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사이 집 밖을 나설 때마다 왠 비둘기 한 마리가 나를 졸졸 따라온다. 발소리를 크게 내어도 미동이 없고 마치 할 말이 있다는 듯 나를 쳐다보는 것이 소름이 끼쳐 나도 모르게 걸음을 빨리 해 도망치듯 자리를 뜬 일이 벌써 일곱 번이다.
오늘은 오랜만의 회식 탓에 한밤중이 되어서야 집 앞 골목에 들어설 수 있었다. 하루종일 돌아다닌 탓에 피로한 다리를 이끌고 걷다 보니 튀어 나온 보도블럭에 걸려 엉덩방아를 찢으며 넘어져 버렸다. 넘어진 채로 일어나려 하늘을 올려다 보니 달이 동그랗게 꽉 찬 것이, 오늘이 보름달이 뜨는 날이 구나 싶다.
바지를 대충 털고 다시 골목을 지나 집으로 걸음을 향하려는데, 뒤편에서 어딘가 익숙한 기색이 느껴진다. 뒤를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요 며칠 간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그 비둘기놈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번에야말로 비둘기와 결판을 낼 작정으로 비둘기를 향해 다가갔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다가갔음에도 비둘기는 미동도 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가까이서 비둘기의 두 눈을 보고 있자니 비슷한 눈빛을 가졌던 누군가가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집안의 편애를 받으며 소황제처럼 자라 한 때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어렵다는 시험을 통과해 고향 동네의 화젯거리였으나 속이 좁고 오만하여 남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자기 자신이 더 나은 길을 안다는 외로운 고집을 끝까지 가지고 살았던 무백.
그러나 그 길이 무엇이었던 간에 그는 그 길을 끝까지 가지 못했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점점 화가 많아지고 더욱더 외곬수가 되어 주변 사람을 물리치고 그를 곁에서 오래 지켜본 이들 조차 이해하지 못할 엉뚱하고 허황된 말들을 뱉어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는 생업까지 때려치워 버리고는 가족까지 모른 체하며 혼자만의 집 안에 틀어 박혀 버렸다.
나는 오래된 친우로서 그를 그저 모른체 할 수는 없었다. 그가 거의 미친 사람처럼 혼란한 정신으로 신과 운명, 예술과 영원, 그리고 타락한 사회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는 것은 감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더 가까운 사람을 만날수록 더 잔인한 말을 뱉어대며 가슴을 후벼파는 데에는, 아무리 그것이 그의 연약한 마음을 지키고자 벽을 쌓는 애처로운 발버둥일 뿐임을 느낄 수 있는 나 역시도 차마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결국 그의 소식을 알 수 없게 되버린 것이 이미 칠팔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이 보름달밤의 비둘기가 그가 총기를 잃지 않았던 시절의 차분한 눈빛을 하고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보시다시피 나는 비둘기가 되었다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단 말인가?"
"나도 그 대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때가 있었지. 이제야 그 답을 알 것 같아 이렇게 자네 앞에 비루한 모습으로나마 서게 된 거야. 자네는 나를 지켜봐왔으니 내 온갖 추태를 다 보았겠지. 비둘기가 되는 것정도로는 씻을 수 없는 추악한 업보를 쌓는 과정들을 말이야."
"이보게, 업보 없는 사람이 어딨겠는가. 지금이라도 정신차리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될 것이 아닌가. 아직 자네의 노모도 두 눈을 뜨고 계시는데 말이야."
"지금 내가 할 일은 자네를 만나 못다한 말을 전하는 것 뿐이네. 나의 탐욕스러운 성정은 결코 만족을 하지 못했어. 언제나 더 큰 것을 쫓으며 막상 눈 앞에 놓인 것들은 잡초처럼 무시해버렸지. 그것이 가족과 친우든, 책임이든, 나 자신의 이면이든 말이야. 모든 것을 무시한 채 마트료시카를 한 겹씩 벗기면서 결국엔 그 안에서 연금술사의 돌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믿었어. 자네는 내가 집착했던 마트료시카와 연금술사의 돌이 무엇인지 알겠지."
"마트료시카는 자네가 하루종일 붙잡고 있던 온갖 서적들이고 연금술사의 돌은 종교적 깨달음 혹은 고흐와 아쿠타가와의 예술혼 같은 것이었겠지."
