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에서 인간은 하느님이 만든 완벽한 세상에서 쫓겨난다. 하느님은 남자에게는 평생 땀흘려 일하는 고통을, 여자에게는 그다지 믿을만하지 않은 남자에게 의존해야 하는 고통을 내린다.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선과 악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면, 더 많은 선택이 주어진다. 그리고 선택을 하게 되면 선택에 따른 책임을 져야한다. 하지만 책임은 때로 가시밭길이고 무거운 짐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안다는 것을 저주로 표현했다.
칼 융은 '모든 신경증은 정당한 고통을 회피한 대가' 라고 말했다. 내가 뻔히 아는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정신이 병드는 것의 시발점이라는 뜻이다.
책임을 알면서도 모르는 것처럼, 오히려 더 무책임하게 행동할 수도 있지만. 그런 무책임은 마음에 돌을 쌓는다. 그렇게 마음에 돌을 쌓아놓고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평온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말하자면, 안다는 것은 저주고. 한 번 알게 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저주가 독이 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책임을 다하는 것 뿐이다.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건 간에.
사람들은 아는 것을 늘려가려고 한다. 하지만 인생에 만족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더 알려고 하지 않는다.
더 안다는 것은 뱀과 거래하는 것이다. 남들보다 높이 서기 위해. 하느님처럼 되기 위해.
그렇게 하느님의 힘을 가져와 남들보다 위에 서게 되면 그에 따르는 그다지 즐겁지 않은 책임이 있다.
한동안은 선악과의 달콤함에 빠져있을 수 있지만, 단 맛이 끝나고 나면 가시밭길을 걸어야 한다.
하느님은 뱀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 어쩌면 하느님은 에덴동산이 뱀 밭이 되서 발디딜틈이 없더라도 뱀을 모른척 했을지도 모른다.
인생에는 뱀 같은 위험이 있다. 아담과 하와는 뻔히 보이는 뱀을 애써 무시하면서 사는 대신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바꿔보려고 했다.
비록 그 대가로 낙원에서 쫓겨났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선택도 아니었다.
뻔히 보이는 뱀을 무시하는 것도, 정당한 고통을 피하는 것도 잘못된 길이다.
그런 면에서 아담과 하와 이야기는 아래와 같은 교훈을 준다.
'인간은 때가 되면 무지의 낙원에서 벗어나 선과 악을 알아야 한다. 살면서 겪는 가시밭길은 하느님처럼 되기로 선택한 인간이 겪는 대가이다. 그러니 정당한 고통을 피하려고 하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