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개월 만에 어느새 예전 같은 멀끔함을 되찾은 A와 반쯤 찬 소주잔을 부딪혔다. A는 요즘 사회 문제라는 히키코모리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갔던 첫 직장을 모종의 이유로 그만둔 뒤 거의 3년 간 두문불출 생활을 했다.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A는 내가 움직일 수 있는 타입의 인간은 아니었다. 그 고집과 오만. A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물욕과 성욕도. A가 그 텅빈 방안에서 혼자 나눴을 수많은 대화도 해내지 못한 일을 내가 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A가 소주잔을 비우고 입을 열었다.
"나는 밑바닥을 찍어보고 싶었어. 그 때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고. 지금 와서 그 때 나를 생각해보면 그랬다는 거야. 한 번 이 끝을 찍어보자. 이 더러운 기분도. 망한 것 같은 인생도. 인간으로서 찍을 수 있는 최악을 찍어보자. 무서웠거든. 앞으로 얼마나 더 인생이 내 믿음을 배신하고 마음이 찢어질 일이 많을지. 그걸 내가 견딜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어. 그러니, 내 이십대를 잃더라도 나는 이 두려움을 그런 식으로 극복해보고 싶었던거야.
그런데 말이야. 생각해보면, 한 번 내가 갈비뼈를 세게 맞았다고 해서, 다음에 맞을 때 안 아픈게 아니잖아? 오히려 한 번 금간 갈비뼈는 맞고 나서도 움직일 때마다 저리는 통증으로 남아. 그런데 겁에 질린 인간은 최악의 수를 두기도 하는 거잖아? 겁에 질리고, 좌절하고, 그런 자기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인간.
그런 거야. 그냥 멍청했던 거지. 내 이십대의 절반을 그렇게 말하고 싶진 않지만."
그렇게 말하는 A의 눈이 왜인지 호프집의 주광색 조명과 같은 색으로 빛나 보였다.
"그래도, 살아 있잖아?"
나는 정말로 A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 뭐. 별 대단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A는 맞아본 사람이 아는 무언가를 배우지 않았을까? 바다에 빠져 본 사람이 느끼는 대양의 무게를 느껴보지 않았을까? 그게 수업이라면... 꽤나 이상한 수업료를 내고 배운 것이더라도. A에게서는 바다의 냄새가 난다. 서울의 산간지에서도. 튀김 냄새와 나무 바닥의 눅눅한 향이 뒤섞인 겨울밤의 호프집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