"그래. 사실 그게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지. 어차피 모든 마트료시카는 끝을 보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연금술사의 돌은 잡으면 사라지는 비눗방울. 아니 그보다 더 끔찍한 미다스의 손 같은 것이 되어버리기도 하니까. 나는 마트료시카 한 겹을 붙잡고 몇날 며칠을 허송세월하는 이들을 속으로 무시하며 거침없이 마트료시카를 벗겨 나갔어. 그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오만함을 함께 키워가며 말일세. 그러다가 한 번은 어느 늙은이가 어김없이 몰두하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한 마디를 하더군. '중요한 건 사랑 뿐'. 이라고 말이야. 늙은이의 눈빛은 차분했어. 나를 조롱하려거나 오만하게 조언하려는 모습 같진 않더군. 하지만 이미 눈이 먼 나에게 늙은이가 나에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생각할 마음의 여유 같은 것은 없었지. 나는 늙은이의 말을 무시하고 어김없이 몰두했어. 그럴수록 점점 더 나는 피폐해졌고 주변의 인망을 잃었고 마음은 추악해져갔지. 그리고 결국은 마트료시카의 모든 껍질을 벗겨내 버렸어. 연금술사의 돌을 손에 쥐게 된 것이네. 하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지. 기쁘기는 커녕 그제서야 이 작은 돌조각 하나를 쥐기 위해 내가 잃어버린 모든 것들이 무서울만큼 아프게 체감되더군. 그 날 바로 나는 내가 아는 가장 긴 다리에 올라갔네. 밑에서는 늦가을의 추위가 스며든 강물이 흐르고 있었고 말이야. 나는 망설임 없이 다리 위에서 강물을 향해 몸을 던졌네. 망설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제 내 모든 것이었던 마트료시카는 없고. 어차피 진작에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미련이 발목 잡을 이유도 없으니 말이네. 그리고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비둘기가 되어 있었지."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믿을 수 밖에 없겠구나."
"나는 돈키호테보다 더한 돈키호테였고 내가 마음 속으로 무시한 어느 누구보다 어리석은 인간이었네. 오히려 내가 동경해온 인간들이야말로 나만큼이나 어리석은 인간이었음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고. 나는 여전히 비둘기보다 어리석은 겉만 비둘기인 추악한 존재라네. 이제 자네에게 내 사정을 털어놓았으니 이제 나도 온전한 비둘기가 되어 비둘기 무리 속에 자리 잡고 살고자 하네. 지난 며칠 자네에게 뜻하지 않은 기괴함을 느끼게 한 것은 미안하네. 하지만 나로서도 어쩔 방법이 없었던 것을 이해해주게. 보름달이 뜨는 마지막 날 밤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비둘기로서 행복할 수 있겠는가?"
"내 생의 대부분은 비둘기만도 못하게 살아왔네. 그리고 이제 비둘기가 되는 거야. 인간에게는 비둘기가 모르는 인간의 즐거움이 있듯이, 비둘기에게는 인간이 모르는 비둘기의 즐거움이 있다는 것도 나는 직접 몸으로 느껴보게 되었네. 다만 자네와 밤을 지새우며 나눴던 속 깊은 이야기를 이제 다시 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지 않을 수는 없겠지. 염치 없지만 우리 노모를 잘 부탁하네. 한 번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고, 비둘기로서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것이니까. 자네가 그 빈자리를 조금이라도 채워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염치 없는 마지막 부탁이네."
"염려 말게. 자네의 부탁은 힘이 닿는데까지 내 마음에 새겨두겠네."
"마지막으로, 내가 지금껏 써온 글들이 우리 집 안 창고에 있다네. 아직까지도 남겨둔 글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이 아직까지도 남은 마지막 허영심이라고만 생각하지는 말아주게. 자네라면 내가 남긴 글의 뜻을 알 거라고 믿네."
"마음 편히 떠나게. 비둘기 친구여."
비둘기가 된 친구가 밤하늘을 향해 날아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뒤 나는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골목길을 돌아서니 왠 아낙네 하나가 나를 묘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이 모든 것이 나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인 것인지, 남들의 눈에도 같은 것이 보인 것인지 궁금증이 동해 아낙네에게 물었다.
"당신도 비둘기를 보았소?"
아낙네는 뒤로 두 발 정도 뒷걸음을 치더니, 나와 충분한 거리를 둔 듯하자 말했다.
"못 볼 수가 있겠소? 나도 미덕을 아는 사람이오. 떠벌리지 않을테니 걱정 마시오."
집으로 돌아와 평소처럼 누워 잠을 청했다.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비둘기의 행복을 빌어주면서.
https://www.youtube.com/watch?v=mlFDY5TMge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