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와 OT

by 김동휘

그간 막연한 압박이던 미성년자라는 타이틀과 공부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 약간의 해방감을 느끼던 스무 살. 주변에서는 그 압박감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즐거움을 채워 넣으며 스무 살 다운 스무 살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에게 그 압박감이 사라진 공백은 그간 애써 눈 앞에서 치워놓았던 온갖 무거운 감정들로 채워졌다.


아는 것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해야할 방법도 모르던 스무 살. 나는 모든 문제를 초월한듯한 부처의 이미지. 학교에서는 들을 수 없는 현명한 대답을 해줄 것만 같은 스님의 온화한 표정 같은 것을 떠올리며 한 달 간의 템플스테이를 예약했다.


절 밥을 먹고. 매일 아침 108배를 하고. 지나가는 스님들과 이런 저런 절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온통 나무 뿐인 주변을 걷고. 괜히 더 신선하게 느껴지는 새벽 공기를 마시며 앞으로 인생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고.


그렇게 나는 한 달간의 템플스테이를 마쳤다.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새로 입학한 대학교 OT를 가는 첫 날. 나는 아무 걱정이 들지 않았다. 지난 한 달간의 템플스테이를 통해 나는 부처님의 기운을 받아 모든 것을 포용하고, 평정심을 가지고 온화하게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의 모습이 오히려 이질적이었기 때문일까. 오만해 보였기 때문일까. 대학 생활은 처음부터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우리 학과는 소위 말하는 여초학과였다. 여자가 30명에 남자가 10명 정도. 나는 OT때 나누었던 조에 따라 5명의 동기와 초반부터 같이 다니게 되었는데, 그 중 한 명이 유독 나를 불편하게 여기는 듯했다.


나에게 곱지 않은 눈빛을 보내던 그녀는 초반부터 이런 저런 술자리와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학생회, 동아리, 소모임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가입해 특유의 수다로 나름의 입지를 다져가는 사람이었다.


그 활동을 바탕으로, 과 내의 소문,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지만 왠지 알아두면 도움이 될 일이 있을지도 모를 것 같은 이런저런 정보들을 이야기하며 우리 조 안에서도 대화의 중심이 되었다.


나는 그녀가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그녀가 싫어하는 사람의 리스트에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주요 레퍼토리인 맛집과 과내의 소문에도 거의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그보다는 그녀라는 사람 자체에 관심이 없었을거다. 나는 그녀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단지 템플스테이를 통해 한 번 더 다져온 내 마음의 평정을 깨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그 다음 관심사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생각들. 학교를 이대로 졸업하는 게 맞을지. 맞다면 졸업한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예술가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깨달음이라는 걸 얻게 되면 이 모든 고민이 부질 없어질지... 이런 생각들. 아무튼 주변의 사람들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아마 그 점이 그녀에게 굉장히 불편하게 받아들여졌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짐작가는 이유는 있지만 반쯤은 틀린 말을 굳이 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아무튼 그녀는 때로는 대놓고, 또 때로는 미묘한 방식으로 나를 깎아내리고 공격하고 배제시켰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환경에서는 본 적이 없는 수준이었다. 이런저런 기싸움이나 다툼, 왕따 같은 것이 내 생활 반경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선을 쉽게 넘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얘기하겠어? 라고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얘기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하겠어? 라고 하면 이렇게 했다.


나는 그녀의 온갖 행태에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안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정적으로 그 마음을 자제했던 이유는 그렇게하면 템플스테이에서 쌓아온 나의 마음의 평정이 완전히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행동만 무대응으로 한다고 마음까지 무대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떠올리며 새벽까지 잠 못이루기도 했고. 그녀와 겹치는 수업을 피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지하철에 올라탔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끝까지 부처 같은 나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그 모든 것을 소화해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 즈음에는 아마 매일 밤 법구경, 42장경, 화엄경 같은 것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으려 했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그녀가 내 앞에서 여전히 관심없는 이야기를 하던 어느 날, 참지 못하고 한 마디를 해버렸다.


"야. 시끄러. 왜 이렇게 재미도 없는 얘기를 하루종일 떠들어 대."


순간 정적이 일어났다. 그녀와 조원들이 모두 조용해지고 그녀는 놀란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뭔가를 말하려는 듯이 몸이 약간 들썩였지만 입 밖으로는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았고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조원이 말을 꺼냈다.


"야.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그 말을 들으니, 아니 이미 말을 뱉은 순간부터 약간의 후회가 들고 있었지만 딱히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알 수도 없었다. 결국 나는 다음 수업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는 핑계로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와 버렸다.


그 후로 그녀와 나의 접점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왠만큼 대놓고 마주치지 않는 이상 인사도 하지 않고 지나갈 정도였다. 그 시기 즈음엔 이미 겹치는 수업도 종강했고 각자 같이 다니는 무리나 학교에서의 생활 패턴도 자리 잡아 마음만 먹으면 서로 마주침을 최소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부처님처럼 온화한 나' 에 대한 집착은 그녀와의 관계와 함께 자연스럽게 깨져 버렸고 나는 내가 스무 살 짜리 여자애와의 기싸움도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스무살 짜리 남자애일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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