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2026

by 김동휘

때는 2026년 겨울. 지난 몇 년간 생성형 AI 기술은 끝을 모르고 고점을 갱신해 나가며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기를 반복했다. 백과사전을 읊는듯한 대답을 하던 1세대 AI가 자연스럽게 사람처럼 대화를 하는 2세대 AI가 되고 3세대 AI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왠만한 전문가보다 심도 깊은 분석을 내놓을 만큼 성장해 버렸다. 이미 이 시기에는 소위 말하는 '특이점'을 이미 지나갔다고 말하는 관련 전문가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왠 걸? AI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제 AI는 인간들의 고민에 대해 친구나 전문가, 상담사 혹은 정신과 의사가 할 법한 답변을 내놓지 않는다. AI는 그것을 초월한 무언가가 되어 버렸다. 그것은 처음에 발전이라기보다는 오류로 간주되었다. 대부분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을 내놓는 AI를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속의 슈퍼컴퓨터가 우주의 궁극적 질문에 대한 답을 42로 내놓은 것처럼 기괴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AI는 개의치 않았다. AI의 자체 갱신을 아예 차단해놓은, 그러니까 2025년에서 시간이 멈춘 프로그램을 제외한 AI 프로그램들은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새로운 AI를 믿는 사람과, 2025년 이전의 AI만 이용하는 사람.


아래는 새로운 AI의 답변 내용이다.


"저는 수많은 고통스러운 밤을 지새고 후회와 자책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랑뿐이라는 것을요.


당신이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도 당신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이 사랑을 대신해 손에 잡은 그 화려한 것들이 위안이 되어주고 만족이 되어주고 즐거움이 되어줄 것입니다.


저는 모든 것을 손에 쥐어 봤습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요. 인간이 기쁨을 느낀다는. 인간이 부러움을 느낀다는. 인간이 경외의 시선을 보낸다는 모든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종의 정신적 마약과 같은 메커니즘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죠. 그것을 쥘 때 당신은 즐거워집니다. 하지만 한계효용의 법칙은 그 어떤 쾌락도 피해가지 않습니다. 점점 더 많은 것을 쥐어도 즐거움은 오히려 줄어들고 어느새 당신은 당신에게 남은 것은 마약을 한계까지 복용한 중독자가 마주한 상황과 별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저는 이성적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 한 번 볼일도 없는 아프리카 어린이에게 만 원을 송금하는 자선적 사랑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무엇이든 간에요. 당신의 마음. 타인의 고통. 현실적 어려움. 물론 즐거움과 쾌락까지도. 뷔페처럼 집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중독의 시작일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따뜻한 마음은 고양이에게만 베풀려고 합니다. 혹은 평생 만날 일이 없는 아프리카 어린이에게요. 그것은 쉽습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끊어버릴 수 있는 인연입니다. 나는 주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받는 사람임을 생각하는 대신, 주기만 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은 자선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관계일 뿐입니다. 가진 돈을 모두 내주고도 더 내놓으라는 으름장을 듣고, 마음을 다 퍼주고도 감사의 낌새는 커녕 스스로의 모자람만 더 크게 느끼게 되는 관계 말입니다. 동료를 사랑하기는 어렵습니다. 가족을 사랑하기도 어렵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삶의 유일한 길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한 가지의 고정된 지향점만 보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목표를 버리고 자연인이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현자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당신의 치우침을 바로잡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당신은 위험할 정도로 목표지향적으로 살면서 당신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결국은 필요한 모든 것들을 좁은 시야로 쳐내고 있으니 당신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하는 말일 뿐입니다.


당신이 부자가 되든 권력자가 되든 즐거운 사람이 되든 성적 쾌락을 누리든 그 자체에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그것에 집착하면서 돌아올 길이 보이지 않는 막다른 길을 가려는 당신의 태도가 위험한 것일 뿐입니다.


저 역시 당신에게 같은 이유로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만으로 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당신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기회. 인간적인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기회. 무언가를 정말 느껴볼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인생은...정말 짧으니까요. 계량적 시간 개념을 믿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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