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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동환 Feb 25. 2021

장모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다.

받고 돌려주는 인생


얼마 전에 연세가 많으신 장모님께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기침을 너무 자주 하셔서 기침을 치료하러 들어가신 것이다. 그날부터 많은 검사가 시작되었고 기침을 잡기 위해서 많은 종류의 약이 투약이 되었다. 어떤 날은 당뇨가 엄청나게 오르는가 하면, 어떤 날은 혈압이 올랐다. 장모님이 입원을 하는 날부터 아내는 어머니의 보호자가 되어 24시간 밀착 돌봄을 시작했다. 몇 주간에 걸친 치료와 간호 끝에 장모님은 병원에서 퇴원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혼자 걸으실 수 없게 된 것이다. 참으로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입원할 때는 자신의 발로 걸어 들어가셨는데, 퇴원을 할 때는 부축을 받으면서 휠체어를 타고 퇴원을 하셔야 했다. 장모님이 퇴원을 하신지도 몇 주가 지나는데 여전히 장모님은 혼자서 걷지를 못하신다. 그래서 아내는 장모님의 곁에서 간호를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아내가 장모님을 간호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받고 돌려주는 것이구나.” 장모님은 네 명의 딸을 낳으셨다. 그리고 그 딸들을 최선을 다해서 양육하셨다. 젖을 물리고, 이유식을 하고, 밥을 먹였다. 성장하면서 학교를 보냈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가면서 딸들을 키워냈다. 그리고 이제는 장모님이 침상에 누운 아기가 되었다. 딸이 옆에서 그 어머니를 돌보아 드리지 않으면 생활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평소에 베풀고 나누어 주고 살면 언젠가는 그것을 받는 날이 온다.


  2008년 7월 1일 우리나라에서는 장기요양보험이 실시되었다. 몸이 불편하거나 기저질환으로 집에서 모시기 어려운 부모님들에게 자기 부담 20%, 국가부담 80%로 요양원으로 입소할 수 있는 제도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많은 노인들은 요양원에 입소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누군가 요양원에 들어가면 죽어서 나간다고 말하는 이야기들이 노인들 사이에서는 돌고 있고, 요양원에 부모님을 모시고 나서는 자녀들도 자주 들려보지 않아서 노년의 고독을 느끼며 죽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분들도 계신다. 자녀 부부들이 같이 직장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부모님을 모실 수 없는 가정도 늘어가고 있어서 몸이 불편하신 부모님을 요양원으로 모실 수밖에 없는 가정도 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삶의 만족도가 있는 노인 요양은 없는 것일까?


  아툴 가완디가 지은 책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보면 노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죽음에 이르기 전에 일어나는 일들, 청력, 기억력, 친구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 방식을 잃는 것이 두렵다”라고 말한다. 노인들에게 있어서 집은 단순히 주택이라는 의미 이상을 갖는다. 아툴 가완디의 책에 나오는 일화에 해리 트루먼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워싱턴주 올림피아 근처의 세인트 헬렌스 산에 살고 있었다. 1980년 3월에 화산이 폭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찰은 가가호호 다니며 사람들에게 대피할 것을 알렸다. 그러나 그는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집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집을 떠나서 대피했는데, 노인인 트루먼은 자신의 집을 지켰다. 그는 자신의 나이가 80세이며,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권리가 있는 나이라고 자신에게 말하는 경찰관에게 맞섰다. 화산이 폭발해서 집이 없어질 거라고 말하자, 자신은 그 집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구들에게 “내일 죽는다고 해도 참 괜찮은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화산은 1980년 5월 18일 폭발했다. 트루먼의 집은 화산에 덮였고, 그는 자신의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있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은 자유를 의미했고, 자신의 생명과 같은 것이었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요양원에 가기를 원치 않는다. 요양원에 있는 노인들은 자주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요양원을 집과 같은 개념으로 운영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것이 어시스티드 리빙(assisted living)이라는 개념을 가진 시설이다. 독립주거 시설과 요양원의 중간 단계 정도 되는 시설이다. 이 개념을 처음 도입한 사람은 캐런 브라운 윌슨이다. 그녀는 1980년대에 오리건주에 첫 어시스티드 리빙 주택을 열면서 노인들이 자유와 자율성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집 같은 곳을 노인들에게 제공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의 출발은 윌슨의 어머니였다. 윌슨의 어머니도 요양원에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요양원에서 사는 것을 기뻐하지 않았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생활공간이 없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너무나 힘든 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노인학을 연구하면서 노인들이 원하는 것은 같은 방에서 다른 노인과 같이 지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이 가진 작은 부엌과 욕실이 있는 “자신의 집”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갖기 원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곳은 자신이 문을 잠글 수 있고, 자기만의 가구들이 있는 공간이다.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집에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파크 플레이스”라는 시설을 만들었다. 노인들 각자에게 방 하나와 욕실이 갖추어진 아파트와 같은 곳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요즘 우리로 말하면 원룸형 오피스텔을 노인들 각자에게 제공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집을 갖게 되자 노인들은 어느 누구도 보호시설에 감금됐다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개념이 처음부터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노인들을 보호해야 하는데 그렇게 혼자 두었다가 어떻게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정부는 윌슨 부부가 운영하는 기관을 면밀히 연구하도록 했다. 그들의 연구결과 윌슨 부부가 운영하는 파크 플레이스는 그곳에 사는 노인들의 삶의 만족도가 높아짐과 동시에 건강도 유지된 것으로 결론이 났다. 신체 기능과 인지 능력은 향상되었고, 심각한 우울증의 증세는 감소되었다. 요양원에 살고 있던 노인들보다 훨씬 좋은 반응을 얻게 된 것이다. 이런 자기의 집과 같은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자신 혼자 거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런 체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좀 더 자주 방문을 하고 보호하는 일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도 적어도 자신의 대문이 있고, 그 대문을 들어와서 자신의 집을 방문하여 자신을 돌보는 사람을 맞이하는 노인들은 자신이 요양원의 병실에 누워있다는 생각을 덜하게 되어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이런 노인시설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나의 장모님은 상당히 자신의 개인 공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성품을 가지고 계신다.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신 이래로 자녀들과 같이 사시지도 않으시고,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공간을 누리며 사셨다. 그러나 스스로 거동을 하기 어려워하시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자신의 집의 개념을 가진 시설들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나 오피스텔과 같은 원룸형의 집을 많이 짓고 노인들에게 자유를 가지고 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드리고, 그 집들을 돌보는 관리사무실에 상주하는 요양보호사들이 노인들에게 자주 들려 돌보아 드리는 환경을 만들어 드린다면 요양원에 비하여 노인들의 만족도가 훨씬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인 인구가 점점 늘어나는 이때에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이런 제도를 노인 정책으로 도입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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