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 온 초등학교는 집 바로 앞에 있었다. 전학생으로 소개를 받고 자리에 앉자 마자 옆에 앉은 아이들이 이런 저런 말을 걸기 시작했다.
요즘 유행하는 게임은 하는지. 레벨은 몇인지. 어디서 왔는지 같은 것들.
그 날은 어떻게 보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다만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건 청소시간이다.
당시 청소는 한 분단. 그러니까 6명 정도의 학생이 수업이 모두 끝난 뒤에 각자 구역을 맡아서 청소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었다.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이 교실을 나갔다. 아이들은 각자 청소도구를 하나씩 집어들었다.
"어차피 이 선생님은 검사 안 해."
아까부터 내 옆에서 내가 하는 게임을 물어보던 아이가 빗자루를 청소도구함에 집어 넣으며 말했다.
"저번에 내가 4분단까지 했으니까 오늘은 니가 해라."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다른 아이가 옆에 있는 아이에게 말했다. 그 아이는 그대로 가방을 매고 나갈 준비를 했다.
나는 나대로 내가 청소하기로 되어 있는 구역의 먼지를 쓰레받기에 담았다. 하지만 어느새 나도 분위기에 휩쓸려 대충 빗자루질을 몇 번 하고는 빗자루를 청소도구함에 넣고 청소를 끝내버렸다.
그 날의 일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 나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청소 시간이 이전에 다니던 학교의 그것과는 꽤 달랐던 것은 확실하다.
'이 선생님은 검사 안 해'
같은 말을 하는 아이는 없었다. 선생님이 시킨 건 선생님이 시킨 거였다. 나름대로 빈틈없이 책상과 의자 사이사이에 빗자루를 넣어가며 먼지를 쓸어담았고 대걸레를 빨아와 그 자리를 닦았다. 청소를 한 티가 확실히 났다.
'저번에 내가 했으니까 이번엔 니가 해라'
같은 말을 하는 아이도 없었다. 청소는 다같이 끝났다. 정해진 구역이 있었어도 한 명이 유독 느리게 빗자루질을 하면 다른 아이는 그 구역의 의자 정리를 대신 도와주는 식이었다.
지금은 그 아이들이 모두 어느정도 인생의 경로가 자리잡힌 나이가 됐다. 서울 아이들의 경로는 꽤 그럴듯하다. 한국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문대에 진학했다는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었고. 대체로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대학은 갔다. 설령 대학을 못 갔더라도 아버지가 대기업 부사장인 아이. 서울에서도 집값이 손꼽히는 곳에서 100평짜리 집에 사는 아이가 큰 걱정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청소를 열심히 하던 아이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10살 때 이후로는 만난 적이 없으니까. 다만 100평 짜리 집 대신 세차장에 붙어 있는 주거 용도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집에 살던 아이.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서도 아무래도 앞으로 공부를 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던 아이들이 기억날 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울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도 합리적이었다.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수 있으면 안 했고. 해준 게 있으면 받았다.
요즘 지방에 내려와 생활하면서 종종 지방 사람들은 인간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서울 생활을 하면서, 나에게는 인간적이라는 게 오히려 이질적인 것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인간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나에게는 선을 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준게 있으면 받는게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어느새 당연시 되다보니. 무언가를 받고도 더 달라는 듯한 태도를 접하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난다. 내 말이나 행동, 어쩌면 나라는 인간 자체를 '저 인간은 원래 저렇겠거니' 하고 내버려두지 않고 내가 지금껏 생각해왔던 선을 넘는 방식으로 피드백하는 것이 때로는 마음을 굉장히 무겁게 한다.
나는 서울 아이들이 마음 놓고 바보처럼 웃는 모습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시골 아이들은 꽤 자주 그렇게 웃었던 것 같은데. 그 중에서도 유독 일부러 바보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주변을 웃게 만들던 아이가 있었는데, 어느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트럭에 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 후로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10살 때는 어느 순간 갑자기 선을 긋는 아이들의 태도에 놀랐었는데, 어느새 내가 그 누구보다 더 민감하게 선을 긋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람이 안하던 일을 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해 능숙하게 선을 긋던 아이들과는 달리. 거절당하는 듯한 충격을 피하기 위해 겁먹고 먼저 선을 그어대던 나는 온갖 선 때문에 나만의 작은 공간에 갇혀 버리게 됐었다. 그걸 알면서도 여전히 같은 일을 반복하기도 하면서, 오랜만의 지방 생활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