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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잉 Nov 30. 2024

강아지와 고양이

사람: 저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저 많은 돈과 인기. 심지어 예술가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끝이 없는 예술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구나. 어떻게 하면 저런 삶을 살 수 있을까? 꼭 예술가가 아니어도 좋으니 어떻게 하면 저런 사람들처럼 살 수 있을까?


강아지: 저 사람들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야. 어떻게 하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지 매일 같이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이라고. 


사람: 나도 생각은 하는데 말이야.


강아지: 달린다고 다 마라톤 선수가 되는 건 아니잖아? 목표를 가지고 똑똑하게 생각을 해야지. 


사람: 하고 싶은 거야 많지. 그런데 똑똑해야 한다니? 그건 어떻게 하는건데?


강아지: 많이 생각하고 책을 많이 읽고 진지하게 생각하면 너도 똑똑해질수 있어. 



3년후


사람: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있어. 그런데 뭔가 이상한게 있어.


강아지: 뭔데.


사람: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들은 내가 똑똑한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 네 말대로 똑똑한 사람이 행복하게 산다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거지?


강아지: 아직 멀었구나. 사람은 말로 움직이지 않아. 네가 자전거 타는 방법을 말로 설명 못하지만 알고 있듯이, 행복한 사람들은 말로 설명하지 못해도 이미 똑똑한 방법들을 알고 있는 거야. 말은 배우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일 뿐. 충분히 아는 사람은 말 따위는 잊어버리고 자연스럽게 사는거지.


사람: 이럴수가. 나보다 어리면서 행복한 사람들도 있는데, 그럼 나는 대체 얼마나 뒤쳐져 있다는 말이야?



3년후


사람: 세상에서 제일이라는 철학자, 종교인, 백만장자, 예술가, 권력자, 심리학자를 모두 만나고 왔어. 그런데 대부분은 남들보다 특별히 행복해 보이지도 않아. 강아지야. 네가 말한 똑똑함이 대체 뭐란 말이야? 내가 아는 똑똑한 사람들은 남들과 그다지 다를 것도 없어 보이는데 말이야.


강아지: 내가 한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멀어지는 강아지)


사람: 이런 시발. 강아지가 나를 속였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서 배웠고,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사는 삶을 들여다봐왔지만 결국 전혀 행복해지지 않았어. 


고양이: 강아지 덕분에 그 동안 즐겁게 살았으면 된 거지. 왜 화를 내고 그래? 


사람: 내가 원했던 건 이런 즐거움이 아냐. 저 행복한 사람들처럼 완전히 행복해지는거. 걱정 하나 없이 가장 큰 즐거움을 누리면서 사는 거였다고. 강아지는 똑똑해지면 그런 삶을 가질 수 있을 것처럼 나를 속여놓고 이제와서는 무책임하게 사라져버렸잖아. 


고양이: 저 행복한 사람들 같은 건 없어. 행복은 먹는 즐거움 같은 거야. 누구도 끊임없이 먹을 수는 없어.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날 거고. 누군가의 인생에서 맛있게 많이 먹는 모습만 잘라 보면서 마치 그 사람은 끊임없이 식도락을 누리며 살 것 같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게 지금의 너야. 네가 말하는 행복한 사람 같은 건 없어. 그건 그냥 희망일 뿐이야.


3년후


사람: 고양이는 강아지보다 더 못되쳐먹은 놈이야. 강아지는 내가 바라보며 즐겁게 살 수 있는 희망을 줬어. 하지만 고양이는 나를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혼돈 속에 빠트려 버렸어. 희망을 가지고 뭔가 할 것이 있을 때 나는 즐거웠어. 희망이 사라진 지금 나는 더없이 불행해졌어. 


고양이: 네가 가졌던 희망은 언젠가는 깨질 수 밖에 없는 희망이야. 희망을 깬 건 내가 아니야. 원래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어 있는 것이었을 뿐이지. 너는 니 수준에 맞는 희망을 가졌었고 이제 너는 달라졌기 때문에 그 희망을 더 이상 가지고 살 수는 없는거야. 


사람: 그게 고양이 탓인지 내 탓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내가 희망이 있을 때보다 더 불행해졌다는 사실이지. 이제 예전처럼 희망을 가질 수도 없어. 그 강아지가 생각보다 똑똑한 강아지였는지, 강아지보다 더 그럴듯한 희망을 파는 사람은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어. 돈도, 인기도, 똑똑함도, 영성도, 쾌락도 더 이상 나에게 희망으로 다가오지 않아. 


고양이: 희망은 그것을 가지면 더없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환상에서 왔지. 그 환상은 곧 이루어야 할 목표였고, 그 덕분에 너는 뭘 해야 할지 알 수 있었지. 목표가 있다면 너는 뭘 해야 할지 알 수 있어. 환상이 없어도 목표는 가질 수 있고. 뭘 해야 할지 알 수 있다면 희망이 있을 때처럼 즐겁게 살 수도 있지.


사람: 너무 오래 희망을 가지고 살아서일까?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생각해보면 강아지를 만나기 전에 나는 그런대로 행복했어. 뭘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고 그냥 하고 싶은 걸 했지. 그런데 강아지를 만나서 더 나은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 이후로 점점 나를 잊어버리게 됐어. 이런 개같은놈. 원래 개긴 하지만 정말 개같은 놈이군.


고양이: 니가 니 자신을 잃게 만든 건 강아지가 아니라 지금의 너와 다른 삶을 살고 싶어한 너 자신이지. 니가 지금 있는 그대로의 니가 아닌 더 나은 무언가를 원하고 더 나은 무언가가 되고 싶어했기 때문에 희망을 찾게 된거고 희망의 정해진 결말대로 희망은 사라지고 길을 잃은 모양새가 된거지. 




사람: 어쩌면 중요한 건 그저 목표를 가지고 사는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희망이 만드는 목표건, 스스로 정한 목표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하나의 목표에 몰두해서 흔들림없이 살아가는 것이 최선인지도 모른다.


취객: 산다는 건 원래 즐거운거야. 즐겁지 않다면? 즐겁기 위해 뭐라도 해야지. 살아있는 것은 웃거나 움직이거나 둘 중 하나가 자연스러운거야.


 사람: 답 같은 건 모른다. 답을 찾는 다는 것 자체가 희망에 너무 오래 빠져있으면서 생긴 나쁜 습관인지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고민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가고 있다는 것이다. 


취객: 평생동안 고민만 하다가 죽은 사람들을 알고 있지. 별로 슬플 것도 없었어. 살아 있을 때도 죽은 것 같았으니까. 


사람: 고민만 하다 죽은 사람보단 희망을 가지고 산 사람이 더 즐거웠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고민이란 것도 대단한 정답이 있다는 희망 때문에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단한 정답 같은 것은 없다. 지금 내가 하는 선택이 있을 뿐이다. 희망을 오래 품고 살다 보면, 오래 고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 선택하는 방법을 잊은 사람이 되어 버린다. 희망을 완전히 버리고, 고민을 완전히 끝내고 나서야 스스로 선택할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취객: 조선 사람은 맞아야 말을 듣지. 제대로 혼쭐이 나야 정신을 번쩍 차리는 법이야. 뭘 하기로 했으면 무조건 최고고 최대고 최선이어야 돼. 평생 해도 못이룰 불가능한 목표를 가져야 돼. 초년 성공이 재앙이오. 여유가 곧 자만이고 몰락이니. 평생 온 힘을 다해도 못 이룰 목표를 마음에 품고 살아야 되는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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