 코끼리는 이 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잡고 굶기고 구타하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자신 안에 있는 야생의 본능을 죽이고 길들여지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길들여진 코끼리는 관광 온 사람들을 등에 싣고 다닌다. 코끼리는 자신 안에 있는 자유와 야생의 본능에 귀를 막고 더 이상 굶고 구타를 당하는 고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무조건적으로 길들여짐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때부터는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고, 그저 생명을 연명하는 것이다. 상처를 준 배우자에게 심한 소리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내가 그렇게 반응할 때 결혼 생활이 끝나고 배우자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결혼 생활은 상처 받은 사람을 더욱 병들게 한다. 마음에 깊은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자신에 대하여 큰 목소리를 내게 될 때 상처를 준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이런 태도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종교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방식이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했는데 내게 상처를 준 배우자는 원수는 아니지 않은가? 이런 사람 정도를 내가 용서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상대를 용서하고 품어주기로 결단하는 것이다. 나도 상처를 받았지만, 내가 또 배우자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이런 용서를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용서는 역기능적(dysfunctional)이다. 이런 용서는 내 안에 아무런 해결책이 없는 상태에서 단지 상대방을 용서로 덮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내 마음속에는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여전히 상대에 대한 미움과 쓴 뿌리를 간직하면서 겉으로만 상대를 용서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자기 암시를 주며 사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용서는 용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에 기만하고 조작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속에 여전히 분노의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말로만 용서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값싼 용서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용서는 참된 용서가 아니다. 용서를 가장한 거짓 용서인 것이다.  


이런 태도의 장점은 상처를 준 사람과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자신이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했으니, “나는 참 마음이 넓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에 만족감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마음속에 있는 성난 감정을 잠재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용서의 단점은 단지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지 문제 된 부분이 해결된 것은 없다. 이런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는 그저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지 더 깊은 관계로의 발전을 가져올 수 없다. 또 하나의 문제는 상처를 준 사람을 이렇게 값싸게 용서할 때 상처를 준 사람이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쉽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용서 거절하기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용서를 거절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주변에 경계를 세우고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용서하지 않고 적대적인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내 맘대로 표현하고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상처 받았으면 상처 받은 대로 상대방에게 내가 상처 받았음을 알려주고, 자신을 표현하고 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내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내가 이런 상처를 받았다고 표현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표현을 해서 상대가 이해해 주고 받아들여주면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며 나 자신의 마음에는 더 큰 불안의 요소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용서를 거절하는 것이 가진 장점은 자신의 가치관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고 산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용서를 거절하는 것의 단점은 내게 상처를 준 사람과의 대화를 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상처를 준 사람에게 나를 더욱 미워하게 만들고 내게 더 큰 상처를 계속해서 쌓아 가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개인적인 성장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감정적이고 신체적인 병도 가져올 수 있다.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용서하지 못하는 쓴 뿌리를 안고 살아갈 때 그 쓴 뿌리는 관계의 문제만이 아니라 신체적인 질병도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마음의 병으로 고통당하는 것도 보통 문제가 아닌데 위장병, 두통, 고혈압과 같은 신체적인 질병으로 고통을 당한다는 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값싼 용서인 거짓 용서나 용서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용서를 하겠다고 결단하고 행동에 옮기는 용기이다. 참된 용서에는 나의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내 안의 상한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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