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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나이 Jan 14. 2021

세상의 모든 아침

“다행이에요. 게이트 마감하기 직전이었는데.. 승무원 전용 통로로 안내해드릴게요.”

미얀마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백팩을 하나 짊어지고 비행기 출발 40분 전에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렇게나 늦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느 인터넷 기사였던가, 꿈에도 못 잊을 아름다운 일몰 장면을 보고 나선 미얀마 여행을 결심하였다. 석양이 물들어 보라색, 하늘색, 주황색 그 어딘가의 색을 발하는 하늘. 일몰의 찬란함을 휘감은 수많은 금빛 사원들. 그 경이로움 사이로 떠오르는 오색찬란한 열기구. 그런 한 폭의 그림을 한눈에 담으려 어느 사원 위에 올라선 여행자들.

미얀마의 경제 수도 양곤 국제공항에 내렸다. 동남아시아 우기 특유의 숨막힘이는 냄새가 밀려들어왔지만, 이내 다시 여행이 시작됐음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내가 사랑하는 여행지 그리고 몹시도 그리웠던 이 냄새.

양곤을 둘러보는 것도 즐거웠으나 사실 더 궁금한 도시에 오래 머물기 위하여 하루 만에 슬리핑버스에 올라탔다. 비포장 도로를 15시간이나 달려, 아직 어둠이 밝음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새벽 5시쯤 바간에 도착하였다. 5천년의 역사를 품은 고대 버마의 수도. 바간.

버스에서 내려 이 역사적인 도시의 냄새를 느껴보려 하기도 전에 수많은 호객꾼 들은 짐을 하나씩 붙잡고 자신의 차로 가자는 본능적인 신호를 보낸다. 마치 하나의 약속된 세트플레이처럼 자연스러웠다. 허나 쉽게 넘어갈 내가 아니다. 여행을 하며 쌓은 내공으로 이 정도 호객행위는 이제 코웃음 치며 넘길 수 있었다. 나는 어느 정도의 밀당의 신호 혹은 차량을 이용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도로로 나간다. "No no no no. I will walk"

이게 웬걸. 도로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방향은 제대로 찾은 것 같은데, 이거 얼마나 걸어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어둠에 둘러싸여 있는 약 2300 여개의 사원이 주는 공포감은 어쩌랴. 버스를 같이 탔던 여행자들은 저마다 선택한 교통수단에 탑승한 채 내 앞을 지나간다. 어둠 속에 황량한 들판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그 가운데로 달랑 외길과 나만이 존재할 뿐이다.

나와 남은 3명의 호객꾼들은 필연적으로 다시 만났다. 각자 자신을 소개하고 보유하고 있는 교통수단을 소개한다. 우연히도 각기 다른 종류만 남았다. 자동차, 오토바이, 씨클로. 무엇을 이용할지 고민하는 나에게 이들은 솔직하게 자신들의 교통수단의 장점과 단점을 알려준다. 아니 오히려 타인의 교통수단의 장점을 알려준다. 왜 자신의 것이 가장 최고라고 하지 않는 것 일까.

체크인까지 꽤 많은 시간이 남았으며, 무엇보다 돈을 아껴야 하는 배낭여행객으로서, 천천히 그리고 가장 저렴한 값으로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는 씨클로를 택했다. 정말이지, 이들의 끈질긴 호객행위로 걸어가지 않음을 감사하게 되었다. 씨클로를 타고도 40분을 넘게 이동하였으니까.

힘겹게 씨클로를 끌던 친구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지만, 정작 본인은 싱글벙글이다. 잠시 멍을 때리던 나의 어깨를 그 친구가 툭툭 건드린다. 저기를 보라며 손가락 끝으로 가리킨다. 무슨일이라도 났나 생각하던 순간,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어쩌면 미얀마를 여행지로 선택했고, 바간으로 오기위해 비행기 대신 버스를 택했고, 시내로 가기위해 자동차 대신 씨클로를 선택한 이유가 여기있었음을 확신했다. 그저 어둠이 가득했던 그 길 위에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등 뒤로 태양의 따스함이 느껴지고 바간왕조의 역사를 품은 황금빛 사원들과 광활한 대자연이 모습을 드러낸다. 귓가에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우리의 시클로 굴러가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어느덧 하늘은 보랏빛으로 가득 물들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세상의 모든 아침을 맞이한 기분이랄까. 일몰을 보러 왔건만, 일출마저 예술이다.

옳지 않은 선택은 없다. 선택의 기준이 무엇이었던지와 상관없이 그 끝은 저마다의 이유로 아름다울 것이다. 그러니 내가 선택한 길을 가고 있는 중이라면, 그 끝에 어떠한 아름다움이 기다릴지 상상해보는 순간만큼은 짜릿하지 않은가? 그러니 부디 나아가는 걸 두려워 말자. 우린 결국 아름다움에 다다르고 있다고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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