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하려고 한다고 피할 수 있나. 피할 수 없으면..."
강민씨는 이주 째 입사 동기 수인씨를 피해다니고 있다. 수인씨의 특기는 강민씨의 자리에 다 들리게 다른 여자 동기와 함께 강민씨를 조롱하는 것이다. 절대 강민씨의 이름을 꺼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인씨가 강민씨의 뒷자리 근처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커질 때는 항상 강민씨가 그날 했던 이야기. 혹은 그날 했던 일이 주제로 올라온다.
이 기묘한 소통이 시작된 것은 이 주 전 강민씨가 점심을 따로 먹기 시작하면서 시작됐다. 입사 한지 삼 개월이 채 안 된 그들은 매일 점심을 같이 먹어왔다. 그리고 이주 전 월요일. 강민씨가 사내 식당 대신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겠다고 선언했다.
강민씨가 만약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면 감정을 원하는대로 드러낼 줄 아는 수인씨의 표정에 드물게도 진짜 불편함의 기색이 스쳤다는 걸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민씨는 그런 쪽에서는 영 둔한 사람이다.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강민씨의 또다른 여자 동기다. 우연히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쳐 인사를 나눴고 그녀는 뭔가 준비했던 말을 하려는 듯하다.
"네."
"식단이 그렇게 중요해요? 요즘 점심 잘 나오던데."
"아. 그 식당 가려면 줄 서야 되고 그러면 또 운동할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그냥 빨리 먹고 가서 운동하려고요."
"그래요? 나 같으면 그냥 같이 점심 먹고 가서 할 것 같은데."
그리고 점심을 도시락으로 혼자 먹고 수인씨의 조롱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그날부터 강민씨는 매일 꿈을 꾸기 시작했다. 매일 새벽 세시쯤, 꿈에서 깨 새벽에 땀범벅이 된 채로 일어났고. 다음 날 출근을 위해 다시 눕는 일이 반복됐다.
강민씨를 포함한 네 명의 동기와 입사 5년차의 대리가 모인 어느 날.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쯤엔 부서 점심 회식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그들은 대리의 차로 함께 회식 장소까지 이동하곤 했다.
"요즘 헬스장에 사람 많아요?"
남자 동기가 대리에게 물었다. 아마 운동을 아예 안 하는 대리보다는 그래도 최근 몇 번 헬스장에 가본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다.
"몰라. 나도 잘 안 가서. 점심 시간엔 사람 많다던데."
"점심에 운동하면 밥은 어떻게 해요?"
"안 먹거나. 간단하게 먹거나 하는 것 같던데."
벌써 이 주 째 꿈을 꾸고 있지만. 내용이 정확히 기억난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오늘 잠에서 깬 강민씨는 꿈의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꿈의 내용은 이렇다.
유튜브에서 몇 번 본 적 있던 여자 연예인 한 명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강민씨의 앞에 앉아 있다. 장소는 분위기 있는 양식 레스토랑. 전구색 조명 덕에 아늑한 분위기가 났다. 여유롭게 앉아 있던 그녀가 말했다.
"있잖아. 모든 여자는 저주인형을 가지고 있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의 머리에 이렇게 못을 박아 버릴 수 있도록."
그녀가 테이블 밑에서 사람 모양을 한 천으로 된 인형과 중지 손가락 정도 크기의 못을 꺼내며 말했다.
"그런 걸 머리에 박으면 죽는 거 아니야?"
그녀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까지 죽은 사람은 한 번도 못 봤는데. 겨우 이 정도 가지고."
"그럼 어떻게 되는데? 조금 아픈 정도?"
"그건 너도 잘 알지 않아?"
너는 당연히 알 거라는듯한 표정으로 그녀는 강민씨를 쳐다봤다. 그 둔한 강민씨도 그 표정을 보니 그녀 말의 뜻을 알 것 같았다.
"나는 나대로 살았을 뿐인데, 그런 걸 당해야 되는 거야?"
"너대로 살게 아니라. 인간적으로 살았어야지."
"그게...말처럼 쉽나."
"그래. 쉬우면 이런 것도 필요 없겠지."
그녀는 말을 마치며 테이블 밑에서 테이블보다 더 길고 앞에 놓인 물컵보다 더 두꺼운 못을 하나 꺼냈다. 못은 아무래도 철로 만들어진 것 같았는데 그만한 크기의 철물을 그녀가 한 손으로 들고 있다는 것이 강민씨에게는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런 걸 머리에 박으면 머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은데."
"그렇겠지?"
그녀는 못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천장에 머리가 닿지 않는 것이 의아할만큼 키가 컸다. 그녀는 커다란 못을 들어올렸고, 여유롭던 그녀의 얼굴에는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집중하는 사람 특유의 표정이 스쳤다.
그리고 강민씨는 잠에서 깬다. 땀범벅이 된 채로.
"강민씨. 사소한 거긴 한데, 기본적인 시간은 좀 지켜줬으면 좋겠어. 이거 다 기록에 남는 거고. 강민씨가 우리 회사 오래 안 다니더라도. 나중에 다른데 가서도 문제 될 수 있는 거거든. 그리고 집중하는 건 좋은데. 분위기 좀 맞출 수는 있잖아. 동기들이 뭐 하고 있으면 같이 좀 하고. 정 그러면 5분 정도라도. 강민씨가 이제 3개월 차인가? 귀를 좀 열어놓을 때지."
"강민씨. 믿을 건 본인 밖에 없어. 다들 사람이야 좋지. 어디 가서 이런 사람들 만나기도 힘들 걸. 근데 결국, 강민씨한테 중요한 건 강민씨 본인이 직접 잡아챌 수 밖에 없어. 사람들은 강민씨가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지. 일상을 흔드는 사람이 되길 바라진 않으니까. 진짜 원하는 게 있을 땐. 그냥 본인만 믿고 행동해야 되는 거야. 모두가 반대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