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by 김동휘

늦은 밤. 난 다시 손 때 묻은 펜을 잡았다. 집 앞 호프집의 조명도 꺼지고 간간이 들리던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도 사라진. 오직 초겨울 밤공기의 냉기만이 스며들어오는 방 안에서. 이 시간이 되면 더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사방에서 해가 내리쬐는 오후 2시보다. 깨어 있을 때가 드문 시간이 되어 버린 오전 8시 보다.


기껏 잡은 펜으로 써내려가는 건 나조차도 설득할 수 없는 공허한 말 뿐이다. 게으른 삶.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오직 꿈 속에서만 큰소리칠 수 있는 사람의 넋두리 같은 글. 이런 넋두리로 위대한 예술가가 된 사람들을 억지로나마 상기하며 어떻게든 넋두리의 의미를 찾아보려 한다. 하지만 마음은 그리 쉬이 속아주지 않는다. 이런 글은 아주 잠시도 나를 만족시켜주지 않는다. 고통, 광기에 대한 두려움, 내가 매달고 있는 온갖 무게들이 영원히 고통스럽게 남아 있을 것만 같다는 편집증적인 생각. 그것은 아마 삶의 다툼을 피해 펜으로 필적을 남기는 모든 사람의 숙명일 것이다.


십만 자의 글을 썼다. 아니 사실은 백 만자일 것이다. 아니 사실은 천만자에 더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쓰레기다. 쓰레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쓴다. 희망 때문에. 예술이라는 희망. 초월이라는 희망. 인간적이지 않은 희망. 희망이 꺼지는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희망은 성취되지도 실패로 판명나지도 않는다. 영원히. 내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그럭저럭 현실을 견디기로 마음 먹어 버렸기 때문에.


나는 그런 삶에 깊숙이 빠져있다. 희망이라는 막으로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어 놓고는 주변의 모든 것을 못본 척하는 삶. 진짜 삶이라는 것을 살고 있는 사람도. 진짜 무언가를 느끼게 해줄 것들도.


그런데 이 불면증. 이 불면증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잠을 자지 못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내 온 정신은 새벽 시간의 비명 같은 생각들에 묶여 있다. 글을 쓸 수도 없다. 쓸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안에서 울리는 비명 뿐. 사람은 얼마간 잠을 자지 못하면 죽는다고들 한다. 하지만 내 경험상 그건 사실이 아니다. 사람은 얼마나 오래 깨어 있던지 간에 잠을 못잤다는 이유 같은 것으로 죽지 않는다.


사실 그건 중요하지도 않다. 살고 죽는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죽음보다 못한 삶이 있고 삶보다 나은 죽음이 있다. 살고 죽는 것 따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은 아직 단 한 번의 삶도 끝까지 살아보지 못한 인간 뿐이다. 중요한 건 내 인생이 깨지고 있다는 거다. 희망을 가지고 전진과 뒷걸음질을 반복하며 눈을 떴어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채로 살던 내 인생이. 그 반복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는 거다.


하지만 사실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 인생이 내게 가져다 준 것은 엄밀히 따지면 고통과 그 부산물 격인 쓰레기 몇 가지 뿐이었다. 그런 것이 어떻게 되든 중요할 리가 없다. 하지만 이 인간의 머리라는 것은 오랜 시간 이어져왔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중요하다는 착각을 해버린다.


불면증. 이 불면증이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그 무너진 곳에 이제는 아예 남은 것이 없길 바란다. 그래서 오늘 내가 불면증에 관한 이야기를 왜 했냐하면. 결국은 무너졌기 때문에. 그곳에는 여전히 펜이 있고 내가 집착했던 온갖 쓰레기들이 남아 있다. 결국 나는 나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무너졌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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