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에서 들은 강연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BCG의 파트너분이 '자본 시장이 요구하는 투자유치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느꼈던 여러 고민들이 명확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강연을 들으며 떠올랐던 몇 가지 시사점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카카오 모빌리티의 '익숙한 불편함'이라는 키워드가 특히 인상 깊었다. 택시를 부르고, 타고, 요금을 지불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불편함들을 분석해낸 과정이 놀라웠다.
승객 입장에서는 택시가 언제 올지 모르는 불안감, 목적지 설명의 어려움, 기사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요금 지불 시의 불편함이 있었다. 기사님 입장에서도 승객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불확실성, 목적지 이해의 어려움, 잔돈 준비의 번거로움이라는 똑같은 페인 포인트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이런 불편함을 건당 1만원의 가치로 환산했고, 하루 택시 이용 건수 400만 건을 곱해 15조원 규모의 새로운 시장이라고 정의했다. 스티브 잡스가 말했듯 "소비자들은 아직 나와있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불편하다고 말하지 못한다"는 것처럼,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불편함을 구체적으로 발굴해낸 것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이런 문제가 있어서 우리가 해결하려 한다'고 막연하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문제를 얼마나 구체적이고 정량적으로 정의했는지가 투자자들의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내는 핵심인 것 같다.
업종별로 투자자들이 보는 핵심 지표가 완전히 다르다는 분석이 흥미로웠다.
소프트웨어 SaaS 업체들의 경우 '40% rule'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연간 매출 성장률이 40%를 넘지 못하면 어느 정도 수익을 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30% 성장을 기록했다면 최소 10%의 마진을 보여줘야 적정 밸류에이션을 받을 수 있다는 법칙이다.
미디어 엔터테인먼트는 더 재미있다. 시총 20조 미만의 회사들은 마진이 더 중요하지만, 20조가 넘어가는 순간 오히려 성장성이 더 중요해진다. 이미 비즈니스 모델이 완성되고 수익을 내고 있다면, 이제는 얼마나 다른 시장과 국가로 확장할 수 있느냐가 더 큰 밸류에이션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핀테크 같은 경우에는 규제 산업이다 보니 규제에 대한 저항성이 얼마나 있는지가 중요하고, 테크 스타트업들은 기존 고객들의 서비스 이용률 증가(Net Revenue Retention)가 핵심 지표로 작용한다.
우리는 종종 '좋은 사업모델이면 다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이 무엇을 중요하게 보는지 이해하고 그에 맞는 스토리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렌즈로 보여주느냐에 따라 전달력이 완전히 달라진다.
넷플릭스 사례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2019년 대비 2-3년 동안 2배, 3배의 매출과 수익 성장을 기록했는데 작년 4월 하루 만에 주가가 35% 폭락했다. 매출이나 이익의 성장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는 넷플릭스가 투자자들이 원하는 스토리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원했던 것은 단순한 매출 성장이 아니라 '확장성'에 대한 증명이었다. 미디어 엔터테인먼트는 프리미엄한 시장이다 보니, 더 큰 성장을 위해서는 다른 시장과 국가로의 확장 가능성이 검증되어야 했던 것이다.
결국 그 숫자들이 '우리의 비전 달성을 위한 진전'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지표인지가 중요하다. 지표를 위한 지표가 아니라, 스토리를 뒷받침하는 근거로서의 지표 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메시지는 "지금 투자하세요"였다. 40년간 미국 내 M&A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5건 이하로 투자한 경우 확률적으로 돈을 잃고, 10건 이상 투자한 경우 확률적으로 돈을 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장이 어려울 때 투자한 경우가 수익률이 높았다는 분석이었다.
단순한 논리로 들릴 수 있지만 - 쌀 때 사면 돈을 벌 확률이 높다 - 실제로는 쌀 때 투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돈을 벌 때 투자하라는 것이다.
이는 투자자뿐만 아니라 창업자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 같다.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는 오히려 경쟁이 치열하다. 시장이 어렵고 불확실할 때야말로 진짜 기회를 찾고 준비할 수 있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복잡한 분석과 전략들이 많이 나왔지만, 결국 핵심은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카카오 모빌리티가 택시 호출 앱이 아니라 '모빌리티 플랫폼'을 지향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카카오가 이미 고객들의 압도적인 시간과 공간 점유율을 가진 회사였기 때문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플랫폼들도 확보하지 못한 고객 인사이트를 발굴해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진짜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그 과정에서의 진전을 꾸준히 보여주는 것이다. 기술적인 스킬들은 도구일 뿐이고, 근본적으로는 '이 팀이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앞으로 우리도 단순히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것을 넘어서, 그 가치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적절한 언어로 전달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하나씩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