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사

by 김동휘

"여러분. 제가 이십년 넘게 이렇게 신입생을 맞아보면서 느낀게 뭔지 아십니까? 이렇게 여러분들이 저 정문으로 걸어들어와서 여기 의자에 앉는 걸 보면, 어디 끌려온 사람 같아요. 대학교 신입생이 아니라 죄수 같단 말이에요. 아시겠지만 교도소는 제가 익숙합니다.


뭐 다들 이유가 있겠죠. 원하던 대학을 못갔을 수도 있고, 주변에 스타벅스도 없는 게 마음에 안 들 수도 있고, 아니면 남학생들은 너무 오랜만에 여학생을 만나서 정신을 못차리는 건가요? 창피할 것 없어요. 부처도 아니고 어떻게 그 나이때 여자를 돌보듯이 봅니까?


아무도 여러분한테 신경도 안써요. 혼자 눈치보고 있어봤자 본인만 손해입니다? 저는 이래저래 서울대에서 10년 정도 있었는데 거기도 똑같아요. 좀 낮은 학과인 애들은 법학과 부러워하고 법학과 안에서도 고시 붙은 애한테 열등감 느끼고.


그러니까 여러분이 생각했던 대학을 못 왔다 하더라도, 그런 걸로 기죽어 있지 말라는 겁니다.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세요. 뭐 꿈을 크게 가질 필요도 없어요. 어차피 이제 스무살쯤 됬으니 자기 성격도 좀 알고, 가정 환경도 알고, 능력도 알만큼은 알 거 아니에요. 목표는 그냥 거기에 맞춰서 가지면 되는 거고.


목표가 크면 본인만 힘들어요. 이게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고들 하는데 사실 고생이란게 사람을 굉장히 치사하고 악독하고 비인간적으로 만들기도 하는 거거든요.


어떻게 보면 여러분은 운이 좋은 겁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여러분이 학부생으로서 배우고 생활하기엔 부족함이 없는 학교에요. 본인 하기에 따라 취업도 어디든 할 수 있고요. 그러면서도 너무 잘나서 주목 받을 일도 없으니 얼마나 좋아요.


이제 뭐든 궁금한 것 있으면 질문 해보세요. 여러분이 학교 다니면서 저를 만날일이 다시는 없을지도 몰라요. 오늘 질문하시는 분은 제가 기억할 겁니다. 저랑 안면 터서 나쁠게 없어요."


"안녕하세요 총장님, 제가 궁금한 것은...목표를 작게 가지라는 게 왜 그런 것인지...궁금합니다."


"말했잖아요. 목표가 크면 본인만 힘들어요. 그리고 힘들다고 꼭 사람이 더 성장하는 게 아니라, 이상하게 삐뚤어지는 일도 많다니까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왜 무슨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고 몇 백억을 벌고 싶어요? 그게 진짜 좋은지 안 좋은지 알기나 해요? 그냥 목표는 작게 작게 가지고, 즐겁게 사세요."


"삐뚤어지는 일이 많다고 하셨는데...저는 아닌 것 같거든요."


"살다보면 별 사람이 다 있어요. 악하다. 못됐다. 라고 밖에 설명이 안 되는 사람이 많단 말이에요. 근데 그 사람들 다 사정이 있어요. 고생을 했죠. 근데 제가 봐도 그 사람들이 그 고생 안하고 그냥 평탄하게 살았으면, 그렇게 못돼지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고생을 사서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다가 인성만 버린다."


"그럼 총장님도 수감 생활하면서 인성을 버리셨나요?"


"저는 고생을 사서 한게 아니에요. 머리 벗겨진 대통령이 시킨 거지. 그리고 이게 나이 먹을수록 무슨 일이 있건 간에 한 번 생긴 인성이 잘 안 변해요. 막말로 죽으면 죽었지 갑자기 새로 태어난 것처럼 그렇게 못한다고요. 그러니까 저는 인성을 바꿀 수도 없었고 죽지도 않았으니까, 지금 보면 좀 더 인생을 깊이 보게 해주는 경험이 됬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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