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에 한 영화 포털에 한 편의 영화가 올라왔다. 나는 유령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한 가족의 슬픔을 재발견하게 하고, 슬픔의 의미를 파악하게 하는 영화라는 평을 받고 있는 영화여서 유령 영화이지만, 이 영화를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간략하게 영화에 대해서 설명하면, 영화의 주제는 한 남학생과 유령이 된 한 여학생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스토리 뒤에는 죽음에 대하여 슬퍼하는 엄마와 아들이, 죽음이 가져오는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가운데 엄마와 아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죽음이 가져오는 슬픔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것에 마음이 끌렸다.
영화에 나오는 엄마와 아들은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 그것은 엄마의 남편이자 아들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아들은 아버지와 기타를 치며 노래했던 즐거운 추억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 그는 더 이상 기타를 치지 않는다. 기타를 잡으면 아버지가 생각나서 슬픔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엄마는 남편의 죽음에 대하여 주제를 피하고 사는 것이 해결책이 아님을 알고, 아들과 남편의 죽음의 의미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는 아들에게 자신도 남편을 늘 그리워한다고 말하면서, “그래도 잘된 거 아니니”라고 말한다. 아들은 깜짝 놀라서 뭐가 잘되었냐고 묻는다. 그러자 엄마는 “적어도 아빠가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우리가 아빠를 그리워하지, 만약에 나쁜 사람이었으면 우리가 그리워하겠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아빠를 그리워할 수 있게 해 준 것은 아빠가 우리에게 특권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들은 그것이 특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권이라고 하기에는 상실의 아픔이 너무나 큰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들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아빠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것 같으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이 뭐가 중요하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엄마는 말한다. 내가 남편을 만나서 이렇게 슬프게 될 것이었다면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이런 일을 경험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러나 만약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면, 남편을 만나서 남편과 나누었던 그 모든 추억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남편을 만나지 못했고, 그래서 나와 남편이 나눈 모든 추억도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면, 차라리 나는 남편을 만나서 매일 남편을 그리워하며 사는 것을 택할 거야 “라고 말했다. 그 순간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그것들이 오늘의 너를 만들었고, 그것의 나의 남편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엄마는 말했다. ”정말 슬픈 사람들이 누군지 아니? 그 사람은 아무도 그리워할 사람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리워할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고, 그리워할 사람을 만나지도 않아서 그리워할 사람이 아예 없는 사람들이 가장 슬픈 사람“이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먼저 세상을 떠나서, 누군가를 잃어버려서 ”내가 누군가를 잃고 그리워한다는 것은 내가 그 사람을 그만큼 사랑했다. “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래서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 사람을 향해 슬퍼할 수 있는 것은 특권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이 영화가 주려고 하는 슬픔에 대한 재해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슬픔이란 단순히 상실에 대한 아픔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누군가를 잃고, 무엇인가를 잃고 상실의 슬픔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내가 그 대상과 인연을 맺고 그 사람을 그리워할 수 있는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병이나 사로로 인으로 인해서 세상을 떠난 가족일 수도 있고, 사랑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등을 돌리고 사라져 버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슬픔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슬픔을 우리가 가지고 있더라도, 적어도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했고, 그 사람과 의미 있는 추억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내가 그 사람을 잃은 것에 대하여 가슴 아파하고, 슬퍼하는 것은 그 사람을 그만큼 사랑했고, 그 사람이 내게 있어서 그렇게 소중한 의미를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 사람을 잃은 것에 대하여 슬픔을 느끼고 그 사람을 마음껏 그리워하자는 것이다. 슬픔은 가슴 아픈 것이지만 그 슬픔에는 소중한 추억이 감추어져 있다. 그 사람은 더 이상 내 앞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 사람은 내게 사랑의 의미를 가르쳐 주었고, 내게 삶의 의미를 가르쳐준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아프지만, 그런 사람과 내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삶의 추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큰 특권이었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가운데에도 소중한 사람을 잃고 상실의 슬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슬픔을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내 앞에 없지만, 내가 그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하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웃을 수 있었던 것이 나에게는 놀라운 특권이었음을 기억하자. 그 사람을 마음껏 그리워하며 슬퍼할 수 있는 것이 내게 준 놀라운 특권임을 기억하며 살아가자. 상실의 슬픔은 없는 것처럼 감추고 살아가는 것보다, 나의 상실을 되새기며 그것의 의미를 떠올리며 애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우리의 슬픔을 치유해 가는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