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유행이 지난 말이지만, 인터넷이 보급되고 PC가 없는 집이 드물어지던 그 시기에는 정보의 바다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바다처럼 넓은. 한 사람의 힘으로는 평생을 다해도 건널 수도 바닥을 볼 수도 없는 바다. 개구리 한 마리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려고해도 한 사람의 머리로는 불가능하다. 개구리 뒷다리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도 불가능하긴 마찬가지다. 개구리 뒷다리에 달린 세 번째 발가락의 연골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면 얼추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정보가 오아시스처럼 귀하던 시절에서. 정보가 감당하기 힘들만큼 동시에 어디서나 접할 수 있을만큼 많아진 정보의 바다가 되었고. 이제는 정보를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사람을 휩쓸려 가게 만드는 정보의 홍수 시대가 도래해버렸다.
만약 조선시대 사람이 갑자기 2025년으로 오게 된다면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 정보의 홍수 때문에 죽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어딜 가도 시끄럽고. 무얼 하든 알아야 할게 너무 많고.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한다.
나는 이 홍수 한 가운데에서 물에 잠긴 채로. 희미해진 소리와 둔해진 움직임에 적응한 채로 살아간다. 물 속에 잠겨서 살다 보면 작은 움직임 같은 것은 잘 보이지 않게 된다. 이를 테면 얼굴 표정 같은 것들. 물 속에서는 눈물이 흐르는 일도 없으니까. 직장 동료가, 엄마가, 마주치는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나는 모른다. 사실은 내 표정도 알 수 없다. 그것도 물 속에선 희미해지기는 마찬가지니까.
이 전세계를 범람하는 홍수 속에서도. 신선한 공기라는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다. 회사에도, 집에도, 마트에도, 공원에도 없는데. 노트북에도, 스마트폰에도, 낡은 책장 속에도 없는데.
아주 가끔은 나도 내가 물 속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이 답답한 곳에서 제대로 눈도 못뜬 채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물 밖으로 나가기에는 너무 몸이 무거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아이처럼 아무렇지 않게 수면을 박차고 단단한 흙바닥에 올라설 수는 없는 것이다.
어린 아이는 넘어져도 괜찮다. 하지만 나는 넘어지는게 두렵다. 물 속의 장점이라고 해야 할까. 물 속에서는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 넘어지더라도 잠깐 균형을 잃을 뿐 금방 다시 아무렇지 않게 걸어갈 수 있다. 어쩌면 이대로 가다가는 똑바로 걷는 법도 잊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이미 많은 것을 잊어버렸다. 이를 테면, 표정을 구분하는 법이라던가...아 이 얘기는 했었나. 잊어버렸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게 너무 많아서, 무얼 잊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이러니 수면 위로 올라간다는 생각 같은 건 떠올리지 않으려고 하는 거다. 나는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기도 힘든, 나이만 먹은 아이 같을테니까.
다들 이렇게 사는 것 같다. 나 같이 평범한 사람만 그런 것 같진 않다. 화면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사람들.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것들을 하나쯤은 심지어 거의 다 가진 사람들도 비슷비슷하게 사는 것 같아 보이니까.
하지만 나는 여전히 수면을 박차고 나가는 상상을 한다. 이제는 거의 잊어버린 물 밖의 감각을 떠올린다. 오늘도. 그리고 아마 내일도.