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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잉 Nov 26. 2021

니체의 눈물

니체는 시대를 앞서 갔는가?


니체는 도덕의 기원을 파고들었다.


니체는 현재의 도덕은 강자들의 부조리에 대항할 수 없는 약자들이 강하고 진취적인 것은 악惡함으로, 약하고 소심한 것을 선善함으로 포장한 노예의 도덕이라고 말한다.


기독교는 강자들처럼 싸워서 승리할 수 없는 패배주의적인 사람들이 강자들에 대한 복수심을 담아 만든 종교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기존 도덕과 종교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를 만드는 초인이 앞으로의 방향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니체의 예측은 일부 맞아가고 있는 것 같다. 전통적 도덕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어가고, 서양과 서양식 문화를 받아들인 우리나라에서도 종교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어간다.  


 그런 면에서 니체는 시대를 앞서 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니체의 불행한 삶을 보며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니체는 시대를 앞서갈 필요가 있었는가?


유럽의 19세기에 살던 니체의 주장을 우리나라에 와닿게 비유하자면,


"한식은 맛대가리 없는 음식이다. 한식의 역사를 보니, 한식이 맵고 짠 건 고봉밥에 쥐꼬리만한 반찬을 얹어야 했기 때문에 최대한 자극적으로 만들어서이다. 한식에 국이 많은 이유는 한 줌 고기로 열 식구가 나눠먹으려니 한 솥 가득 물을 넣고 한 줌 고기를 넣는 요리를 할 수 밖에 없어서이다. 한 마디로 한식은 거지들의 음식이다."


같은 주장을 하는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모욕은 아니었다.


니체가 몰매를 맞지 않은 이유는, 니체의 글을 거의 아무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령 읽었더라도 니체의 불쌍한 삶을 보고 동정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도 나서서 한식을 비하하고 양식을 찬양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햄버거랑 피자가 들어오고 양식이 한국의 식문화에 자리잡는 것처럼 니체가 무슨 말을 하는 지와 상관 없이 기존 종교와 도덕의 가치를 재고하고, 중요성이 떨어지며 허무주의와 새로운 가치관이 부상하는 현상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니체는 하나의 권위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니체는 세상을 바꾸는 예수보다는 사람들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 모차르트에 가까운 것 같다.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위대한가" 라고 절박하게 외쳤다. 


아무도 그를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더 세게 말했고, 거침 없이 말했다. 


때문에 동시대 사람들은 그를 불쌍하거나 반미친 사람으로 봤고, 사후엔 더 아이코닉한 사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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