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 그러니까 1분이 안 되는 짧은 길이의 영상이 스마트폰을 통해 전세계 사람들의 신경을 잡아두게 된 지도 어느새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지난 추석 때 오랜만에 만난 이제 막 성인이 된 사촌동생은 하루 종일 손에서 폰을 놓지 않았다. 무얼 하고 있는 건지 슬쩍 화면을 들여다보니 화려한 색으로 염색을 한 남녀가 나와 일초가 길다는 듯이 빠르게 전환되는 화면 속에서 뜻 모를 말들을 하고 있었다.
그 나이 때의 내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간이 나기만 하면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잡았고 닌텐도가 나오고 스마트폰이 나온 뒤에는 더 새롭고 빠른 기기를 그게 무엇이든 손에 잡았다. 하지만 내가 그 나이 때 어땠는 지와는 별개로 그런 모습이 무언가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막연히 스쳐 지나간다면 너무 오버하는 생각일까.
이미 이야기는 많이 들었었다. 요즘 청소년들은 이미 스마트폰을 손에 잡을 수 있게 되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숏폼 컨텐츠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 그 때문에 그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는 부모들과 자식은 없어도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이미 MZ세대 혹은 그보다 더 어린 세대들에게 숏폼은 구슬치기와 말뚝 박기, 메이플스토리와 롱폼 컨텐츠의 뒤를 잇는 세대의 문화로 굳건하게 자리 잡아버린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니까 나는 숏폼 컨텐츠의 부정적 영향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도 그것은 그 세대의 문제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최근에 할아버지를 보면서 바뀌게 됐다.
할아버지는 거의 40년째 안고 살던 허리 통증 때문에 원래 평생을 거주하던 시골집을 떠나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병원은 내가 사는 곳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지난 십 수년 간 일 년에 한 두 번 정도 만날 수 있었던 할아버지를 사나흘에 한 번씩 볼 수 있게 되었다. 할아버지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많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할아버지의 시골집 대문 앞에 떡하니 박혀 있는 할아버지의 이름 석자가 아니었다면 할아버지의 이름도 헷갈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아직도 6명이나 되는 큰아버지들의 이름을 종종 헷갈린다. 하지만 손주 된 입장에서 할아버지의 이름을 부를 일은 없으니, 그 정도는 이해할만한 것 아닌가?
처음 할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 찾아갔을 때, 할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표정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별다른 말이 없었다. 나는 간단히 인사를 드리고 근처 마트에서 사온 두유 박스를 병실 침대 옆에 내려 놓은 뒤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막상 옆에 앉긴 했지만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할아버지의 시골집에서 한 달 정도 살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할아버지와 단 둘이 이야기를 해 본 기억은 거의 없다. 할아버지가 무슨 얘기를 보통 하는지. 무슨 얘기를 궁금해할지. 무슨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 할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실제로 그런 적은 아마 없는 것 같지만, 실없는 소리를 했다가는 호통을 들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할아버지도 별 얘기가 없었다. 어쩌면 할아버지도 요즘 젊은 애들은 어른이 얘기한다고 가만히 앉아서 듣는 법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것에 흥미가 있는지, 보통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전혀 모를 것이고.
정적 속에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나는 010으로 시작하는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기 위해 잠시 병실 밖으로 나왔다. 전화는 회사에 입사한지 얼마 안 된 후임으로부터 걸려온 것이었는데, 분명히 번호 교환을 했지만 나중에 저장해 놓아야지 했던 것을 잊어버려 모르는 번호로 알았던 것이다. 다음 주에 있을 회식에 관한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나는 통화를 마치고 병실로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손에 가죽 케이스를 낀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모습을 그때 처음 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핸드폰은 출시한지 20년은 됐을 법한 두꺼운 폴더폰이었다.
할아버지가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모습은 왠지 보기 좋아 보였다. 백 살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새로운 문물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여전한 호기심의 표증처럼 보였던 것이다. 나는 병실문을 지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할아버지의 옆에 앉았다. 할아버지가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하고 있을지가 궁금했다. 나는 의자를 왼쪽으로 조금 옮겨 앉은 뒤 고개를 스마트폰 쪽으로 기울여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아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있을까? 뉴스를 보고 있을까? 예전부터 종종 두던 바둑을 모바일 버전으로 하고 있진 않겠지. 작은 화면으로 바둑을 두기는 아무래도 쉽지 않을 테니까.
들여다본 할아버지의 화면에서는 트럼프가 잠시 등장하고 전투기가 등장하더니 ‘전쟁’ ‘미국’ ‘중국’ 같은 단어들이 스쳐 지나갔다. 할아버지는 숏폼 영상을 보고 있었다.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속으로 삼키고 조금 뒤로 떨어져 할아버지의 스마트폰 화면을 계속 지켜보았다. 알고리즘 때문인지 비슷한 영상이 몇 개 나오다가 배꼽을 시원하게 드러낸 여자 아이돌이 춤추는 영상과 새로 나왔다는 믹서기의 효능 같은 것들이 스마트폰의 화면을 거쳐갔다. 할아버지는 영상을 멈추거나 넘기는 법이 거의 없었다. 그냥 조용히 스마트폰 속 짧은 영상이 이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재밌으세요?’ 라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나이 차이가 60살이 넘게 나는 할아버지에게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이 무례한 것 같다는 생각이 괜스레 들어 그저 조용히 할아버지가 숏폼 영상을 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